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일까?” 진지하게 생각하기 이전에는 기분 나쁜지 몰랐는데, 그 생각을 자주 거듭하다 보니 기분 나쁘게 들리는 말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이런 말들이다. “너는 사업가보다는 공무원이 더 잘 어울려, 잘 할 것 같아.”, “너는 소극적이더라.”, “아냐, 아냐 내가 봤을 땐 너에겐 핑크색보다는 파란색이 잘 어울려.” 거시적인 것부터 세세하고 사소한 것 까지. “너는 ~~~ 사람이다.”라고 나를 자꾸 단정 짓는 말들, 깨닫고 난 후로는 그 말들이 너무 듣기 불편했다. 나도 사람을 관찰하고 어떤 것들을 분석하거나 파악하는 일들을 즐거워하는 편이어서 한동안은 나도 그런 이야기들을 즐기며 했었다. 너는 어떤 타입, 어떤 유형의 사람이다. 뭐 이런 이야기들. 근데 그런 얘기들이 얼마나 자만적이며, 또한 그 정의를 듣게 되는 본인에게 얼마나 무례한 이야기들인지를 알게 되었다. 내가 바로 그런 피해를 무의식적으로 알게 모르게 받아 온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하게 모르겠다. -내 인생의 철학이지만, 그건 당연한 것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하게 알게 되는 시점은 내 삶이 다하는 날까지 오지 않을 것이다. 정의를 내리는 것만큼 무의미한 것이 있으랴!- 이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히 인지하고 싶은 욕망이 사라졌지만 이전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남들이 “넌 이런 이런 사람이고 이런 게 더 잘 어울려.”라고 하는 말들이 오히려 나의 정체성을 갉아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란 것은 그 안에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인데, 나는 이런 사람이었지, 저런 사람이라고 했지 라는 말들이 무의식적으로 내 가능성을 낳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또한 내가 그 말을 수용하여 “맞아요 맞아! 나를 너무 잘 아네. 나 그런 사람이었지.”라는 말을 하면, 타인은 나를 그런 사람으로 밖에 보지 않는다. 이 사실 또한 너무나 힘들고 조금은 화가 나는 일이었다. 이렇듯 타인을 단정 짓는 말들을 나를 안으로 밖으로 정형화된 사람으로 만들 뿐이었다.
그 이후 나에 대해 그것도 너무 단호하게 단정 짓는 말을 하면, “아니 나를 얼마나 잘 안다고 그런 말들을 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든다. 타인을 어떠한 틀 안에 단정 짓는 것, 그것은 너무도 슬프고 배려 없는 말이다. 나도 어쩌다가 타인을 단정 짓고 정의 내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 서로를 바라볼 때 이 사람이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대단할 수도 있고, 색다를 수도 있다는 것, 내가 모르는 부분도 더 많다는 것을 늘 염두 해두자.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방심인 것도 없으니까. 또한 사람은 늘 그대로인 만큼 자주 변하기도 하는 존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