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여행 중에서 2019.01-2019.02
기분이 좋지 않다. 밖의 눈위 놀이터는 오스칼와 이엘리를 떠올리게 할 뿐이다. 이곳은 스웨덴이 아닌데 단지 눈이 내리는 도시라는 이유 하나로 낯설면서도 아릿하게 친숙하다.
내게 파란 감정을 가져다주는 이 풍경들을 바라보면서, 난 또 M을 생각한다.
여행자의 마음을 다시금 느끼고 있다. 아니, 이 마음은 처음일지도 모른다. 여행을 목적으로 이 땅에 와서 관광이 아닌 긴 시간들을 마주하고 있으니 이 땅의 이방인이 된 기분이다. 나는 공허하도록 텅 빈 시간을 마주하고 앉아 있는데 이 곳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블라디보스톡과 이르쿠츠크의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그들이 일하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곳에 살지도 않고 일하지도 않는 나는 이 사회에서 이방인이다. 낯선 느낌이 낯설어서 기분이 이상하다.
돌아갈 곳과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을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하지만 유랑하면서 살 수만은 없는 법이다. 그것은 다른 것들을 희생해야 가능해진다. 이 낯선 기분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아마 까뮈가 썼던 그 문장들을 나는 다시 곱씹을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여행을 귀중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여행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던 일종의 내면적 무대장치를 부숴버리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속임수를 써볼 수가 없다 -사무실과 작업장에서 일하며 보내는 시간들 뒤에 숨어서 가면을 쓰고 지내는 짓은 더이상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들에 대해 우리는 그토록 심하게 불평을 해대지만, 실은 고독의 괴로움으로부터 그토록 확실하게 우리를 방어해주는 것도 그러한 시간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늘 주인공들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소설들을 쓰고 싶은 것이다. "내가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혹은 "아내가 죽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내일까지 꾸며야 할 한 무더기의 발송 서류가 잔뜩 남아있다." 여행은 이 피난처를 우리에게서 빼앗아가고 만 것이다. 우리의 가족 친지와 우리의 언어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우리에게 의지가 되는 모든 것들을 빼앗기고 우리의 가면도 벗겨져 버린 채 (전차의 요금이 얼마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다 그런 식이다) 우리는 완전히 우리 자신의 표면 위로 노출되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우리 자신의 영혼이 앓고 있음을 느끼게 될 때 우리는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 하나하나에다가 그 기적적인 가치를 회복시켜주게 된다. 아무 생각 없이 춤을 추는 여자, 커튼 뒤로 보이는 테이블 위의 술병 -이미지 하나하나가 제각기 하나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그 순간 우리의 인생이 거기에 요약되는 만큼 삶은 거기에 송두리째 반영되는 것같이 생각된다. 자연이 내려준 이 모든 산물에 민감해진 나머지 우리가 맛볼 수 있는 (명철의 도취에 이르기까지) 모순된 도취감들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 것인가. 아마 지중해를 제외하고는 여태껏 어느나라도 나를 이렇게까지 나 스스로에게서 멀리 떠어지게 하고, 동시에 이렇게 가까이 접근시켜준 일은 없을 것이다.
알베르 까뮈, '삶에의 사랑', "안과 겉", 김화영 역, 책세상, 88~89쪽.
이방인이 된다는 것은 내가 살아왔던 둘레가 닳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눈 밖에 없는 이곳에서 나는 내게 붙여왔고, 내게 붙여진 것들이 사라지는 것들을 목격한다. 내가 내 것으로 만든 것들이 가끔 소용없는 상황들을 마주하게 된다. 내 언어로 쌓아 올린 것들을 다른 언어로 표현해 내지 못하니 내 것이어도 내 것이라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언어 앞에서 무력하다. 언어는 자주 나를 좌절시킨다.
그렇다면 여행은 바깥에서 붙여진 것 없는, 내 안의 나를 돌아보기 좋은 환경일 것이다. 그런데 나에 대해서 생각이 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외부와의 충돌, 외부환경을 어떻게 대처하고 대응하는가를 통해 알 수 있게 될 뿐. 불확정성의 원리가 생각난다. 그렇다면 온전한 내 것은 없다는 말인가? 아니면 그것은 이미 희석되어버렸는가? 이미 내 안에 체화되어서 그것은 타물도, 내 것도, 정확히 무엇이라 할 수 없는 것일까? 어쩌면 그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이 시간을 통해서 아직 무엇을 얻었는지 모르겠다. 얻게 될지도, 멈추지 않고 달려가고 있다, 날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