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를 쓸 일이 있어서, 책을 빌렸다. 평소에 읽는 에세이집들은 내 독서 편식을 보여주듯 다 외국 작가들이었다. 장 그르니에나 까뮈 등등. 그러다 한국작가 에세이를 하나 빌려왔는데 도통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휘를 즐기는 맛은 확실히 모국어가 더 좋긴 하다.- 어쨌든 갑작스럽게 생각이 든 건데, (내가 아는, 읽은) 에세이 그 중에서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제일이다. 가벼운 템포로 시작하는데 그렇게 그 짧은 글자들이 내게 주는 여파는 다른 것 못지않다. 그리고 사심이지만 에세이에서 흘러나오는 하루키의 세계관이 좋다, 조금은 엉뚱하고 사소한 거에도 재밌고, 그리고 인상 깊은 딱 그와 같은 그 세계관이. 그래서 개인적으로 에세이는 무라카미 에세이집이 최애. 내가 에세이를 쓰게 되면 그런 에세이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조금은 엉뚱하고 가볍지만 자꾸 야금야금 생각나는.
에세이, 산문집이라는 것은 참 재밌다. 소설과는 또 다른 맛이다. 내가 소설로 만난 하루키와 에세이로 만나는 하루키는 조금은 다른 사람 같다. 신기하게도. 소설은 각색된다면, 에세이는 그 작가가 세계를 보는 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래서 남의 일기를 훔쳐보거나, 또는 남의 이야기를 조근 조근 들어주는 느낌. 그래서 그런지 소설보다 에세이는 쓴 사람과 나의 파장이 잘 맞아야 그 글이 즐거운 것 같다. 안 맞는 사람의 대화보다 생각과 말이 잘 통하는 사람과의 대화가 더 끄덕여지는 것과 같은 이치로. 아무튼 에세이는 다른 어떤 것 보다 사람의 맛이다. 그 사람을 느끼는 게 그 생각을 훔쳐보는 것이 참 즐겁다. 그러고 역시 에세이는 읽는 것도 제 맛이지만, 쓰는 것도 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