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 열차에서 이야기
여행을 오기 전에 공책을 하나 챙겼다. 기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도 했고, 그곳에는 와이파이도 인터넷도 터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곳에서 긴 시간들을 보내고 싶었다. 서울에서 누릴 수 없는 고요하고도 긴 혼자의 시간들. 고독한 시간들. 내가 하고 싶은 일들만 해도 되는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연락해야 하는 의무도, 답장을 해야 하는 걱정도, 해야 할 일도 없는 시간들을 지내고 싶었다. 그러면 내게 새로운 것이 솟아나고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넘치는 여유는 오히려 공백이 되었다. 그런 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여행을 가게 되고, 많은 것들을 보게 되면, 그리고 겪게 되면, 쓰는 것들과 쓰고 싶은 것들이 많아질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도 많은 것들을 담아가고 싶었고.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쓰지 못했다.
많은 것들을 쓰지 못했다. 새로운 것들은 나오지 않았고 어떤 것을 써야 할지도 몰랐다.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쓰게 되는 것은 계속 반복할 수밖에 없는 추한 자기 복제뿐이었다.
매번 같은 그런 주제, 비슷한 그런 문장만 떠올리는 내가 개탄스럽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아무런 자극과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내뱉을 수 있는 거라곤 내 이야기, 내 것, 내가 겪고 내나 느낀 것뿐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저주 같다.) 나는 또다시 내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