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길에서 낯섦을 발견했다
익숙한 길에서 낯섦을 발견했다
매번 자전거로 이동하던 길을 건전지를 사러 가기 위해 걷기로 했다. 회사에서 작업실까지 가는 길에 주로 따릉이를 타고 이동하는데 따릉이를 두고 건전지를 사러 갈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도보로 20분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가기로 했다. 걸음의 속도로 맞춰 걸으니 익숙했던 풍경 속에서 낯섦을 발견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는 차마 보지 못했던 예스러운 간판, 휴식을 취하고 있는 여름의 낯 아래 할아버지들, 버려진 것들의 모임과 여전히 그대로인 오래된 것들의 흔적, 툭 튀어나와 반갑게 인사하는 것 같은 사물들.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걸음마다 펼쳐지는 풍경은 다채로웠고 낯설어서 아름다웠다. 이 곳은 내가 아는 골목이고 내가 매번 걷던 길인데 이 길에 그런 풍경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는 그 모든 것들을 매번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 지나쳐 왔다.
걸음의 속도로 세계를 마주하다 보면 인간이 제 능력치 이상의 속도를 내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걸음마다 속도를 늦춰야 세계의 하나하나를 마주할 수 있는데, 일상에서 자동차나 전철과 같은 교통수단이 당연한 우리는 얼마나 많은 풍경들을 그저 스쳐 지나가도록 놔두고만 있을까? 도구의 발전은 인간이 인지할 수 없을 정도, 체감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까지 인간의 속도를 발전시켰고 그리고 앞으로도 더 발전해 나갈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인간이 두 발로는 절대 마주하지 못할 풍경을 선사해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비행기 같은 것들. 하늘 위에서 하늘을 내려다보는 일이 비행기가 아니면 어떻게 인간에게 가능했을까. 그러나 비행기를 타면 솔직히 나는 비행기가 얼마큼 빨리 날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한다. 심지어 나에게는 자전거의 속도 조차도 빠르게 느껴지는데 우리는 얼마나 빠른 것들 속에서 살고 있는 걸까?
가끔은 걸음의 속도를 나에게 돌려주는 게 좋은 것 같다. 내가 인간이라는 것, 내게 비롯되는 한계라는 것, 그리고 그 한계 안에서도 나는 세상을 충분히 누릴 수 있고, 심지어 그 세계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때가 더 많다는 것. 여름의 날은 걷기에 좋으니 걸음의 속도에 맞추어 세계를 만나는 일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