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한 제주도 여행
나는 내 부모님을 좋아하지 않는다. 상처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내가 정말 죽고 싶었던 계절에 다른 나의 친구들은 자신은 부모님, 때로는 자신의 엄마 때문에 차마 죽지 못한다고 말했고, 엄마 때문에 살아간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내 엄마와 아빠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은 이와 같은 말이다. 엄마와 아빠가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 엄마와 아빠의 살아가는 이유가 내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와는 중학교 때부터 틀어진 것 같다. 내가 느끼는 엄마와 나의 거리는 그때를 기점으로 해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사회에서 인정하는 어른이 된 이후로는 엄마에게 의지할 일들이 더 줄어들어서 반대로 거리감은 더 늘어갔다. 엄마와 나는 출퇴근 시간도 맞지 않아서 같이 살면서도 불구하고 같이 밥 먹는 일도 한 달에 2~3번은 되었다. 얼굴도 보지 못하고 서로 잠들고 일어나는 일이 엄마와 나 사이에는 일상이다.
엄마와는 가치관도 취미도 좋아하는 것도 모두 다 다르다. 어떤 이야기를 꺼내 든 3~4번 주고받으면 대화는 짜증으로 끝난다. “너는 왜 항상 그런 식이니?”, “엄마는 왜 내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걸 인정안 하지?”
그러던 중 동생이 간신히 휴가를 냈고 20살이 넘은 이후로는 가 본 적이 없는 가족여행을 가게 되었다. 엄마와 나, 그리고 동생, 이렇게 셋이서. (엄마는 좋아하지 않으면서, 동생을 사랑하는 나니까) 나는 엄마와 여행을 가기로 했다. 여행을 앞두고 설레도 모자랄 텐데 걱정만 되고 스트레스만 쌓였다. 엄마와 가는 여행, 그 기간 동안 우리가 싸우고 서로에게 안 좋은 감정만 더 쌓여서 돌아올 것이 너무 뻔할 것 같았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숙소를 잡는 일과 렌트 카를 빌리는 일에서 실제로 동생과 내가 잡아 놓은 예약을 미덥지 못하게 생각하고, 동생과 내가 예약한 것들에 대해서 불만족과 불안, 걱정에 투정만 늘어놓았다. (친구에게 속상해서 말했더니 역시 세상의 부모들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부모님들은 아직도 우리가 어설프게만 보이나 보다.)
걱정을 안고 여행은 시작되었다. 짧은 2박 3일이었지만 그동안 엄마와 나와 동생은 싸우지 않았다. 서로 불편한 감정을 토로한 것도 첫날밤 단 한순간뿐이었다. 여행은 매우 즐거웠다. 여행을 다녀오기 정말 잘했다고, 엄마와 여행을 오기 잘했다고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엄마의 딸로 산 많은 해 동안 엄마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건 어쩌면 엄마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우리에겐 대화가 부족했다. 대화가 없으니 서로 이해할 수 없는 간격만 늘어났던 것이다.
첫날 에어비앤비로 잡은 숙소를 엄마는 못 믿겠다고 하고 들어가는 직전 어두운 골목들과 외관을 보고 다른 곳에서 자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엄마의 불안함. 그런 여행과 경험이 없기 때문에 무섭고 두려웠던 것이라는 것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는 숙소를 제대로 보고 들어가고 나서는 매우 좋다고 만족한다고 즐거워했다.)
티비를 틀고 "나 혼자 산다" 화사가 재방송하고 있었다. 궁금해서 방송을 보고 있는데 화사가 마마무 멤버들과 술 게임을 하고 술을 먹고 노는 모습을 나왔다. 엄마는 그 장면을 보면서 부럽다고 재밌겠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술 먹고 돌아다니는 것을 매우 매우 싫어한다. (하지만 나는 술을 매우 매우 좋아한다.) 엄마는 맥주 한 병에 알딸딸하고 맥주 두 병에는 구토를 할 정도로 알코올과 맞지 않는 사람인데, 나는 주종을 가릴 것 없이 술이라면 좋아서 달려드는 성격이다. 엄마의 말을 듣고 "엄마! 내가 술 먹으면서 저렇게 놀아, 친구들이랑." 엄마는 20살이 되자마자 상경해서 바로 일을 시작했고 그렇기에 친구들과 저렇게 술을 먹고 놀아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친구들과 술집 같은 곳을 간 것도 20살 때 10번도 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가 경험한 세계와 엄마가 경험한 세계는 너무 달라서, 엄마와 유년기와 나의 유년기, 엄마의 10대와 나의 10대, 엄마의 20대와 나의 20대가 달라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거다. 나는 이미 50대인 엄마만을 보았고 엄마가 어떤 20대를 보냈는지, 어떤 10대를 보냈는지도 잘 알지 못하고 간간히 들은 걸로만 유추할 뿐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엄마가 좋아하는 것, 엄마가 경험한 것들, 엄마가 지냈던 세월을 물어보지 못했다.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쩌면 좋아하지 않아서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이지만 사실 나는 그걸 궁금해했어야 한다. 엄마가 수영을 그렇게 잘했다는 것도, 어떤 것에 대한 두려움과 어떤 것들에게는 동경을 갖고 있다는 것도.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서 알지 못했던 엄마에 세계에 새롭게 알았다.
여행에 가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배려했다. 그런 순간들이 서로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게 했다. 나와 동생은 여행 계획을 엄마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맞췄다. 식사도, 가고 싶은 곳도 엄마가 좋아할 만한 곳을 생각했다. 엄마도 우리를 배려했다. 엄마에게 딸들과의 여행을 설렌 경험이었나 보다. 여기저기 자랑하기 바쁘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조르는 엄마를 바라보니 기분이 모락모락 했다. 식당에서 밥 먹는 걸 싫어하고 깐깐해서 모든 음식이 맛없다고 하는 사람인데 우리가 선택한 식당에서 밥을 맛있게 먹어준 것도, 술을 좋아하는 나에게 회에 술 먹으라고 회를 사준 것도, 나는 엄마를 배려하려 노력했고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 여행을 통해서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건만으로도 간격은 많이 줄어들었다. 거리는 그렇게 서로의 모르는 점을 알게 될수록 줄어드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그걸 왜 알면서도 노력하지 않았을까? 이미 나는 엄마와의 거리감을 너무 늦지 않았나 싶게 늦게 거리감을 좁혀나가고 있지만, 엄마가 나보다 빠른 세월을 살고 있기에 부족한 시간 동안 그 거리를 줄이고 싶고 결국엔 단순히 나의 엄마보다 그녀를 알고 이해하고 싶다. 우리에겐 이해가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