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에 한번씩 글쓰기를 독려하는 브런치의 독촉을 받을 때는 '그냥 나 좀 내버려 둬!'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글쓰기에 게으른 나를 자책하게 된다. 이번에는 term이 너무 길었다. 지난 글을 쓰고 나서 한달 하고도 열흘이나 시간이 지났으니...
한국에서 올라오는 글을 볼 때면 "덥다", "습하다" 등의 단어들이 자주 보여서 전형적인 한국의 삼복더위가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안그래도 토요일이 초복이었다. 내가 사는 미국 오하이오주의 애크론은 한국과 계절도, 기온도 비슷하지만 습도가 한국에 비해 덜하다. 게다가 이른 아침 기온은 10도 후반대이거나 때론 10도 초반대까지 떨어지니 아침에 산책을 하다 보면 가을 같이 쾌적함을 느끼기도 한다. 간간이 소나기성 폭우도 내려 주어 서부의 가뭄에 비하면 크게 가문지도 모르고 생활하고 있다. 일요일인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있다. 그러나 본격적 더위는 7, 8월이라는 말이 있듯 아직 한달 반 가량 여름 더위가 더 지속이 될테니 섣부른 판단은 삼가야겠다.
4월 중순부터 공부해 온 주역 공부를 7월 15일 금요일에 마쳤다. 상생방송에 올라온 김재홍 충남대 교수(지금은 은퇴)의 강의 영상을 들으며 12주에 걸쳐 주역의 전체 내용을 한차례 훑었다. 강의영상은 전부 187편으로 주역 계사전 상하편과 주역 상경, 하경을 중심으로 대단히 꼼꼼하게 강의를 하셔서 초보자인 나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었다. 주역의 설괘, 서괘, 잡괘편은 따로 강의는 하지 않고 주역 내용을 설명하며 필요한 부분은 인용을 하며 알려 주어서 이 세 파트는 김교수의 책을 보면서 혼자 보충공부를 하려고 한다.
주역은 학자에 따라 생성연도에 대한 견해가 다르지만 문헌적 자료로만 따져도 3000년 전, 길게 보는 학자는 5천년 전으로 보기도 한다. 주역은 아직 글자가 발명되기 전에 괘효로써 우주의 원리를 담아내었기에 글자 보다 주역이 먼저 있었다. 그러다 글자가 사용되며 주역은 글자로서 정연하게 정리가 되어 후대에 까지 이르렀다.
주역을 공부하면서 재차 자각한 것은 인류의 원초적 사고 구조와 우주관은 참으로 비슷했었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그리스, 메소포타미아, 북유럽, 중국과 인도, 이집트 등의 신화 및 인류의 문명이 탄생하기 이전에 오랫동안 존속했다는 여신의 신화까지 두루 공부를 했다. 세계의 원초적 사고에 대한 기초적 지식이 있어서 그런지 주역을 공부하는 동안에도 전세계의 신화 속에 내포된 인류의 원초적 사고의 틀과 우주관과의 공통성을 많이 발견하였다.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닌가! 아프리카에서 빠져나와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는 호모 사피엔스가 가진 공통의 기억 때문에 그렇지 않겠는가! 비록 호모 사피엔스의 아프리카 기원설에 대한 반박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북유럽 신화와 신석기 시대의 여신문화를 공부하는 동안 참으로 동양의 철학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북유럽 신화에는 자연에 대한 인류의 원초적 기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고, 신석기 시대의 여신숭배 문화는 그야말로 순환적인 시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주역의 사고와 대단히 흡사하다. 게다가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여신숭배 문화 시대의 유물에 베풀어져 있는 도상들을 보면 태극, 사상, 음양, 오행과 흡사한 도상들이 넘쳐난다.
신화와 마찬가지로 주역을 공부하는 동안에도 문구 하나 하나가 모두 비유와 상징으로 묘사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이 비유와 상징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한 주역 공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왜곡되고 만다. 왜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동양의 유학이 남성 중심적으로, 또 여성을 억압하는 기제로 사용되어 왔는지 지금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문장이 가진 상징성과 비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왜곡했을 것이다. 지금도 주역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책들을 읽다보면 기가 막혀서 비판 조차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다.
종교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동양이고 서양이고 성인의 가르침의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질 못해 역사 내내 문제를 야기해 왔음을 살펴볼 수 있다. 책으로 기록된 가르침이 박제화되었을 뿐더러 글자 맹신주의에 빠져 글자를 그대로 읽는 바람에 성인의 본래 가르침과는 180도 다른 방향으로 흘러와 버린 것이다. 그 흐름에는 인문학도 과학적으로 풀이하려는 과학맹신주의도 한 몫했다. 영국의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 같은 이는 글자 맹신주의에서 벗어나서 경전의 문구가 가진 상징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해야한다고 입이 닿도록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주역에도 다양한 상징과 비유법을 사용하여 인류의 삶의 궤적을 논리적으로 정연히 베풀어 놓았다. 우주의 변화, 땅 위의 변화와 인간의 삶의 연관성을 상징과 비유 뿐 아니라 논리성과 비약성까지 섞어 대단히 시적으로 묘사해 놓아서 자주 문장의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했다. 왜 오랫동안 주역이 동양의 최고의 고전으로 숭앙받아왔는지 이해가 되었다.
앞으로 주역을 반복해서 공부하면서 신화와의 연계성을 더 깊이 탐구해 보려고 한다. 주역의 가르침과 신화의 가르침을 연결하여 글도 써보려고 한다. 약 3달여에 걸쳐 주역을 공부하면서 눈이 번쩍 뜨이는 자각의 순간도 있었지만 졸기도 했고, 딴 짓도 해가면서 공부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도 내용을 꼼꼼히 메모를 해가면서 공부한 흔적을 보고 있으니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