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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 재 Nov 18. 2022

조카와 미국 여행을 마치고...

시카고 및 애크론 지역을 중심으로

조카와 나의 여행 계획


남편은 학기 중이라 우리의 여행에 동행할 수 없었다. 따라서 내가 조카를 가이드해야 했다. 남편을 따라다니며 돌봄을 받는 여행만 하다 내가 누군가를 케어하며 다니는 것은 많이 달랐다. 조카가 미국에 오기 전부터 나는 밤잠을 설칠만큼 걱정했다. 과연 내가 여행 가이드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막상 여행을 시작하니 조카와 나는 서로를 도와가며 생각보다 멋지게 여행을 즐겁게 잘할 수 있었다. 


사실 나의 공간감은 터무니없을 만큼 엉터리이다. 지도를 봐도 어디가 동이고 서인지, 남인지 북인지, 공간감이라고는 없는 나와는 반대로 구글 지도를 보며 바로 방향을 찾아가는 조카 덕에 내가 오히려 가이드를 받으며 다녔다. 내가 어딜 간다고 목적지를 알려주면, 조카가 지도를 보며 찾아가는 방식으로 협업하였다.   


조카와 함께한 3주간 여행은 3곳의 장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뉴욕과 시카고에서 각각 4박 5일, 나머지는 내가 사는 애크론과 주변지역을 돌아 보는 것으로 계획했다. 뉴욕과 시카고를 보기로 결정한 이유는 조카가 건축을 좋아하기도 하고, 자기의 전공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기왕이면 미국의 건축 역사상 중요한 두 도시 시카고와 뉴욕을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여행지는 어떻게 여행을 할 것인지에 따라 보는 방법이 달라진다. 우리는 짧은 여행일정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전망대에 올라 전체 시내를 조망하는 방법과 보트 투어를 하며 뉴욕과 시카고의 건축물을 살펴보는 여행을 기본으로 잡았다. 시카고도 뉴욕도 워낙 건축물과 스카이라인으로 중요한 도시라 전망대와 보트 투어는 훌륭한 여행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전체를 조망하고 난 다음에는 가급적 걸어다니며 디테일을 보았다. 걸어다니기 좋게 호텔도 다운타운에 잡았다. 뉴욕에서는 맨하탄 42번가에, 시카고에서도 다운타운의 중심지에 호텔을 잡은 덕분에 한 두 군데 버스나 지하철을 탄 것 외에는 거의 모든 장소를 걸어다니며 볼 수 있었다. 뉴욕에서는 센트럴 파크를 통과하여 다니면서 공원과 도시와 문명을 함께 즐겼고, 시카고에서는 미시간호 호변과 호변의 공원들을 따라 걸으며 미술관과 박물관에 다녔다. 자연스레 두 도시의 설계가 어떻게 다른지도 파악이 되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써보겠다.



시카고 여행


밀레니엄 파크에 있는 아니쉬 카푸어의 <클라우드 게이트>, 그러나 닉네임인 Bean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클라우드 게이트 뒤쪽에 있는 음악홀인 <J.프리츠커 파빌리온>,  프랭크 게리가 설계.

J.프리츠커는 세계 최고의 건축상으로 유명한 프리츠커상을 제정한 장본인. 그는 하얏트 호텔의 창업주인데 조카와 나는 마침 하얏트 호텔에 투숙했다. 

미시간 호변에 내려 앉은 캐나다 거위떼. 아침에 박물관을 갈 때마다 마주친 녀석들. 열심히 아침 식사를 하는데,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석양녘의 미시간 호수. 시카고 머무는 동안 이 호변을 걸어다니며 미술관, 박물관을 다녔다. 건축물도 좋았지만 자연의 숭고함에 어찌 비길 수 있을까.
필드 자연사 박물관에서 바라본 시카고 스카이 라인
쉐드 수족관에서 바라본 시카고 스카이라인
윌리스 타워 104층 skydeck에서 내려다 본 시카고



시카고 여행에서는 시티패스(Citypass)를 구매하여 다녔는데, 좋은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시티패스는 시카고의 중요한 장소 3곳과 선택적으로 2곳을 골라서 볼 수 있도록 입장권을 묶음으로 파는 상품이다. 각각 입장권을 사는 것에 비해 약 50%정도의 입장료가 절약되도록 프로그램된 상품이다. 무엇보다 입장권을 사려고 긴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데, 바로 QR 코드만 보여주면 통과가 되어서 편리했다. 우리는 기본 장소 3곳인 윌리스타워 104층 전망대인 skydeck, 필드 뮤지엄, 쉐드 수족관을 보고, 2개의 선택지로 시카고 미술관과 존핸콕 센터 94층에서 보는 360도 시카고 전망대를 사용했다. 


좌 애들러 천문관, 중간 쉐드 수족관, 우 필드 자연사 박물관. 이 지역을 통칭하여 뮤지엄 캠퍼스라 부른다.
필드 자연사 박물관
필드 자연사 박물관의 대표 소장품, 영화 <쥬라기 공원>에도 나왔던 공룡화석
필드 박물관에서 바라본 쉐드 수족관
쉐드 수족관 앞의 젊은이들
눈을 못보는 바다사자가 조련사의 소리를 듣고 쇼를 하고 있다.

이 수족관에서는 하얀돌고래인 벨루가의 쇼도 진행하고 있었다. 보는 내내 '우리나라는 돌고래를 자연으로 돌려보냈는데, 여긴 아직도 하고 있구나' 싶어 즐거움 보다는 안스러움으로 지켜보았다.

시카고강을 따라 보트투어를 하며 본 시카고의 건축물


존 핸콕 센터 94층에서 내려다 본 시카고 야경




뉴욕과 시카고를 다니다 보니 미술관과 박물관 등 입장료 금액이 상당했다. 입장료와 보트투어 비용만으로 수십만원을 썼다. 조카는 이 정도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궁궐과 미술관, 박물관 입장료가 너무 저렴하다고 우리도 여행자에게는 더 올려야한다는 말을 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뉴욕과 시카고를 여행하며 조카와 나는 두 도시의 다른 점을 많이 발견했다. 가장 큰 차이는 뉴욕에는 밤낮으로 사람이 넘쳐 늦은 밤에 다녀도 별로 위험하다는 느낌이 없었던 반면, 시카고는 저녁이 되면 길거리가 한산하고 어둑하여 밤에 다니기가 무서웠다. 그런 연유로 저녁 먹은 이후로는 내내 호텔에서 시간을 보냈다. 


좌 : 호텔에서 바라본 풍광. 달이 떴다. 우: 호텔 근처에 있는 칼더의 작품 <플라맹고>




애크론과 아미쉬 컨트리


뉴욕과 시카고 여행 사이에 기간을 두어 우리는 애크론의 우리집에서 휴식 기간을 가졌다. 대도시에 비해 중도시인 애크론은 조용하고 자연이 많은 지역이다. 조카는 굿이어 타이어를 설립한 사이벌링 가문의 대저택 스탠 휘윗 홀 앤 가든(Stan Hywet Hall and Gardens)을 세번이나 다녀왔다. 두번은 나와 같이, 한번은 혼자서. 미국에 온 바로 다음날 나와 함께 저택과 정원 전체를 한 번 보았고, 다른 한번은 조카 혼자 정원만, 세번째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날 다시 전체를 보았다. 집에서 걸어서 20여분 거리에 있는 대저택은 1915년에 영국의 튜더 스타일로 완성이 되었는데, 1955년 설립자 사이벌링이 돌아가시고 자녀들이 저택을 애크론시에 기증하여 1957년부터 지금까지 박물관으로써 시민에게 공개가 되어 있다. 저택의 내부도 아름답지만 다양한 나라의 스타일로 조성해 놓은 정원들도 아름답다. 


앞에서 본 스탠 휘윗 홀
저택 뒷편에서 본 스탠 휘윗 홀. 한 컷에 전체가 다 잡히질 않는다.
크리스마스 장식중인 스탠 휘윗 홀. 이 저택은 하지 방향에 맞춰 지었다고 한다. 문을 열어놓은 바깥으로 분수가 있는데, 이 방향을 축으로 하여 지은 모양이다.




조카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날 이 저택과 우리 동네를 한번 더 둘러보고 싶다고 하여 갔는데 처음 방문하던 때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저택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진행중이었다. 저택 내부 곳곳에는 연세 드신 도슨트들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관람객에게 저택의 역사 및 부분 부분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첫 방문 때는 보기에 바빠 도슨트들의 설명을 경청하지 못했는데, 다시 갔을 때는 저택의 역사를 더 자세히 알고 싶어 도슨트의 설명을 경청했다. 


이 저택에는 미국 제 27대 대통령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 (임기 : 1909.3.4.~1913.3.4.)도 다녀갔다고 한다. 도슨트는 그가 묵었던 장소가 어디였는지도 소개를 해주었다. 조카는 그의 이름을 듣자 바로 1905년의 가쓰라 태프트 밀약(1905년 7월 미국과 일본이 필리핀과 대한제국에 대한 서로의 지배를 인정한 협약으로 일본이 제국주의 열강들의 승인 아래 한반도의 식민화를 노골적으로 추진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출처: 네이버지식백과)의 그 태프트인가보다고 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조카의 말이 맞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는 정말 못된 짓을 한 대통령이 아닌가. 저택이 완성되어 사이벌링 가족이 이 저택에 입주한 해가 1915년이니 태프트 대통령이 방문했던 때는 아마도 대통령 임기가 끝난 이후였을 듯하다. 


태프트 대통령이 묵었던 방. 앞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사진이 태프트 대통령
방 안쪽 모습




조카가 다음 날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는 말을 하였더니 한 도슨트께서 더 자세하고 친절하게 여러 장소에 대해 설명을 해주시고, 이미 다른 장소에 가 있던 우리에게 오셔서 한가지 까먹었다고 저택의 면적에 대해서 알려주고 가셨다. 방이 65개인데 전체 저택 면적은 65,000스퀘어 피트(약 1,820평)라고. 나중에 전체 면적을 확인해 보니 정원포함 전체 넓이는 70에이커이니 약 85,700평 정도이고, 현재 미국에서 22번째로 넓은 집이라고 한다.  


돌아갈 날을 앞두고 뭘 좀 특이한 곳을 보여줄까 하다가 집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아미쉬 컨트리를 데리고 갔다. 비가 제법 내리는 날이어서 드라이브를 하며 아미쉬 마을을 둘러 보았다. 조카는 아미쉬 마을의 자연경관과 평화로운 분위기를 좋아했다. 할 수 있다면 몇 개월 머무르며 아미쉬 마을의 삶을 경험해 보고 싶다고 했다. 아미쉬 마을에서 제조한 다양한 와인도 시음을 하고, 돌아올 때는 민들레 와인을 비롯하여 몇가지 다양한 과일향 와인을 구입하였다.


약간의 돈을 내고 우리는 각각 4종류씩 와인을 시음하였다.
래이 브래드버리의 <민들레 와인>을 읽고 꼭 다시 사고 싶었던 민들레 와인. 4병을 사서 2병은 지인들에게 선물했고, 나머지 두 병은 올겨울 우리 부부가 마시려 한다.

  



길 것 같은 3주도 금방 지나가고 조카를 보내고 나니 집이 갑자기 적적해졌다. 키도 크고 몸집이 좋은 조카가 집에서 왔다갔다하는 모습을 보면 집이 꽉 찬 듯 활기가 넘치더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은 뭔가 휑한 느낌이 든다. 곧 적응이 되겠지만.


3주간 한국을 다녀오고, 곧 이어 조카가 나를 방문하여 3주를 머물고 갔다. 거의 두 달을 일상을 벗어나 살았다. 마음이 충분히 환기가 된 것 같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와 내가 해야할 일들을 하나씩 다시 해나가려고 한다.  


미시건 호수 위로 떠오른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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