brunch

충격과 도발의 조각

콘템포러리 아트를 리뷰한다

by 아트맵 매거진


| 론 뮤익 Ron Mueck


흔한 성씨가 아니네요. 뮤익이라고 키보드 입력을 하니까 자꾸 딴 제시어가 뜹니다. 무익, 뮤직. 이 작가가 한국에는 몇 해 전에 에르메스 재단이 벌인 특별전 이벤트로 서울 시립미술관에 와서 인지도가 올랐습니다. 그의 조각은 제가 본 현대미술 가운데 가장 뻔한 작품이었습니다. 론 뮤익의 작품이 시시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건 작업의 길을 선택한 이후 이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같은 거예요. 사람의 실물을 그대로 옮겨다 둔 작품이 그것도 엄청나게 커다랗게 여러분 눈앞에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우리가 날마다 집을 나서서 마주하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요. 론 뮤익은 그렇게 평범한 이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합니다. 그가 영국인이니까, 우리에겐 또 맥락이 조금 다를 순 있겠습니다마는.


IE002383476_STD.jpg Ron Mueck Mask II ⓒ Ron Mueck.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


극사실주의 회화가 있다면 이건 극사실주의 조각이라고 불러 마땅합니다. 평범한 사람들(common people)을 집요할 만큼 정교하게 표현한 점에 있어서 다른 조각가 몇 명이 떠오릅니다. 그 작가들도 이 코너가 이어지면 언제 한 번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론 뮤익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제가 봐선 누군지 모를, 그러니까 좌대 위에 브론즈 동상으로 오를 인물들이 아닌 작가의 지인일 수도 있는 이들을 본뜬 이 조각들이 주목받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건 뭣보다 사람의 피부와 주름, 게다가 잔털과 모공과 피부 아래 실핏줄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업 때문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그게 다가 아닙니다. 작가가 미술계에 이름을 알린 첫 번째 사건이 세상을 떠난 그의 아버지를 작품화한 일입니다. 벌거벗겨진 채 맨바닥에 누인 창백한 주검의 이미지는 슬픔의 감정을 절제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아니 어떻게 고인이 된 아버지를!”이라는 관객들에게 불편함을 전달합니다. 골드 스미스 대학을 졸업했고, 데미안 허스트와 친하고, 찰스 사치의 후원을 받았으니까 이 사람도 B 뭐시기 멤버죠. 그들 패거리에 있어서 대중적 논쟁의 촉발은 은혜로운 일일 겁니다. 미술의 윤리적 논란은 그를 키웠고 매번 론 뮤익은 놀랄만한 작품을 선보여 왔습니다.


preferred-image-NGC_42161B_1.jpg Ron Mueck, A Girl (2006), 110.5 x 134.5 x 501 cm. © NGC.


대단한 작가지만 저는 뭐 그냥 그렇습니다. 한사 토이 사에서 나오는 동물 인형들도 실재와 흡사하죠. 물론 이 조각 작품은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섬세한 데다 규모도 크지만 말입니다. 또 작가 혼자 거의 일 년에 달하는 시간을 작품 하나에 투여할 정도라면 이 작업에 대한 예술성을 깎아내릴 수 없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극사실주의 화가들이 미술 평단에서, 그리고 같은 업종에서 사실적인 묘사에 치중하는 정통 화가들에게서조차 듣는 비아냥거림 -“그래서 뭐 어쩌라고?”를 이 조각가도 피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작가는 수를 썼습니다.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상황을 제시하는 겁니다. 그러려면 사람을 일단 벗겨야죠. 죽어가는 사람, 엄마 뱃속에서 막 끄집어낸 아이. 이것, 좀 익숙하지 않습니까? 베네통의 광고에 실릴만한 이미지입니다. 론 뮤익은 자신의 기예를 통해 나오는 작품을 더 부각하는 논란거리들을 굉장히 안전한 길을 따라 만들고 있습니다.


IE002383474_STD - (1).jpg Ron Mueck In Bed ⓒ Ron Mueck.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


그런데도 그의 작품이 끌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거대한 입체로 표현한 <In Bed> 같은 작품을 보세요. 침대에 누워서 지나간 하루와 다가올 하루 사이에 끼인 오만 상념을 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역시 현실을 압도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크기입니다. 조각가들은 누구보다 이 사실을 압니다. 하지만 작가들이 가진 한정된 자원은 그 실천을 가로막습니다. 론 뮤익도 처음에는 정 사이즈에 근접한 재현에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크기의 변이와 더불어 키운 게 상상력이 아니라 종잣돈으로 확보한 재료비였단 게 좀 아쉽습니다.






글 | 윤규홍 (아트맵 Art Director / 예술사회학)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