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이겨내기에 우리는 가족이었다.
가족이라는 건 참 이상하다. 세상에 여러 가정이 존재하는 것도 신기하고. 예를 들어 나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을 보고 고개를 수천번 끄덕이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걸어도, 걸어도"를 보면서 '저 정도면 양반이지'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에게는 그 영화가 불쾌하고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어쩌면 서로에게 가시 돋친,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는 가정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비록 내 세계 안에서는 없지만. 우리 집은 서로를 상처 주는 일이 일상다반사이고 남들한테는 그러지 않으면서 서로에겐 가시 돋친 말을 쏟아내어서 서로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것을 목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모인 것 같은 가정이다. 그래도 참 이상한 게 그렇게 울고 불며 소리 지르고 싸우다가도, 다음 날 엄마의 얼굴을 보면 화가 스르르 녹아버린다. 미안한 마음이 들고,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해져 버린다. 엄마의 주름살이 만드는 미소는 나를 너무 아프게 한다.
일전에 동생이랑 집 앞에 있는 산에 올랐다. 말이 산이지만 언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낮은 높이의 산이다. 작년인지 재작년인지 아빠와 동생과 엄마가, 우리 모든 가족 4명이서 이 곳을 같이 왔던 기억이 났다. 우리 집은 엄마와 아빠가 사이가 정말 좋지 않고 오랫동안 각방을 써왔고 같이 식사도 하지 않는 사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은, 어머니와 아버지는, 매번 "가족"이라는 것을 지키려고 노력해왔던 것 같다. 사이도 좋지 않으면서, 매번 싸울 거면서 몇 번이나 가족끼리 여행을 가곤 했고 생일 때마다 다 같이 저녁식사를 했다. 집 앞에 있는 산을 같이 오른 건 봄이 찾아와 벚꽃이 피었기 때문이다. 동네 산책을 가자는 말에 가족들 넷이, 사이도 좋지 않으면서 뿔뿔이 때로는 같이 발을 맞추며 길을 걸었다. 매번 그 끝은 싸움이나 찜찜함으로 끝났지만. 그런데 신기하게 우리 가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싸울 거면 얼굴을 안 보면 되지 매번 같이 어디를 가곤 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그 기간 동안 우리는 노력했던 거였다. 같이 살아보려고 나도 동생도 부모님도 가족으로 같이 살아보려고 각자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해왔던 거였다. 지금은 결국 서로가 떨어져서 살게 되었지만.
그래서 명절에 시골에 가거나, 친척들을 만나서 "그래도 가족인데 너네가 엄마 아빠를 설득해야 되지 않겠냐?", "같이 살아야 되지 않겠냐?"라고들 말하는 이야기가 듣기 싫었다. 물론 걱정 어린 마음에 한 이야기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그래도 노력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몰라서 그렇게 얘기한다고 생각했다. 봄날의 기억을 회상하면서 다시 반박할 말들이 생겼다. 우리 가족도 노력하지 않은 게 아니라고, 노력했다고, 그 최선의 결과가 지금일 뿐이라고. 우리는 그래도 우리로 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었다. 하지만 결과가 꼭 완전한 가정의 형태로 남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가정이 있고, 수많은 사연과 감정이 얽히고설킨 가족들이 있다. 그런 가족들을 보고 그들의 문제라고 단순히 짐작하지 말았으면 한다. 꼭 가족은 온전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도 노력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최선의 결과에 도달한 걸 수도 있을 테니까. 꼭 모든 가족과 가정이 붙어 있어야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서로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게 옳은 길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 노력을 해주었던 엄마 아빠에게 감사할 뿐이다. 비록 우리는 더 이상 네 식구가 아니지만, 맞지 않아도 노력하고 같이 이겨내고자 했던 수많은 시도들을 난 잊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