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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cedie Sep 25. 2022

白露


지난 09월 8일은 가을의 3번째 절기인 백로였다.

물론 제때 일기를 쓰지 못했다. 그러니까 지금 쓰고 있겠지.


'하루, 이틀 지나도 늦게라도 써야지', '그래도 너무 늦지는 말아야지'라고 자신을 다그쳐보았지만 한번 미루게 되면 영원히 미루게 된다. 그래서 이미 두 절기를 보낸 다음에야 책상에 앉아 뒤늦은 일기를 쓰고 있다. 여름방학이 다 간 시기에 개학을 앞두고 지나간 날들을 서둘러 상기하며 숙제를 허겁지겁하려는 학생처럼. 15일에 1번씩이라도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기이다. 15일이면 완전 널널하지 않나? 너무 느슨하지도 타이트하지도 않은 좋은 간격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내 마음은 아니었나 보다. 달력을 보면서 다가올 절기를 확인할 때면, 귀찮다고도 생각도 하고, 또 무슨 말을 써야 할까 고민하고, 막연히 다가오는 의무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다.

난 항상 이렇게 끈기가 부족한 사람이었다.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는 사람, 그게 나였다. 한 해의 1/3의 넘어서는 지점, 가을은 농작물도 익고 하늘은 높고 말들도 살이 찌는데 나는 연초에 세웠던 계획이나 열정 같은 것들이 모두 소진된 것 같다. 마음도 몸도 사그라든다. 거둬드릴 게 없다는 생각도 든다.  


백로는 하얀 이슬로, 농작물에 흰 이슬이 맺히는 계절을 이른다. 아직 더위에 가시지 않는 구월.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쌀쌀하고도 차가운 공기가 느껴진다. 문을 활짝 열고 자다가도 새벽 추위에 놀라 자다가도 일어나는 일이 종종 있었다.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얼어붙을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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