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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 재 Apr 21. 2022

신화, 주역, 자연과학의 공통점?

다른 언어로 쓴 같은 말

신화와 물리학에 관심이 많다. 철저히 문과 계열 인간형이지만 어려운 물리학책을 읽는 것도 좋아한다. 무슨 말인지 이해는 하지 못하지만 나의 상식과 상상을 초월하는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이런 저런 일로 복잡했던 머리가 샤워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물리학은 인생사 너무 고민하며 살 필요 없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서도 나의 정신 상태를 그리로 인도해 주는 것 같다. 


그러면 언제부터 물리학에 관심이 생겼을까? 고등학교때 문과였기에 문,이과 공통이었던 생물을 배웠고, 이과 계통의 과학 중에서도 한 과목을 공부해야 했기에 화학을 공부했다. 그것이 내가 다닌 고등학교의 룰이었다. 그러니 물리학을 공부해 볼 기회는 없었다. 


그런데 대학교 1학년 때 였는지 2학년 때 였는지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전공 교수님 한 분이 게리 주커브의 ⟪춤추는 물리⟫를 읽고 리포트를 내라는 숙제를 주셨다. 나는 그 책에 빠져 들었고, 그 이후 물리학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물론 그 책을 제대로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물리학 책이지만 왠지 신비주의책을 읽는 것 같았고, 물리학과 인문학을 엮어낼 수 있다는 것에 깊은 흥미를 느꼈다. 이후 때때로 최신 물리학책이 출판되면 사서 읽으며 물리학계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따라가려고 했다. 특히 20대와 30대에 불교 공부를 하던 때에 불교의 가르침과 물리학이 어찌나 근접한지 물리학책 읽는 것이 더욱 즐거웠다.  





그러나 이후 15년 여 미술사와 신화 공부의 재미에 빠져 물리학책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신화에는 인간과 세상, 그리고 우주를 바라보던 인류의 원형적 사고가 담겨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시작한 공부는 인도, 이집트, 중국, 아메리카, 북유럽 등 세계의 신화로 관심이 확장되었다. 인류가 남겨놓은 신화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다른데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세계의 신화를 공부하다 보니 우주와 세상의 창조에 대한 인류의 아이디어가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러고 보니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흐르는 원형적 사고가 있는 것 같다고 한 칼 융의 주장이 옳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우리나라의 신화도 읽어보았지만 애석하게도 한국의 신화에는 우주와 세상에 대한 창세 신화가 빠져있다. 원래는 있었지만 역사적 상황을 거치며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라져 버렸다. 우리 조상이 가졌던 우주관과 세상의 창조에 대한 이야기는 살펴볼 수가 없어 애석하다. 


최근들어 주역을 조금씩 공부하고 있다. 예전부터 동양사상 중 주역은 때가 되면 공부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선 주역 입문서를 몇 권 되풀이해서 읽고 있는데, 읽을수록 물리학과 어찌나 상통하는지 놀랍기만 하다. 동시에 주역의 괘상을 공부하다 보면 신화 속에 등장하는 우주 창조와 신들의 캐릭터 중에서 주역의 괘상과 겹쳐지는 내용들이 많아서 흥미진진하다. 왜 안그렇겠는가? 신화에는 인류의 우주와 세상에 대한 오래된 통찰이 신의 이름으로 담겨 있고, 주역에는 우주, 세상, 인간에 대한 인류의 오래된 탐구가 괘상화 하여 담겨있지 않은가. 현대의 물리학과 자연과학과 뇌과학은 아예 속속들이 우주와 세상, 인간의 신비를 밝혀냄으로써 우주와 지구와 지상에서의 인간의 삶까지 하나로 엮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1701년 중국에서 선교 중이던 예수회파의 조아킴 부베 신부가 독일의 수학자 라이프니쯔에게 보낸 주역 괘상도, 괘상 위의 숫자는 라이프니쯔가 기입한 것.




주역을 공부하며 다시 물리학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물리학책을 보지 않던 15여년 동안 물리학계에 대단한 발전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미래에 고전이 될 현대의 학문분야가 있다면 단연 자연과학 분야가 되지 않을까? 


최근의 자연과학과 뇌과학 분야의 흐름을 살펴보면서 나는 역으로 인류가 직관으로 통찰했던 우주와 세상에 대한 탐구가 얼마나 제대로 된 것이었는지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선사 시대의 중동과 유럽의 여신 신화를 공부할 때 수천년 전의 도상임에도 주역의 태극과 음양을 상징하는 괘상과 일치하는 도상이 많아서 놀랐던 적이 여러 번이었다. 주역도 오천년 전에 생겨났거나 그 이전으로 더 올라갈 수도 있다고 하는 것을 보니 이미 선사시대부터 존재했던 것이다. 그동안 주역의 괘상 중 해석이 안되었던 것들이 현대 자연과학의 발달로 이제서야 제대로 이해가 되는 것도 있다고 하니 신기하기만 하다. 지금은 과학자들이 우주를 탐구하여 우주의 신비를 밝혀내고 있지만, 과학기술이 없던 선사시대에도 이미 인류는 직관적으로 우주의 신비와 자연의 섭리를 통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9, 뉴욕 MoMA




신화, 주역, 자연과학은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결국은 같은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왜 안그렇겠는가? 인간의 궁극의 관심은 우리가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어디로 갈 것인가로 모아지지 않겠는가! 선사시대의 인류라고 이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과거에 비해 대단한 과학적 발전을 이룬 현대이지만 이 궁극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은 것도 아니다. 각각의 시대에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 인류는 우주와 자연, 인간에 대해서 끊임없이 탐구하면서 살아왔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폴 고갱, <우리는어디서 왔고, 우리믄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1897, oil on canvas, 139 × 375 cm, 보스턴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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