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cedie Apr 18. 2019

글쓰기의 마음

글쓰기의 마음


  가끔 글쓰기는 환멸이 난다. 글쓰기 그 자체가 아니라 글을 쓰는 순간부터 붙게 되는 부차적인 것들, 글쓰기 외의 것들 때문에.


  글쓰기, 그 자체는 나에게 회복이다. 글을 쓰는 것을 통하여 나는 회복됨을 느낀다. 그리고 아주 시작은 단순하다. 그냥 펜을 잡고, 아니면 두 손을 핸드폰 또는 자판기 위에 올려놓고 쓰기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어느 상황에 처해 있든, 어떤 감정이든 중요하지 않다. 글을 쓰게 되면 알게 될 것이고, 알게 되면 이내 괜찮아질 거니까.


  글을 쓰면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도 명확하게 정리를 할 수 있게 된다.  오히려 더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막막함이든 슬픔이든 괴로움이든 내 감정을 토로하고 내가 왜 그럴까 차근차근 글을 쓰다 보면 감정의 미로에서 나오게 된다. 그러므로 나에게 글쓰기는 글을 쓰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지난날에 내가 쓰는 글들이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하고는 쓴다는 것에 대한 의문을 잃어버렸다. "내가 왜 계속해서 쓰고 있는 거지?" "무엇이 더 나아질 수 있나?" "써도 의미가 없는데" "쓴다 해도 아무도 봐주지 않고, 내가 쓴 글들이 특별난 것도 아니니 굳이 내가 써야 할 의미도 의무도 없는데 나는 왜 계속해서 쓰고 있나, 쓰는 것을 멈출 수 없나?"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억울하고 서운한(누구한테 억울하고 서운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기로 했다. 말로 시작하자니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될지 모르겠고, 이야기할 용기가 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냥 무작정 침대 옆에 놓인 편지지를 들고는, 연필을 잡고는 편지글을 쓰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게, 편지 글을 쓰면서 내가 나아지고 있음을 느꼈다. 마음은 차분해졌고 내가 왜 답답하고 우울했는지 알 것 같았다. 글쓰기에는 힘이 있다. 우울해하는 나조차 다시 글을 쓰게 만드는 힘, 글을 쓸 수밖에 없게 만드는 힘. 그 편지를 쓰니 글쓰기에 대한 의문을 다시 잠재워졌다.



  나에게 글쓰기에 대해서 쓰고 싶었던 글이 하나 있었는데, 하나가 더 추가가 되어서 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글쓰기는 나에게 구원이다. 절함, 절망에도, 괴로움에도 나는 글쓰기를 붙잡고 내가 쓴 글을 통해 구원받는다.(엄청나게 나르시시적인 결론이 아닐 수 없다) 글쓰기는 나에게 언제나 힘이 된다, 세계를 다시 살고 싶게 하는, 그런 힘.

  사설) 죽고 싶은 날에 내가 쓴 일기들을 읽다가 다시 삶을 많이도 생각했다. 그렇게 나의 글, 그리고 글 쓰는 것은 나에게 구원이 되었다. 내가 기뻐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것들, 생에 대해 생각했던 것들, 그런 단상들을 하나하나 다시 새기면 다시 살아갈 힘이 생기고는 했다.



다른 하나는 글에 대한 시선에 관한 이야기였다. 내가 글을 써서 익명의 타인들에게 공개하는 공간들, 브런치나 인스타그램, 그런 것들이 내 글의 무용성, 유용성을 나 자신 스스로가 내 글을 평가하게 만들었다. 내 글을, 나 자신이! 타인에 대한 반응에 따라서 평가하게 된 것이다. (물론, 나의 탓이다 하하) 타인에게 반응이 없으면 그것이 가치 없어지고 무용한 글이 되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래서 어쩔 때에는 좌절하기도 어쩔 때에는(반응이 좋으면) 우쭐해하기도 했다. 등단작가도 유명한 작가도 아닌데, 내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우쭐해했다.  


  나는 글쓰기의 진정성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사람들이 잘 읽을 만한 글, 좋아할 만한 글, 그럴듯한 글을 쓰고자 했다. 아이러니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글을 써야지 다짐한 순간, 그 처음에 먹었던 초심을 쉽게 잊어버렸다. 나에게 글쓰기는 늘 진실에 관한, 조금이라도 진실에 가까운 내 작은 고백들이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었고, 더 잘 나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글을 이용하려 했다니. 처음 마음 그대로, 늘 겸허한 마음으로 글을 쓰겠다. 누군가가 나의 글을 좋아하지 않아도, 나의 글이 인기가 없어도, 내가 쓰고자 했던 그 마음과 나에게 글쓰기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며 꾸준히, 계속하여, 글을 쓸 것이다. 나에게 글쓰기의 철학이 있다면 위와 같은 그런 것이다.



작가는 그 작가마다 글쓰기의 정의가 있어야 한다. 내게 글쓰기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 의지와 신념에서 흔들리면서 글을 쓰면 아니 된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 윤진 역, 민음사.



  처음엔 다른 사람과 내 감정을 공유하고 싶었고 그렇게 하기 위해 그나마 내가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 글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초라한 내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작은 공감이 된다면, 그것만으로 기뻐하며 꾸준히 계속하여 쓰기로 했다.


  나는 글쓰기 소재를 적는 노트에 뒤라스의 말을 붙여놓았다. 또한 최근 읽은 사강의 말도 매우 내게 도움이 된다. 글을 써야 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나는 괴로움이나 기쁨, 슬픔, 즐거움이 있을 때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런 사소함으로 나는 글쓰기를 숙명처럼 받아들이기로 한다. 비록 내 글이 유명해지지 않는다 해도, 나는 죽는 날까지 그 어떤 글쓰기이든 글쓰기를 놓지 않을 것이다.



문학은 모든 것이었다. 최선의 것, 최악의 것, 운명적인 것이었다. 일단 그것을 알고 나면 해야 할 다른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문학과 함께, 단어들과 함께, 그 노예들 그리고 우리의 선생들과 함께 악전고투하는 것 말고는 다른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문학과 함께 달려야 했고, 문학을 향해 기어올라야 했다. 그것이 어떤 높이인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똑같은 의미에서 내가 막 읽은 것, 내가 절대로 쓸 수 없을, 그러나 그렇게 하라고 나에게 강요하는 것, 그 아름다움 자체를 향해 달려가야 했다.   
다른 한편으로, 위계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중략) 그들이 언젠가 그 화재경보를 들을 것임을, 이따금 마지못해서라도 불을 향해 필사적으로 달릴 것임을, 거기에 완전히 몸을 던진 사람들만큼이나 비틀거리면서 심한 화상을 입을 것임을 나는 안다. 간단히 말해, 그 날 아침 나는 평생 동안 무엇보다도 사랑하게 될 어떤 것을 발견했다.

-프랑수아즈 사강, '독서', "고통과 환희의 순간", 최정수 역, 소담, 204-205쪽.



매거진의 이전글 너와 나의 노래가 계속 울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