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이디 버드"를 보고 난 후,
“어릴 적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 어릴 적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다. 이건 자랑할 만한 이야기도 아니고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건 괜히 아무 잘못도 없는 부모님을 고개 숙이게 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영화 "레이디 버드(Lady Bird)"를 보고 어떤 장면에서 정신이 멈춰버려서, 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상대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 집이 엄청나게, 밥 3끼 못 먹을 정도로, 가난했던 건 아니다. 그냥 매번 급식비를 밀리고, 전기세, 가스비를 밀려서 생긴 웃픈(이거 웃기기만 한 것도 아니고 슬프고, 이거 또 슬프기만 한 것도 아니고 웃긴 일이기도 했다.)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라는 거. 그런 상대적으로 조금 가난하다고 할 수 있는 유년기를 보내왔다는 거. 그게 다 이긴 했다. 그래도 가난은 어린 나에게 그것뿐만은 아니었지만.
어린 마음에 나는 가난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 왜냐면 부모님도 그 가난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잘 아는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부모님 또한 감당하기 힘든 가난을, 나에게 "이렇게 버티는 거야"라고 노하우를 말해줄 여력도 없으셨을 테니. 그러니까 나는 가난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나는 가난은 나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엔. 그게 내가 가난을 버티는 방식이었다. "이건 내 가난이 아니니까. 내가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라는 마음으로. 내 가난은 내가 나중에 커서 내가 얻게 되는 경제적인 부족함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나 혼자 벌 수 있는 능력이 되는 데도 가난할 때 그게 가난이라고, 그렇게 생각해왔었다.
영화, "레이디 버드"에서 레이디버드는 자신의 가난을 부끄러워하고 수치스러워한다. 자신이 어디 사는지 말해주고 싶지 않아서 친구를 속이고, 자기의 집을 속이고, ("이게 내가 사는 집이야!" 이렇게 말할 수 없는 그 수치심은 그런 집을 가진 자 만이 알겠지만.) 엄마 아빠에게 소리를 지른다, 지긋지긋하다고, 이 가난이. 지긋지긋하고 가난한 집, 좁은 집, 뉴욕으로 대학을 보내줄 수도 없는 형편, 바로 저 옆 그 으리으리한 집들 옆의 초라한 내 것들. 그 마음이 너무 이해가 돼서 그 영화가 솔직하다고 생각했다.
가난은 정말 아무렇지 않은 일이 아니다. (그건 수치심을 동반하게 되는 일이기 때문에......) 나는 수치심을 가난 때문에 빨리 배웠다. 학교에서 내 이름이 호명되면 역시나 하는 마음에 매번 조마조마했고 매번 급식비를 늦게 냈던 나는 급식비를 안 냈다는 담임 선생님 말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나는 가난이 수치이고 그것을 가려야 한다는 것, 고개를 숙여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았던 것 같다. (대체 그걸 어디서 배웠을까나. 굳이 탓을 돌리자면 사회의 탓이겠지만.) 그래서 수치심을 이기기 위해, 좀 더 떳떳하기 위해 그 가난을 내 가난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도 참 어리석을 수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의 부모님들은 얼마나 마음이 무거울까. 나는 성숙한 자식의 마음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레이디 버드"를 보고 나의 정신이 멈추어버렸는데, 그건 그 영화 속에서 나의 모습과 나의 마음을 찾았기 때문이고, 또 얼핏 부모님의 마음과 부모님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를 객관적으로 마주하게 되었고, 그 과거의 나의 부모였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을 그 영화 속에서 본 것 같다. 가난을 부끄러워해서 내 것이 아니라고 여겼던 유년 시절의 나와 되지 않는 형편에 작은 것이라도 내게 해주었던 부모님이었지만, 동시에 가난, 가난을 입에 달고 살았고, 나는 밖에서는 수치심을, 안에서는 알 수 없는 책임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나에게 정말 잘 해주고 싶어도 하셨지만 영화 속 엄마와 크리스틴의 모습처럼, "너 키우는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는지 아니?", "나중에 커서 갚으면 되잖아!" 서로 다투던 날들이 일상다반사였다. 사실 뭘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난은 정말 잘못이 아닌가? 잘못이 아니라면 왜 우리는 서로의 탓을 하며 다투게 되는 걸까? 내가 했던 그 행동들은 정당화될 수 있나? 나의 탓도 부모님의 탓도 아닌 것 같았다. 그건 알고 있는데, 근데 왜 우리는 계속해서 가난을 수치스러워해야 하는 걸까? 고개를 숙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