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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 재 Sep 07. 2022

꺽인 나무에 깃든 매미

심사정의 <유사명선(柳査鳴蟬)>

아침 산책길에 자주 지나는 집이 있다. 그 댁은 정원 바깥으로 둘러 가로수처럼 키 큰 나무를 심어놓았다. 담장이 없는 것이 일반적인 이곳에서는 사생활을 보호하려는 이유인지 정원 경계에 키가 큰 나무들을 심어 놓은 집이 더러 있다. 수종은 잎이 지지 않는 사철푸른나무가 대부분이다. 그래야 담장 역할을 해줄테니까. 


정원의 경계에 키 큰 전나무가 줄지어 심겨 있는 왼쪽 집




아침 산책길에 자주 지나는 이 댁에도 전나무가 정원가로 주루룩 심겨 있다. 그런데 키가 너무 자라서 정작 나무 잎은 하늘로 치솟아 있고 키 큰 나무 둥치들 사이로 집안이 다 보인다. 얼핏 보면 가로수로 보이지만 분명 가정집에 심은 나무들이다. 이 키 큰 나무 안쪽으로 정원에는 키가 작은 나무 몇 그루가 더 심겨 있다. 그 중 한 그루는 봄이면 해사하게 분홍색 꽃을 피워내어 산책 중에 눈길이 가곤했다. 


그런데 작년 늦가을 어느 날 그 집 앞을 지나는데 이 나무가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뽑아내려고 했는지 뿌리가 조금 노출되어 있었다. 평소 예쁜 꽃도 피우고 건강해 보이던 나무라서 연유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동안 그렇게 기울어진채 서 있던 나무는 올 봄 들어 윗둥치가 잘린채 더 옆으로 기울어졌다. 뽑을 작정이면 아예 뽑아버리던가 45도가량 기울어진 채로 지금까지 몇달째 그 상태로 있다. 그런데 그 나무에 새싹이 돋는다. 봄에는 제법 많은 싹이 돋더니, 지금도 이렇게 중간중간 새순이 나오고 있다. 보고 있으면 안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2021. 11. 같은 집의 가을모습. 오른쪽으로 단풍이 든 가로수 뒤로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정원수 한그루가 보인다.
2022. 9. 5. 현재 나무 상태




이 나무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미술 작품이 있다.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 심사정(1707~1769)의 작품 <유사명선(柳査鳴蟬)>에 그려진 나무가 떠오른다. 키 크고 건강한 나무들 한켠에 반쯤 뿌리 뽑힌채 둥치도 잘려 방치되어 있는 나무. 절반의 뿌리로 겨우겨우 생명력을 피워내고 있는 나무. 이 정원수를 볼 때마다 역적의 가문에서 태어나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평생을 숨죽이고 살아야 했던 심사정의 딱한 삶이 오버랩 된다. 그런데 심사정은 이렇게 딱한 나무에 깃들어 울고 있는 매미를 그렸다. 


심사정, <유사명선>, 간송미술관 소장




매미는 조선시대 문인화가들이 즐겨 그리던 그림 주제 중 하나였다. 이예성의 <현재 심사정>의 178~180페이지에 보면 문인화가들이 매미를 즐겨 그린 이유가 설명되어 있다.   


"중국 진나라 때 문인인 육운(262~303)은 <한선부>에서 "...머리 위에 갓끈 무늬가 있으니 곧 그 문()이고, 기(氣)를 머금고 이슬을 마시니 곧 그 맑음()이며, 곡식을 먹지 않으니 곧 그 청렴함()이고, 거처함에 집을 짓지 않으니 곧 그 검소함()이며, 기다려 절개를 지키니 곧 그 믿음()이다"라고 하여 매미의 오덕을 말한 바 있다. 이후 매미는 군자가 갖추어야할 다섯 가지 덕이 있다 하여 군자를 상징하는 곤충이 되었다."


올해 7월 22일, 우리동네에서 찍은 매미 (길 위에 죽어 있었다.)




심사정은 <계화명선>에서는 싱싱한 계수나무의 푸른 잎과 화사한 꽃이 핀 나무에 앉은 매미를 그린 반면, <유사명선>에서는 뚝 꺽인 버드나무 가지 위에 앉은 매미를 그렸다. 비록 꺽인 가지이기는 하나 새 순이 돋아나고 있다. 암울했던 현실에서 어진을 모사하는 영정모사도감의 감동으로 선발되어 미래에 대해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지만 역적의 자제이니 불가하다는 신하들의 이의제기로 5일만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현실에서는 더 이상 출세의 길로 나갈 수 없는 역적 집안의 자손. 결국 실낱같은 희망마저 포기하고 나자 오히려 내면에는 자유가 찾아온 것이 아닐까. 비록 몰락한 가문이지만 사대부가 자제로서의 반듯함을 이어받아 매미가 상징하는 군자의 오덕을 실천하며 꺽인 둥치지만 최선을 다해 자신의 생명력을, 새 순을 피워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매미 그림을 볼 때면 그래서 더욱 그의 삶이 안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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