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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맵 매거진 Feb 17. 2021

자기 피를 뽑아 작품을 만들다

콘템포러리 아트를 리뷰한다


| 마크 퀸 Marc Quinn 


 내 발음에 문제가 있나 보다. 문화기획자를 길러내는 수업 시간에 내가 한 수강생에게 아티스트 피(artist fee)에 관해서 질문했다. 내가 원했던 대답은 ‘그건 예술가들이 활동할 때 재료비나 대여비처럼 쓰이는 비용 말고, 머리 쓰고 몸 움직인 대가를 돈으로 매겨놓은 항목입니다. 아티스트 피는 지금껏 제대로 환산되지 못한 탓에 작가들이 어려워합니다. 제도가 마련되어 아티스트 피가 잘 책정되길 원합니다.’같은 말이었다. 그런데 학생의 대답은 딴 방향으로 진지하게 흘렀다. ‘아티스트들은 예술가의 피를 부모로부터 물려받았습니다. 뜨거운 피를 가진 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보게, 피가 아니라 퓌 말일세.” “네? 휘? 히?”


Marc Quinn, Self, 1991 (이미지출처=marcquinn.com)


 예술가들의 피는 특별할까? 작가들은 창의성을 대물림 받는 걸까? 예술가들의 피가 남다른지 아닌지에 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야기하고, 오늘은 피를 특별한 작품으로 만든 예술가 마크 퀸을 눈여겨보자. 피(pi)가 아니라 피(fee)이며, Mark Queen이 아니고, Marc Quinn이다. 마크 퀸은 자기 피를 뽑아서 머리 본을 떠서 그 틀에 피를 채워 얼린 두상 <셀프 Self>를 통해 영국의 젋은 미술가들 가운데에서 에이스 대접을 받게 되었다. <임신한 앨리슨 래퍼 Alison Lapper Pregnant>, <엔젤 Angel> 같은 문제작들도 있지만, 사람들은 마크 퀸이라고 하면 <셀프>를 먼저 떠올린다. 순전히 내 취향으로, 이 작품은 브라이언 드 팔마가 연출한 호러 영화의 걸작 <캐리 Carrie>(1976)와 더불어 가장 우아한 피칠갑이다.


Marc Quinn, Self,  2011 (이미지출처=marcquinn.com)


 <셀프>는 세상에 다섯 점이 존재했는데(1991년 처음 완성된 작품은 꽁꽁 얼어있어야 할 작품이 녹아서 없어졌으니까 이제 네 점) 그 가운데 세 번째 작품은 서울 종로구 공간 사옥을 고친 아라리오 미술관에 가면 누구나 볼 수 있다. 이곳에 있는 작품은 작품을 보존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설정한 것인지 몰라도 빛을 자제해서 어두운 조명 때문에 진면목을 보기에 아쉬운 점이 있다. 무척 비싼 값에 거래되는 이 연작이 많이 만들어질 수 없는 이유는 다름 아닌 피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머리 크기만큼 피를 채우려면 4.5리터의 피가 필요하다는데, 마크 퀸이 안 죽을 만큼 매번 피를 뽑아서 두상 하나를 만들 수 있는 시간이 5년이다. 그래서 작품은 나이를 먹어가는 작가의 모습이 그대로 틀에 박힌 자화상이다.


Marc Quinn (이미지출처=marcquinn.com)


 <셀프>를 언급한 영국과 미국의 평론을 몇 편 보는데, 콘덴새이션(condensation)이란 단어가 곧잘 등장한다. 우리말로 바꾸면 응축이 되는 이 개념은 기체가 액체로 바뀌는 상태니까 엉뚱한 설명이다. 우리 예술 평론 문장에도 ‘응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맙소사). 사회학자 스코트 래쉬(Scott Lash)와 존 어리(John Urry)가 빙하적 시간(glocial time)이라고 부른, 오랜 시간동안 천천히 얼어붙은 빙하처럼 역사적 맥락의 축적에 관하여 그 미술비평가들은 이야기하고 싶었나보다. 한 예술가의 피가 자기 작품으로 보존되는 사건에는 물리학자였던 그 아버지의 배경이 숨어있다는 혈연의 문제로 말이다. 말을 이어붙이면 뜻이 통하는 억지 해석은 어느 동네에나 있다.




- 2015년 9월 대구문화 -


글 | 윤규홍 (아트맵 Art Director / 예술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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