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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맵 매거진 Feb 02. 2021

의도된 어설픔

컨템포러리 아트를 리뷰한다


| 프란츠 베스트 Franz West


 재즈 기타리스트 팻 매쓰니가 자신의 밴드 이름으로 ECM 레이블에서 마지막으로 낸 앨범이 퍼스트 서클(First Circle)입니다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이 앨범에 수록된 첫 번째 곡 “Forward March"는 은근히 재미있습니다마치 어린 학생 관악대가 모인 합주 첫 시간처럼 이 곡은 정말 엉망진창으로 된 연주를 들려줍니다제목 그대로 행진곡 풍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거의 모든 악기 파트와 소절에서 한 포인트씩 삑사리를 냅니다브라스밴드가 도심 한복판을 나팔을 불고 북을 치며 씩씩하게 걷는 모습은 물웅덩이에 빠지고 돌부리에 걸려 비틀거리고 선두 지휘자가 길을 잘못 들어 우왕좌왕하는 광경을 떠올리게끔 합니다이 최고의 재즈 밴드가 의도적으로 연출한 미숙함은 라이브 연주에서 레코딩 버전 그대로 완벽하게 엉망진창을 재현합니다.


Franz West, Smears, 2010, installation view, 2010 at Tate Liverpool. 이미지 출처 | ZABLUDOWICZ COLLECTION


 음악학 개론을 떠올려볼까요우리가 옥타브라고 부르는 음악의 계측 단위는 도레미파솔라시로 배열된 음계 구간이 딱 두 배 상승하는 진동수로 구성됩니다낮은 도와 높은 도가 동시에 울리면 우리 귀는 굉장히 편합니다또 음정을 3도 간격으로 셋 이상 쌓아 올리면 화음이 되죠같은 음정을 발산하는 것보다 덜 편할지는 모르지만 뭔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1도 4도 5도 같은 주요 화음들은 온전한 음악의 기초를 세웁니다그런데 어느 하나 이상의 음정이 삐끗할 때 그 조화는 깨어집니다그 소리는 엉성하고 불편하고 유치해지죠.


Franz West, Corona, Lacquer and aluminum, 500 x 700 x 700 cm, 2002. 이미지 출처 | Gagosian


 이제미술의 조형학 개론으로 갈아타 볼까요하나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는 점과 선과 면으로부터 비롯되어 구도와 색감과 양감과 균형감 그리고 미술전공자들이 마티에르라고 곧잘 부르는 질감에 이르기까지 눈으로 알아차리고 느낄 수 있는 여러 효과를 발생시킵니다이게 딱 맞아떨어질 때 우리는 쾌적한 상태에서 재현체든 추상이든 디자인이든 하나의 예술적 대상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습니다그 시각적 일체감이 흩어지면 그 딱 떨어짐은 덜떨어져 보임으로 급락해버립니다그것이 전통적인 의미에서는 실패한 예술 행위일 겁니다하지만 의도된 덜떨어짐이라면요? 팻 매쓰니의 그 곡처럼 의도된 불완전성은 현대미술에서는 더 일반화된 경향이겠죠.


Installation view of Franz West: Dorit, FIAC Hors les Murs, Paris, 2018. 이미지 출처 | VENUS MANHATTAN


 오스트리아의 조각가 프란츠 베스트가 보여주는 작품들은 한눈에 봐도 어설퍼 보입니다그건 마치 꼬마들이 미술시간에 색 찰흙을 주물럭거리다 간신히 만든 결과처럼 보입니다어떤 작품은 정말 같아 보입니다눈치 없이 밝은 색상도 유치찬란함을 더합니다추상적 형태는 맞는데만든 이의 의식이 고양되었지만 그의 손놀림은 안타깝게 금손이 아니라 흙손이라는 가정도 세울 수 있고요작품을 고안한 작가가 처음 계획은 멀쩡했는데 만드는 인부들이 심각하게 실수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하지만 다 아니겠죠의도된 결과 그대로의 형상이 프란츠 베스트의 조각입니다.


“The Ego and the Id,” in Central Park in 2009. 이미지 출처 | Marilynn K. Yee/The New York Times


 사람들은 그의 작업에 적응 조각/어댑티브 스커럽쳐(Adaptive sculpture)라고 그럴듯한 말을 붙여줬습니다프란츠 베스트의 조각은 놀이터 같은 구실을 합니다도슨트들이 말리지 않는다면 누구나 걸터앉거나 올라갈 수도 있을 겁니다어린 아이들은 처음 가는 놀이터에서도 잘 놉니다처음 가는 동네나 식당 놀이터에도 망설임 없이 놀이에 적응합니다쉬운 대상사실 그 대상이 당사자라면 좀 자존심 상할 법합니다아무나 자기를 만만하게 여기고 다가오는 게 그리 반가울 사람은 없을 겁니다거꾸로 뭔가 모자라고 빈틈을 보여야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법프란츠 베스트가 정한 공공미술의 방향은 그런 쪽이었나 봅니다실제로 작품 구상은 작가 본인이 세우고제작에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자원해서 완성하는 형식을 곧잘 시도한다는데요그래도 작가의 조수 같은 스태프들이 현장에서 조연출 역할은 맡겠죠?






글 | 윤규홍 (아트맵 Art Director/예술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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