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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두부인가 조각인가

콘템포러리 아트를 리뷰한다

by 아트맵 매거진


| 칼 안드레 Carl Andre


맛집탐방 프로그램에 나오는 두부를 써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저는 칼 안드레의 조각을 떠올립니다. 두부를 만들고 조리하는 건 예술이 아니고, 조각은 예술입니다. 칼 안드레도 두부는 먹어봤겠죠. 작가가 그때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합니다. 적어도 197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칼 안드레의 작업은 조각계에 은근히, 아니 대놓고 영향력을 끼쳐왔습니다. 흔히 미니멀리즘 조각을 이야기할 때 그를 빼고선 이야기가 되지 않으니까요. 육면체의 쇠뭉치, 나무토막이 일정한 질서에 맞춰 놓여있는 그의 조각은 많은 추종자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20210202_170156.png Carl Andre, 2 cubes on block, Belgian blue limestone, 30 x 45 x 15cm, 2001. 이미지 출처 | artsy


칼 안드레는 한국전쟁이 벌어졌던 시기에 미대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1955년에 군대를 가서 병역의무를 치렀습니다. 그러니까 군번이 잘 풀렸다고 봐야겠죠. 되는 사람은 뭘 해도 되는 법입니다. 제대 후 먹고 살길을 찾아간 뉴욕에서 그는 프랭크 스텔라를 만났습니다. 그 만남은 칼 안드레로 하여금 조각 세계의 테두리를 결정짓게 했습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그는 당시에 위세를 떨치던 브란쿠시 류의 조각을 답습하다 사라져간, 그 즈음의 수많은 미술가 중 한 사람에 머물렀을 거니까요.

20210202_170647.png Carl Andre, THEBES, Western red cedar wood, 120 x 90 x 1080 cm, 2003. 이미지 출처 | artsy


제 생각에, 칼 안드레는 세 가지 커다란 주제로 정리가 됩니다. 미니멀리즘, 수평조각, 직설적인 물성, 이렇게요. 미니멀리즘은, 그가 남긴 미술작품을 음악에 대입하면 어떤 뮤지션이 떠오르나요. 미니멀리즘 하면 필립 글래스로 이어야 마땅하지만, 저는 독일의 초기 신디사이저 밴드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가 떠오르는군요. 뭐랄까, 가차 없이 음악으로 정의된 그 요소만을 정해진 시간 내에 배열한 무미건조함 때문에요. 칼 안드레의 조각 작품은 조형을 이루는 방식이 지나치게 직설적인 면이 있습니다. 저는 그렇다고 그 미니멀리즘 미술이 굉장히 세련된 방식이라고 보진 않습니다.


d5e423cd-0267-496c-bba7-64cc095b8fdf_650_487.jpg Carl Andre, Belgica Tin Train, Tin and Belgian limestone, 15 x 15 x 240 cm, 1990. 이미지 출처 | artsy


수평조각이라 함은 원래 조각이 수직에 신경을 쓰는 것과 비교되는 개념입니다. 조각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균형을 잃고 쓰러지지 않게 무게중심을 안정되게 설정하거나 지탱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려고 애씁니다. 몇해 전에 어떤 미술관에서 <수직충동>이란 제목의 소장전이 열렸습니다. 정말로 작가들이 수직에 대한 충동을 일로 벌였다면 그 충동의 댓구로 이성적인 계산을 깔아야 됩니다. 작품이 쓰러지면 곤란하잖습니까. 하지만 그럴 필요 없이 바닥에 턱턱 놓이는 칼 안드레의 작품 설치는 만고 편합니다.


직설적인 물성이란 말보다 더 좋은 표현이 있겠지만, 생각이 안 나서 그냥 씁니다. 이런 거죠. 많은 시각예술 작품이 관람자가 보고 생각했던 재료가 아닐 때 생기는 반전 같은 것. 고무풍선인 줄 알았는데 금속이라던지 그런 예죠. 칼 안드레는 그런 반전의 묘미를 쓰지 않습니다. 딱 봐도 그것들은 나무고, 금속입니다. 얼마나 무미건조합니까? 그 밋밋함이 반세기 넘게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아 왔습니다.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조형이지만 실은 아무 곳에서나 찾을 수 없는 예술 그 자체. 애드 라인하르트가 남긴 말이 있죠?

“예술은 예술로서의 예술이며, 다른 모든 것들은 다른 모든 것들이다.”








글 | 윤규홍 (아트맵 Art Director/예술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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