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정착민 vs. 유목민
주말이면 통화를 하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와 나는 중, 고, 대학 동창이다. 학창 시절 사는 집도 멀지 않아 서로의 집에 놀러 가기도 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친구의 결혼식과 신혼집에 놀러 가기도 했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그 친구와 나는 한국을 떠나 미국이란 하늘 아래 살고 있다. 친구는 나 보다 일찍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나이 40대에 한의학을 공부하여 한의사가 되었다. 지금은 한의원을 열어 열심히 활동하고 돈도 잘 벌고 있다. 그 친구는 서부에, 나는 동부에 살다 보니 만나지는 못하지만 통화는 자주 한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이 친구가 좋았다. 4 자매의 맏이였던 친구는 딸만 있는 집안의 맏이라 그런지 리더십과 카리스마가 넘쳤다. 그에 비해 나는 4남매의 장녀였지만 바로 아래 한 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어서 전형적인 장녀로서의 훈육을 받으며 자랐다. 무엇 하나를 해도 부모님의 허락을 받았고,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조차도 제대로 결정하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친구는 대장부처럼 보였다. 생각이 시원시원했던 친구와 우유부단했던 나는 그럼에도 희한하게 잘 통했다. 우리가 하는 대화의 이면까지 서로 이해했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친구에게도 나와 비슷한 우유부단함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내 안에도 내가 모르던 과감한 결단성과 리더십이 있다는 것도 알았지만 말이다.
이 친구와 며칠 전 통화를 하다가 전화를 끊기 전 했던 한마디로 인해 한바탕 크게 웃었다. 통화가 끝날 때쯤 오늘 뭐할 것이냐고 묻길래 집에 있으면서 글을 쓰거나 유튜브를 보면서 보낼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도 친구에게 뭐할 것이냐고 물었더니 주말인데도 환자 예약이 있어 병원을 나갈 것이라고 했다.
전화 끝에 '나는 집에 있는 것이 좋아.'라고 했더니 친구가 "너는 전형적인 농경정착민 성향이고, 나는 초원을 달리던 유목민 성향인가 봐. 말 대신 나의 애마(자동차)를 타고 천지사방으로 돌아다니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같이 와... 하고 폭소하고 말았다. 진짜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친구는 바쁜 일상에도 등산, 바다낚시, 악기 연주 등 다양한 활동을 즐기지만 나는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해서 거의 모든 일상이 집에서 이루어진다.
학창 시절에는 학교만 파하면 집에 와서 모든 시간을 보냈고, 직장인이었을 때도 직장만 끝나면 바로 집으로 와서 시간을 보냈다. 퇴사를 하고 몇 년간 공부를 하던 시절에는 집에서 나가질 않았다. 먹거리가 떨어지면 어쩌다 한 번씩 나가서 장을 보긴 했지만 급한 용무가 아닌 이상 며칠씩 밖에 나가지 않고도 잘 지냈다.
그러다 중년이 되면서 갑자기 건강검진 상의 수치가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고 나서는 덜컥 겁이 났다. 예전에는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아도 모든 수치가 정상이었는데, 중년이 되면서 여러 가지 수치가 성인병 전조증세를 보였다. 미국으로 이주하고 나서 아침 걷기 운동을 시작했는데, 그럼에도 이 시간 이외에는 거의 외출을 하지 않는다. 가끔 오후에도 한번 더 산책을 다녀오기도 하지만 내 건강을 위해서 움직이는 시간 외에는 나는 집에서 하루 종일을 보내도 답답하지 않다.
친구와 전화를 끊고 나의 식습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친구가 한의사라 자연스레 나의 체질에 맞는 음식을 추천해 주기도 하고 건강을 위해 먹으면 좋을 약재를 추천해 주기도 한다. 나의 식습관은 잡식성이다. 식물성 음식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고기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해산물 종류는 모두 좋아한다. 그러고 보면 나의 DNA에는 구석기, 신석기시대의 조상님들 식습관이 고루고루 남아있다.
구석기와 신석기시대에는 남성이 사냥을, 여성이 채집을 하는 생활이었다. 물가에 살았으니 어류와 패류는 자주 먹었을 것이다. 신석기시대가 되어 농경이 시작되었으나 동물의 가축화가 이루어지며 사냥을 가지 않아도 육식을 겸할 수 있었다. 농경과 함께 채집 생활도 여전히 병행되었지만 들판과 산을 헤매는 시간 보다는 자기의 주거지 근처에서 농경을 하며 보내는 시간이 늘어갔다. 지금의 내 식습관이 바로 이 경로와 닮아 있다. 식물(채소류, 과일류), 어패류, 육식(소고기, 돼지고기, 가금류 등), 곡물류로 이루어진 식습관을 즐기고 있으니까. 나아가 농경을 하며 형성된 정주생활이 바로 나의 라이프 스타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농경이 용이하지 않은 초원지대에서는 유목 생활이 이루어졌다. 농경이 되지 않는 지역이니 대체로 육류와 젖으로 이루어진 식사를 했다. 따라서 필요한 비타민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교역을 해야했다. 티베트와 같은 지역에서는 중국의 윈난성을 비롯한 차 재배지에서 마방들을 통해 차를 수입하여 우유에 끓여낸 차를 마시며 비타민을 보충했다. 먹거리 이외에도 필요한 것을 구하기 위해 남성들은 말을 타고 멀리까지 가서 물물교환이나 교역을 통해 필요한 물자를 구해왔다. 남성들 뿐 아니라 가족 전체가 수시로 옮겨 다니는 삶을 살았다. 나는 고기는 잘 먹지만 유제품을 잘 소화시키지 못하는 것을 보면 전형적인 농경정착민의 DNA가 맞고, 또한 한곳에 머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보면 유목민의 후손은 아닌 듯하다. 혹시 정주화된 유목민이라 오래 전의 선조의 삶의 방식을 잊어버렸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전형적인 농경정착민의 캐릭터인 나도 코로나로 오랫동안 여행을 하지 못했더니 여행이 하고 싶다. 매년 가던 한국도 2년째 가지 못하고 있고, 일 년에 몇 번씩 가던 남편의 나라 캐나다도 가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의 위세가 이토록 강력하게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다행히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라 코로나로 칩거 생활을 하면서도 크게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든 나갈 수 있는데 나가지 않는 것과, 나가고 싶은데 나가지 못하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크다.
그러고 보니 나는 정주형 인간이긴 하지만 가끔 유람을 하고 싶어 하는 유목적 기질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 예전 어른들은 자신이 태어난 지역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고 평생을 살다 가시는 분들이 많았다. 아마 나 역시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농경시대에 태어났다면 동네 밖을 나가보지 않고 평생 살아도 답답함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는 마음만 먹으면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올 수도 있는 시대이다. 자동차와 비행기가 보편화되어 국내뿐 아니라 국외도 자주 유람할 수 있는 시대이다. 나는 정주형 인간이지만 이미 세상이 넓다는 것을 경험한 사람이라 한 곳에 정주하여 살더라도 한 번씩 바깥세상은 구경하고 싶은 것이다.
친구와의 통화로 크게 한바탕 웃고 나서 이런저런 나의 성향에 대해 생각해 본 시간이었다. 과연 앞으로도 이 기질이 그대로 지속이 될지, 아니면 어느 날 갑자기 무의식 깊숙이 내재되어 있던 유목 기질이 발동하여 괴나리봇짐을 싸들고 산천을 유람하러 나설지 모를 일이다. 선사시대부터 형성된 조상님들의 기질이 나의 DNA에 물려진 이상 나는 나의 기질을 적절히 즐기면서 살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성향을 잘 파악하여 개성껏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살 때 인생이 즐겁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 en.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