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동네 친구였던 수전과 프랭크
5년째 매일 아침 동네 산책(걷기 운동)을 한다. 요즘엔 일요일은 쉬지만 날이 궂어 걷지 못하는 날만 빼고는 거의 매일 걷는다. 내가 딱히 산책을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운동을 워낙 싫어해서 그렇다. 걷기 운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1~2주도 밖에 안나가는 집순이 스타일이다. 근래 폭설로 군데 군데 인도가 막혀있어 산책을 못하게 되자 열흘이 넘도록 집안에만 있었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지독한 집순이 스타일이다. 그런 내가 이렇게 살다가는 성인병으로 죽겠다 싶어 2018년 여름무렵 부터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매일 아침 산책을 하다보니 그 시간대에 산책하는 사람들을 거의 매일 마주친다. 처음에는 가벼운 인사만 나누며 지나쳤지만 햇수가 계속될수록 친해져서 마침내 통성명하는 친구도 생겼고, 종종 걸음을 멈추고 안부를 나누는 사람도 생겼다. 그런 친구 중에 지금은 볼 수 없는, 잊을 수 없는 친구가 있다.
아침 산책 길에 자주 보는 사람 중에 키가 자그마하고 몸집이 다부진 남성이 있었다. 그는 볼때마다 이른 아침에 커다란 배낭을 메고 어디론가 가거나 갔다 오는 모습이었다. 커다란 약봉지를 든 날도 있었다. 자주 보게 되면서 가벼운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산책하며 지나치는 한 아파트에 사는 남성이었다. 종종 아파트 앞에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기도 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면서 가벼운 인사만 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작년 여름부터 한 (백인)할머니의 휠체어를 끌어주고 있는 모습을 종종 목격했다. 할머니는 뇌졸증을 앓고 계셨다. 몸이 마비되어서 목과 손만 천천히 움직일 수 있는 것 같았다. 오눌하지만 말씀은 하셨다.
그날도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 두 사람이 나란히 아파트앞에 앉아 있었다. 여느 때처럼 인사를 건넸다. 할머니의 이름을 몰라서 약간의 장난을 섞어, 'Good morning, lady?'하고 인사를 건네고 그 남성에게도 인사를 했다. 그동안 나의 인사에 손인사로만 가볍게 대꾸하던 남성이 활짝 웃으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며칠 후에는 우리 집 근처를 지나고 있는 두 사람과 마주쳐서 또 인사를 건넸다. 가벼운 인사와 함께 좋은 하루 보내시라고 인사를 했더니 할머니도 나에게 같은 인사말을 했다.
어느날 아침 산책을 나섰는데 그날은 아파트 앞에 두 사람이 안보였다. 오늘은 두 분이 안나오셨나보다 하고 지나치려는데 어디서 쿵쿵 소리가 들렸다. 이상하다 싶어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아파트 위를 올려다 보니 두 사람이 아파트 4층 계단참에 앉아서 아파트 앞을 지나가는 나를 내려다 보며 유리창을 두드리고 있었다. 너무 반가워서 한껏 손을 흔들어서 인사를 하고 산책을 계속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그 아파트 앞을 다시 지나는데, 마침 남성이 나와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내가 '잠시 휴식 시간인가 보네요.' 하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는 할머니가 어머니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다. 그제서야 그가 그녀를 케어해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짐작이 들었다. 어느 날 커다란 약봉지를 들고 있었던 것, 또 커다란 배낭을 매일 메고 다니는 것도 모두 그녀를 케어하는데 필요한 물품들이었던가 보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나에게 그녀가 나에게 선물을 전하라고 했다면서 주머니에서 뭘 꺼냈다. 중국식 부채였다. 그러고는 나에게 중국인이냐고 물었다. 나는 한국인이라고 대답하고는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아직도 레이디가 창 앞에 앉아 계시냐고 물었다. 아파트 위를 올려다 보니 그녀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계시길래 두 팔을 휘저으며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고개를 잘 숙이지 못하는 그녀를 위해 내가 보이도록 아파트에서 조금 멀찌기 떨어져서 손을 흔들었다. 산책하는 나를 보시고는 돌아올 때쯤 해서 남성을 내려보낸 것 같았다.
말을 걸어주는 내가 고마웠던 것일까? 아침에 가벼운 목소리로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내가 좋으셨던걸까? 외로우셨던걸까?선물은 마음의 표현이다. 선물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 몸도 움직이지 못하는 분이 자신을 케어하는 남성에게 부탁해서 그 선물을 준비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헤아려져서 고마웠다.
보시는 남에게 베푸는 모든 것이 보시일 수 있다고 배웠다. 경제적으로 남을 돕는 것도 보시이지만 좋은 말 한마디, 미소 한 번 건네는 것도 보시라고 했다. 물론 보시를 하면서 보시한다는 마음도 없이 해야 진정한 보시라고 하지만 나는 그런 깊이까지는 아직 멀었다. 나는 노인들과 아픈 사람에게 친절하고 싶다. 누구나 나이들어가니까. 가끔 보는 분들이라 반갑게 인사를 건넸을 뿐인데 상대는 그것에 기분이 좋으셨던 모양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었다는 것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해주었다.
그 이후로도 가을까지 자주 그분들을 보았다. 때로는 길에서 휠체어를 탄 그녀와 그녀를 케어하는 그를 보기도 했고, 아파트 앞을 지나가는 나를 내려다 보며 아파트 4층 계단참에서 나에게 손을 흔드는 그들을 보기도 했다.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 통성명을 했다. 할머니의 이름은 수잔이고 불가리아 태생이고, 남성의 이름은 프랭크로 멕시칸이었다. 우리는 세 사람이 모였는데 어쩌면 모두 다른 대륙에서 왔느냐면서 웃었다. 내가 할머니라 생각했던 수잔은 사실 나이가 많지 않았다. 나는 수잔이 휠체어에 탄 거동이 불편한 여성이라 의례껏 나이가 많을 것이란 선입견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60대 초~중반의 나이밖에 되지 않는 분들이었다. 혹시 두 분이 부부인가 하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프랭크가 들려준 두 사람의 인연은 이러했다.
프랭크는 수잔과 같이 살며 13년간 돌봤다고 한다. 프랭크는 수잔의 딸과 먼저 알았는데, 어느 날 수잔의 딸이 프랭크에게 엄마 상황을 이야기하며 같이 살면서 엄마를 좀 보살펴주면 안되겠냐고 묻더란다. 그래서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프랭크가 수잔을 돌봐주되 대신 자기 몫의 월세는 내지 않는 것으로 서로 상부상조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작년 늦가을부터 수잔이 보이지 않았다. 길에서도, 아파트 4층의 계단참에서도 그녀를 볼 수 없었다. 어느 날 산책 길에 프랭크와 마주쳤다. 요즘 수잔이 왜 보이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작년 11월경 부터 많이 아프다고 했다. 12월 언젠가 또 프랭크와 마주쳐 수잔 소식을 물었더니 의식을 잃고 아무 것도 먹지 못한다고 했다. 음료수 조차 마시지 못해서 입에 한모금씩 물을 넣어준다고 했다. 아무래도 크리스마스를 넘기지 못할 것 같다고, 매일 밤 온 가족이 모여서 같이 자면서 그녀의 상태를 살핀다고 했다. 그렇게 3주가 지나가던 어느 날 길거리에서 프랭크를 또 만났다. 수잔이 몸을 움직이지 못해 온 몸에 등창이 나 있어서 안쓰러워 보질 못하겠다고 했다. 프랭크의 얼굴이 몹시 슬퍼보였다.
수잔도 수잔이지만 프랭크가 걱정되어 만약 수잔이 돌아가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현실적인 질문을 했다. 프랭크와 수잔의 상부상조의 삶을 알고 있었기에 수잔이 세상을 뜬다면 프랭크도 여기를 떠야할 것이라는 짐작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디 갈 데는 있냐고 물었더니 프랭크는 클리블랜드에 여동생이 살아서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하면 동생네 가서 한동안 같이 살 것이라고 했다. 그 날 길에서 헤어지면서 "다시 보자!"라는 인사를 남기고 돌아갔는데, 그 말에서 전해지는 뉘앙스가 너무 슬펐다. 그 인사말은 그의 진심이자 염원이었을 것이다. 수잔이 좀 더 살았으면 하는... 결국 그 날이 그를 본 마지막 날이 되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나서 며칠 후 부터 두 사람이 살던 아파트에 더이상 불이 켜져 있질 않았다. 아침 산책길에 그 아파트를 지날 때면 창에 불이 켜진 것을 보면서 '수잔이 아직 무사하구나!' 생각하며 안도했었다. 두 사람이 더 이상 4층의 계단참에 나와 있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자꾸 위를 올려다 보곤 했다.
아파트에 불이 켜지지 않은 이후 종종 마추치던 프랭크의 모습도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는 몰랐겠지만 내 방 창에서는 인도와 차도가 잘 보이기 때문에 그가 뭔가를 사러 상점에 가거나 돌아오는 장면을 자주 보았었다. 그러던 그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요즘에도 바깥에 프랭크 비슷한 몸집의 사람이 지나가면 '혹시나! '하면서 자꾸 유심히 보게 된다. 아침 산책길에 두 사람이 살던 아파트 앞을 지날 때면 지금도 자꾸 창과 계단참을 올려다 본다.
사람이 살아가며 올 때는 알아도 갈 때는 모른다는 말이 있다. 수잔에게 마지막 인사라도 할 수 있었더라면, 또 프랭크에게 새로운 삶을 행복하게 시작하라고 인사라도 해줄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마음 한 켠에 '프랭크가 안보이면 수잔은 더 이상 이 세상에 계신 것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은 하면서 마음 단도리는 하고 있었지만 내내 마음 한 켠이 싸아 하다. 두 사람을 위해서 기도를 했다. 한 사람을 위해서는 평안하고 건강한 그곳에서의 삶을, 프랭크를 위해서는 새로운 삶과 앞으로의 행복을.그녀가 준 부채를 보고 있으면 자꾸 그녀와 프랭크가 생각난다. 나의 동네 친구였던 두 사람! Farewell, my frien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