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나절 동안 바이든 대통령과 동선이 겹친 날
거의 두달 동안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못했다. 그동안 나는 한국을 다녀왔고, 내가 돌아오고 난 이후로는 조카가 나를 방문하여 바쁜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가 발생한 이후 3년동안 한국을 가지 못했다. 마침 여권도 갱신해야하고 여러가지 그동안 적체되어 있는 볼일도 볼 겸 9월 말에 3주간 한국을 다녀왔다. 관공서 볼일과 은행 볼일, 개인적인 볼 일을 보느라 바쁘게 다녔다. 내가 미국으로 돌아오고 난 열흘 뒤에는 조카가 미국에 왔다. 9월에 군대를 제대한 조카는 바로 복교를 하지 않고 한 학기를 쉬고 있다. 꿀맛 같이 달콤하고 한가한 이때 나는 조카가 좋은 시간을 보내기를 바랬다. 마침 여행비수기라 비행기값도 저렴하여 조카는 미국 여행차 우리집에 왔다. 조카와 나는 3주간 미국 여행을 같이 하였고, 이번주 월요일 아침 비행기로 한국에 돌아갔다. 도착하자 마자 찍어서 보낸 사진을 보니 20시간 넘는 비행에 피곤했던지 힘이 넘치는 청년임에도 눈꺼풀이 내려앉아 있었다.
조카와 나는 뉴욕과 시카고를 여행하였다. 미국에 오고 난 며칠 동안 우리집에서 시차 적응 겸 쉬고 나서 뉴욕 여행을 먼저 하였고, 다시 애크론으로 돌아와 며칠간 체력을 회복한 후 시카고를 여행하였다. 시카고에서 돌아온 바로 다음날이 남편의 생일이라 같이 생일을 축하하였다. 돌아갈 때까지 삼일간은 우리집에서 가까운 장소를 여행하며 여행을 갈무리 했다.
이번 글에서는 뉴욕 여행 중에 겪은 에피소드를 소개하려고 한다. 많은 사람이 뉴욕을 여행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을 하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미국인 친구들에게도 이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더니 자기들은 미국에 살아도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라고 흥분해 했다.
여행 네째날이던 10월 31일 오전, 조카와 월드 트레이드 센터와 추모기념물을 보고 월가로 향했다. 걸어서 10여분 거리나 될까? 지척에 월가가 있었다. 조카가 월가를 보고 싶어해서 월드 트레이드 센터와 추모관, 그리고 월가를 묶어 한 날 보기로 했던 참이다. 월가는 생각보다 거리가 짧았다. 하도 뉴스에서 자주 회자 되던 곳이라 실제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긴 거리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거리는 짧았지만 월가 양쪽으로 뉴욕증권거래소, 뉴욕 은행, 트럼프 빌등 등 높은 빌딩들이 즐비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트럼프 빌딩은 뉴욕의 랜드마크 건물 중 하나로 보호를 받는 건물인데, 1995년 트럼프가 구입을 했다. 이 건물은 1929~30년에 건축이 되었는데, 맨하탄 은행이 있던 건물이다
월가를 걸어내려와 이스트강변에 닿았다. 그런데 하늘 위로 헬기가 여러 대 낮게 날고 있었다. 9월에 제대한 조카가 "왜 군용기가 날고 있지?" 하며 하늘을 내내 쳐다보았다. 뉴욕을 여행하다 보니 관광 헬기가 하도 많아서 그런 헬기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나와 달리 막 군대를 제대한 조카 눈에는 헬기가 일반 헬기와 다른 것이 바로 파악이 되었던 가보다. 그런데 부두가에 사람들이 모여 일제히 핸드폰 카메라를 꺼내들고 한 장소를 향하여 동영상 촬영을 하고 있었다. 조카가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던지, "이모, 대통령이 온대!" 나는 '왜?' 하고 물었지만 이유를 아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대통령의 동선과 이유는 비밀이 아니던가.
조카는 핸드폰 카메라에 광학 기능이 탑재되어 있어 원거리 촬영이 가능한데, 줌인하여 찍은 헬기 사진을 보니 헬기에 "United States of America"라고 씌여 있었다. 멀리서 보았지만 헬기에서 급히 누군가 내리고, 한 여성도 급히 내려 검정색 긴차로 옮겨 탔다. 주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아마 대통령이라면 경호부대원들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차는 대로로 빠져 나갔다.
조카와 나는 월스트리트를 다시 거슬러 올라가 지하철을 타고 전날 다녀온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향했다. 전날 6시간을 관람했지만 조카는 못 본 부분이 너무 아쉽다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한번 더 가자고 하여 가기로 했던 참이다. 그렇게 12시 조금 안되어 미술관 근처에 도착했다. 그런데 길거리에 차단막이 줄지어 세워져 있고 여기저기 경찰들이 많았다. 군복을 입은 군인들, 검정옷을 입은 사람들이 미술관 근처에 몰려 있었다. 미술관 지붕 위에도 경호대원들이 아래를 내려다 보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하도 궁금해서 한 경찰관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대통령이 미술관에 와있다고 했다. 왜 오셨냐고 물었더니 자기들도 모른다고 했다.
조카와 나는 경찰이 알려주는 대로 차단막이 없는 곳을 통과하여 미술관에 들어갔다. 티켓팅을 하는데 직원이 지금 1층의 이집트관과 바로 그 위층의 아시아관이 폐쇄되어 보지 못하는데 그래도 티켓팅을 하겠냐고 물었다. 그러나 오후에는 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전날 이집트관을 이미 보았고, 조카도 이집트관과 아시아관을 전날 이미 보았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고 표를 샀다. 관람을 하다 1시 반경 점심을 먹으려고 미술관 내 카페로 가다 보니 이집트관은 다시 오픈되어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집트관에서 추모식에 참석 중인 대통령을 엄호하기 위해서 이집트관 뿐 아니라 바로 위층인 아시아관까지 관람을 차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녁에 호텔로 돌아와 TV 뉴스를 보았지만 미술관을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 이야기는 없었다. 인터넷을 서칭하니 뉴욕 포스트와 같은 뉴욕 지역신문에만 기사가 실려 있었다. 이번 방문은 대통령의 공적 방문이 아니고 개인적인 방문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신문 기사에 난 대통령의 미술관 방문이유는 이러했다.
9월 22일 96세로 세상을 떠난 도널드 블링큰(안토니 블링큰 현 국무장관의 부친)의 추모식이 바로 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렸다. 그 추모식이 미술관 내의 이집트관,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공간인 <The Temple of Dendur>에서 열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추모식에 참석한 것이었다.
전 대통령인 오바마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도 초대를 받았는데, 그들은 참석하지 않았다고 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전현직 대통령이 줄줄이 초대가 되고, 게다가 관람객의 관람까지 차단해 가며 개인의 추모식을 미술관에서 진행했을까 궁금했다. 단지 현직 국무장관의 부친이라고 해서 이렇게 까지 하지는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도널드 블링큰은 재정가이자 예술후원자이자 외교관을 지낸 인물이다. 마크 로스코와 1956년 만나 열렬한 팬이 된 그는 1970년 마크 로스코 사망 후 로스코 재단의 회장으로서 로스코의 작품들을 관리했다. 로스코의 작품 중 1000여점을 30개의 미술관으로 나누어 주어 감독했고, 약 300여점의 작품들은 워싱턴 DC의 내셔널 갤러리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MoMA, 구겐하임, 휘트니미술관으로 보내었다. 이 외에도 예술계에 공헌한 업적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아마 이러한 그의 공적이 있어서인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그의 추모식이 열린 것 같았다.
신문에는 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바이든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도 소개하고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마린 원(Marine One is the call sign of any United States Marine Corps aircraft carrying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마린 원은 미국의 대통령이 탑승한 미국 해병대의 비행기의 호출부호를 가리킨다)을 타고 월가의 Landing Zone에 내려 차로 갈아탄 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11시경 도착했다. 90여분간 추모식에 참석하고 미술관을 떠나 워싱턴 DC로 돌아갔다고 하니 우리가 미술관에 도착한 12시경에는 이집트관의 신전에서 추모식에 참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미술관 주변에 경호하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고, 메트의 직원들도 이집트관 앞에 나와 긴장된 표정으로 줄지어 서 있었던 모양이다.
오늘 대통령의 추모식 참석은 대통령의 차량이 미술관에 도착할 때까지도 비밀에 붙여져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의 움직임은 공적 엄무일 때는 말할 것도 없지만 개인적 참석에도 이렇게 대단위의 경호대와 수행단이 같이 움직인다는 것을 직접 목격한 하루였다. 신문에는 우리가 오전에 목격했던 그 비행기와 비록 멀어서 자세히는 보지 못했지만 대통령을 엄호하는 군인들의 모습도 실려 있었다.
재미있던 것은 내가 경찰에게 "President"가 왜 미술관에 오셨냐고 물었더니, 경찰관은 "왜 Biden이 여기 왔는지 모르겠다"라고 대답했다는 사실이다. 여러 경찰관이 대통령의 이름을 거명하는 것을 들은 조카는 "이 사람들은 "대통령"이라고 지칭하지 않고 그냥 이름을 부르네."라고 하여 나도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우연이지만 대통령이 월가 근처의 이스트강 부두에서 내려 미술관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보았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는 지척 거리에 같이 있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렇게 반나절 동안 대통령과 동선이 겹친 날이었다. 직접 대통령을 본 것은 아니지만 미국 대통령의 활동을 바로 현장에서 역력히 살펴본 하루였다. 이렇게 뉴욕 여행 중에 조카와 잊지 못할 또 하나의 추억거리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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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ypost.com/2022/10/31/biden-attends-met-memorial-for-antony-blinkens-late-d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