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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cedie Apr 17. 2018

증오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영화 <몬태나, Hostiles>



브런치 무비 패스 리뷰입니다.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 "몬태나"는 미국 1892년을 배경으로 한다. 땅을 차지하고, 지키기 위해 군인들과 인디언들 끊임없이 전쟁을 치렀던 그 땅과 그 시대가 이 영화의 배경이다.


  미군 대위인 조셉은 마지막 임무로 그의 최대 적수였던 인디언 추장 옐로우 호크의 마지막을 위해 그와 그의 가족들을 그의 고향으로 무사히 호송하는 일을 맡는다. 나이 들고 암이 걸려 얼마 살지 못하는 추장을 호송하라는 대통령의 명을 듣고 조셉은 반발한다. 조셉에게 그는 적일 뿐이고, 그의 동료들을 죽인 사람일 뿐이다. 영화 초반의 조셉은 분노와 증오로 넘쳐나는 인물 같다. 처음엔 조용하고 차분한 인물이라 생각했으나, 오랜 기간 동안 전쟁 속에서 그들은 적이었고, 서로의 목숨을 노렸으며, 서로의 소중한 동료와 사람들을 죽인 사람들이다. 증오가 넘치는 두 명이 몬태나라는 목적지로 향하는 이 여행이 불안하지 않을 리가 없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이 둘이 결국엔 혈투를 나누게 될 거라 생각했다. 이 둘 사이에는 그만한 긴장감이 존재할 충분한 이유가 되니까, 증오와 분노도.   


  이 둘의 관계가 반전되는 건 로잘리라는 여인의 등장을 통해서 이다. 코만치 부족에 의해 가족을 모두 잃은 로잘리가 이 여행에 같이 합류하게 된다. 로잘리가 자신들의 가족들을 묻으면서 애도하는 동안 군인들을 물론, 인디언 가족들 또한 이 여인의 슬픔을 같이 느끼며 애도한다. 그들 또한 적의가 넘쳐나는 이 시대의, 이 땅 위에서 자신의 동료를 그리고 가족들을 잃은 자들이니까. 몬태나로 향하는 여정에서 그들을 그들 모두의 적을 만나고 서로 협업하기도 한다. 그렇게 몬태나로 향하는 1,000마일의 여정 동안 광활하고 장대한 아메리카 땅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이들 속에 있는 분노와 증오는 조금씩 사그라든다.

 


  증오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조셉과 옐로우 호크 그 둘이 개인적으로 적대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은 그들이 서로의 소중한 사람들을 죽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죽임에 개인의 선택이 있었을까. 그건 땅을 차지하려는 미국의 욕심이었고, 인디언들은 단지 자신들의 땅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전쟁이라는 외부에서 오는 것들이 그들에게 증오를 심어주었고, 전쟁이 그들에게 서로를 증오할 이유를 만들어 주었다. 그렇다면 그 증오는 어디로 가는가? 영화 중간 그들의 여정에 합류했던 찰스처럼 그 증오는 자기 자신을 압도할 수도 있고, 아니면 조셉과 로잘리처럼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증오의 소멸로 이끄는 일 또한 나의 내부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이 영화 속에서처럼 이 여정이, 여정 속에 함께한 광대한 자연이, 그리고 서로를 더 알고 이해하게 하는 사건들이 증오를 다른 방향으로 가게 만든다. 마침내 몬태나에 도착해서 그들이 장례를 치르는 동안 그 땅의 주인이라는 나타난 미국인에게 조셉이 한 말과 태도들은 영화 초반에 나왔던 조셉과 정반대이다. 


  증오는 결국엔 파괴하는 일이다. 증오와 분노의 종점은 그러하다. 증오와 분노가 물론 사회적으로 이로운 일이 되기도 하나, 뜨거운 증오만으로는 파괴하는 것밖에 할 수 없다. 차갑게 분노할 줄 알아야 하고, 증오와 분노의 감정이 우리를 파괴하도록 만들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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