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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cedie Jul 29. 2016

1. 유럽여행 그로부터 한 달 뒤

나의 유럽



  내 20대의 가장 큰 로망이 있었다면 그건 유럽 땅을 밟아 보는 것이었다. 나는 늘 유럽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막연하게 프랑스라는 나라를 동경했고, 서양의 문화, 예술에 심취해 있었기에 꼭 그 그림과 그 건축들을 실제로 보고 싶다는 꿈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 유럽에서 조금 짧다고 할 수 있는 3주를 보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을 있었는데 오히려 20년을 넘게 산 한국에 다시 적응하는 게 힘들었다. 늘 유럽을 동경해왔기에 친구들이 농담 삼아 나에게 사대주의자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렇게 그토록 내가 동경했던 세계와의 조우, 또한 늘 상 접하고 지냈던 이 문화와는 다른 문화의 세계, 그리고 여행이란 단어가 가능하게 하는 일상으로부터의 탈피나 꿈같은 경험들 때문에 그런 것들이 일상으로 복귀를 어렵게 만들었다. 


  이제 어느덧 한국에서 다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졌다. 솔직히 이건 좀 슬픈 이야기다. 내가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로 한 이상 어쩔 수 없는 굴레이기는 하지만(그 땅이 어떤 땅이든 간에). 한국 땅을 밟는 순간부터 나는 일상으로 복귀해 평소에 지내던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휴학을 하고 유럽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에 복학이 나에게 남았으며, 나머지 한 학기만이 남았기 때문에 당연한 수순으로 졸업을 걱정되었고 취업을 준비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겼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자, 이제 취업 준비해야지.”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말들이었다. 그 말들은 “자, 이제 노는 건 끝났어.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야.”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어느 정도의 짧은 적응기를 마치고 나서 유럽여행으로 재정난인 내 주머니를 위해서 다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어떤 사회에서 속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그 사회에 가장 빨리 적응할 수 있는 길인 것 같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자마자 여행을 다녀온 후 짤막하게 쉬었던 일주일과는 사뭇 다르게 무서울 정도의 현실감이 속도를 붙여 따라왔다. 그렇게 내게 주어진 외부 환경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다 보니, 어느덧 여행을 가기 전의 나의 일상적인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점차 유럽여행을 다니기 전에 익숙했던, 한국에 살던 나의 모습으로 말이다. 빨리빨리 바쁘게, 바쁘게 생활 모토로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다녀온 지 한 달이 채 지나기 전에는 주변 사람들이 “여행 어땠어!?”라고 물으면 이것저것 이야기해주고 다녀와서 사 온 기념품들을 나눠주기 바빴는데, 한 달이 넘어가자 “맞아, 너 유럽여행 다녀왔다 했지. 어땠어?!”라는 말에 여행을 다녀온 지 시간이 꽤 흘러서 무엇을 말해주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면서 대화를 떠넘긴다. (뭐 이거에 관해서는 내가 현실에 적응해서라기보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그건 다음에 글을 쓰도록 하겠다.)

 

  서글프게 유럽여행이란 건 하나의 신기루 같은, 몽상과도 같은 것이었나? 그런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건 전혀 아니다. 유럽을 다녀온 나는 분명 다녀오기 전의 나와 다른 나이다. 그건 꼭 유럽이 아니어도, 여행이 아니어도 사실 어떤 영향을 끼칠만한 경험을 했다면 그 사람은 분명 이전과 다른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또 이런 차이가 남들에게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들도 아니어서 그들에게 말하면 “그래?”하며 “나도 그랬어.”라는 심심치 않은 말들과 함께 넘어가기 마련이지만, 그것을 온전히 경험해 본 나는 알 수 있고, 나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어느 정도 이런 의미에서 남에게 여행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가장 분명한 경험의 차이는 유럽이 한국보다 더 좋았던 것들, 그것을 통해서 내가 배운 것들. 반대로 유럽에 비해 한국이 더 좋았던 것들, 그것을 통해서 내가 더 감사하게 된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정말 세상에 수많이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만큼 여행을 다녀와서 얻은 것은 가지각색일 것이다. 여유와 희망을 얻고, 때로는 나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찾게 되거나 문제를 해결할 힘과 열정을 얻을 수도 있고 반대로 나 자신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생기거나 낙담과 좌절을 얻을 수도 있다. 꼭 긍정적인 경험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무언가를 지난 3주를 통해 경험했다. 그건 사실 그렇게 특별한 것도 아니다. 유럽이 아니어도 다른 사람들은 생에 다른 지점에서 하게 될 수도 있는 그런 경험들을 했다. 그건 분명히 내가 일상적인 삶을 살면서도 마주친 우연하고 낯설게 새로운 경험과도 다를 것이 없다. 그처럼 그런 일상 속의 낯섦이 조금씩 바꾼 내 삶처럼 유럽여행도 나에게 어떤 삶의 부분을 바꾸어 놓았다. 유럽여행, 그로부터 한 달이 조금 많이 지났고 나는 다시 이전과 다름없이 생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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