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입시철에 아빠 생각이 났다.
나는 대학교에서 조교로 일하고 있고, 입시철의 학교는 늘 바쁘다. 나는 입학처의 요청으로 미술 실기의 부감독을 하게 되었다. 엄마 또는 아빠의 손을 잡고 오는 학생들, 친구들과 화구를 들고 삼삼오오 오는 학생들, 아이들을 바래다주고 걱정되는 모습으로 그 뒷모습을 지켜보는 부모님들을 보면서 출근을 하니 내가 논술고사를 보러 가던 날들이 생각났다.
수시 시험을 보러 가는 날, 지금 생각해보면 먼 길도 아니고 서울 안에서 그 길이 뭐가 무섭다고 부모님이 없으면 괜히 두려워지곤 했다. 서울의 길이 낯설고 혼자인 게 두려웠던 것이 아니라, 입시를 보러 가는 내 마음이 불안해서 누군가가 함께 있어줬으면 했나 보다. 부끄럽게도 많은 논술고사를 보러 가는 내 옆에는 늘 아빠 또는 엄마가 함께 해주었다. 아빠와 한 여대의 논술고사에 함께 갔던 일이 생각났다. 아빠는 내가 논술을 볼 시간 동안, 그 2~3시간 동안, 운동장에서 무엇을 생각하며 어떻게 시간을 보내며 나를 기다렸을까? 출근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에 뒤이어 자연스레 아빠에 대한 몇 가지 기억들이 떠올랐다.
유년시절 내게 아빠는 늘 증오와 원망의 대상이었다. 우리 집안의 불화는 늘 엄마가 했던 말대로 "너네 아빠가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변명을 하자면 나는 너무 어려서 아빠의 좌절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빠의 절망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빠는 그런 와중에도 내게 희망이라는 것을 늘 깨우치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아빠와 같이 해가 들지 않는 깜깜한 창고에서 밖으로 화분을 옮기는 중에, 가지가 다 말라버린 나무를 옮기면서 그중 신기하게도 새파랗게 돋아난 단 하나의 잎을 보고는 아빠는 그 잎을 따서 내게 주었다. "환경이 어둡더라도 이렇게 싱싱한 잎을 낼 수도 있다"는 꽤나 낭만적인 이야기도 덧붙이면서. 나는 그 나뭇가지가 다 말라버렸어도 버릴 수가 없었다. 그 잎은, 아직도 내 책상 서랍 깊숙이 남아있다. 그 나뭇잎을 생각하면 괜스레 코끝이 시리다.
이미 어른이 된 나에게 아빠와의 기억들은 멀어져 가고 있었는데...... 그 입시 날의 풍경이 아빠를 생각나게 했고, 나는 감정적이 되어 눈물을 울컥하고 쏟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혔다. 나에게 아빠란 사람에 대한 생각과 이미지가 흘러갔다. 논술고사가 코 앞인데 시계를 두고 온 내게 자전거를 타고는 시계를 구해준 아빠의 모습. 실패했던 아빠. 어릴 적에는 바다를 떠돌아다니고 싶었다는 아빠. 감성적인 아빠. 책을 읽고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인 아빠, 혁오의 노래 가삿말처럼 아빠의 훔쳐본 일기장에 그 속에서 발견한 아빠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나와 같은 것을 좋아하고 꿈꾸는 사람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아빠는 피어싱을 했다. 기겁을 하면서 나이가 들어서 그게 뭐냐며 핀잔을 주려고 잔뜩 화가 났었다. 생각해보니 한 계절이 지날 때마다 머리 색을 화려하게 물들이는 나와 다를 것이 없었다. 나는 아빠를 꽤나 닮았고, 아빠를 닮아서 아빠를 미워했고 증오했다. 하지만 내가 아빠의 눈을 닮았다는 것을, 그 사실을 나는 최근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떤 영화를 통해서. 알코올 중독자로 우릴 고생시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밤 계속 술을 붓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나는 아빠를 닮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증오하던 사람을 닮았다는 사실이 내가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어린 나는 매일 밤 닫힌 아빠의 방을 바라보며 불안했었다. 매일 "그럼 죽어버리면 되잖아"를 싸움과 거친 다툼 끝에 내놓고, 문이 닫힌 당신의 방에서 내일 아침에 나는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봐버리고 말까 봐 두려웠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지금 내가 그 아빠의 닫힌 방 문을 이해한다는 것, 그리고 그 방 문 안에는 이제 내가 있다는 것, 그 사실을 어쩌면 아빠는 이미 다 알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빠를 닮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자식의 마음과, 자식이 자신을 닮았다는 것을 깨닫는 아버지의 마음은 밝고 유쾌한 일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그래서 아빠에게 요즘에 아빠가 생각났다는 것과 아빠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편지를 써서 주었을 때 아빠가 동생에게 나 어디 가냐고 물었다. 실제로 해외에 나갈 일이 예정되어 있어서 동생이 가잖아 해외 이랬는데 아빠가 아니 어디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편지를 썼더라 라는 말을 전했다. 아빠는 내가 아빠의 어떤 밤과 어떤 글들을 이해했던 것처럼 내가 건네준 편지 속에서 나를 읽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빠에게 그 마음을 말하고 싶었다, 누군가가 죽고 나면 더 이상 전해줄 수 없으니까. 나는 아빠를 닮았다고 그리고 당신을 증오하고 그리고 당신을 사랑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