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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cedie May 22. 2018

순수함은 사라지지 않는구나

 

   지난겨울에 라오스로 여행을 다녀왔다. 해가 져가는 오후에 나 홀로 산책길을 나섰다. 어떤 가게 안에서 밖으로 보이는 풍경만을 관망하기보다는 짧은 시간이라도 이 동네를 내 발로 걸어 다녀보고 싶었다. 그렇게 어두워질 때까지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헤매다가 친구들과 약속한 시간이 되어서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때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두 손에 핸드폰도, 게임기도 없지만 아이들은 행복해 보였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까르르 웃고는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해 여름 서울에서는 기이한 풍경을 보았다. 아이들이 여럿이서 의자에 앉아 있는데 서로를 보지도 않고는 각자의 손에 쥐어진 핸드폰과 게임기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식당이었는데, 그 아이들은 밥을 먹는 것도 아니었고 서로 화면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필요한 말만 서로에게 건네며 시간을 보내기 바빴다. 


  그 장면은 조금 아니 사실 많이 나를 쓸쓸하게 만들었다. 골목을 휘젓고 다니면서 뛰어다니고 흙을 묻히고는 서로 같이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까르르 웃으며 같이 뛰어다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그런 시간들이 생각나서 그래서. 그런 어린 시절들은 이제 과거의 시간일 뿐이고, 시대에서 사라져 가는 풍경이라는 생각이 씁쓸했다. 시대가 변하면 풍경이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지만, 어린 시절의 어린아이들의 순수함 같은 것들은 기술과 문명, 시대의 흐름에 때 묻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그런 씁쓸한 생각들을 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 보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풍경을 서울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어린아이들이 서로 모여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있었다. 게임기나 핸드폰 등을 통해서 자극적인 재미를 이미 맛보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 단순한 놀이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웃음이 끊이지 않게 즐거워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 미소들을 보고 있으니 순수함이라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린아이들이 뛰어다니며 까르르 소리 내어 웃고, 노는 모습을 보면 그게 요즘 가장 흐뭇하다. 작은 핸드폰 화면 속에서만 각자의 핸드폰에 각자의 시선을 고정시킨 채 놀던 어린아이들을 보다가 아직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면서 까르르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니, 기술과 진보가 앗아가 버렸다고 생각했던 순수함이라는 가치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 같아서, 순수함이라는 것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 같아서 마음이 예뻐지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런 풍경을 보니 순수함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믿게 되고, 저 가치가 늘 빛을 잃지 않을 거라는 것이 내심 마음이 놓인다. 희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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