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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노 Art Nomad Nov 17. 2024

#01 「아메리칸 뷰티」①

대통령이 될 남자

* 너무 길어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 회차 분할합니다. 앞으로는 미리 글자수와 가독성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하고 업로드하겠습니다. 3화로 분할할 예정입니다. 일부 문장부호와 단어도 손 보았습니다. 이미 읽으신 분들께 양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선정영화 : 「아메리칸 뷰티」(1999)

― 장르 : 드라마, 블랙 코미디

― 선택한 등장인물 : 바바라 피츠 / 성공한 미국 중산층 가족을 이웃으로 둔 가정주부.

― 초고 완성 시기 : 20240714


* 이 작품은 영화 「아메리칸 뷰티」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 하나를 주인공으로 삼아 재구성된 소설로, 영화를 못 보신 분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거나 재미가 반감될 수 있습니다. 


영화를 감상하실 예정인 분들은 아래의 링크에서 '보러 가기'란을 참고해 주세요.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sm=tab_etc&mra=bkEw&pkid=68&os=1764662&qvt=0&query=%EC%95%84%EB%A9%94%EB%A6%AC%EC%B9%B8%20%EB%B7%B0%ED%8B%B0



나는 종종 시간 안에 갇히곤 했다.      


무엇이 언제 일어났는지 순서도 잊어버렸다. 어제 있었던 일인지 아니면 작년에 있었던 일인지 그조차 제대로 가려낼 수 없었다. 생각은 제멋대로 내 과거의 한 조각에 머물다 다시 다른 조각으로 옮겨갈 뿐, 나는 생각을 하려고도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명쾌한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나는 그저 열일곱이 되었다가 스물일곱이 되고 다시 스물둘이 되었다가 내 나이가 몇 인 지도 자주 까먹는 마흔넷으로 돌아올 뿐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닉슨의 열렬한 팬이었다. 아버지는 68년에도, 72년에도 닉슨을 찍었다. 사실 내가 나고 자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는 닉슨을 뽑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아버지는 늘 침을 튀기며 닉슨이야말로 애국자이며 미국의 얼굴이라는 말을 늘어놓았다. 그가 아니었다면 미국에게서 금을 빼앗으려는 악의 축, 짐승들에게 미국 경제가 파탄 났을 것이라며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동네 사람들은 그런 아버지의 말에 끄덕이면서도 알았으니까 TV 좀 가리지 말라고 투덜댔다.      


하루는 술에 취한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얻어맞고 눈이 시뻘겋게 부어서 집에 돌아왔다. 금요일 밤, 동네 펍에서 또다시 닉슨을 찬양하며 TV를 가렸기 때문에 시비가 붙었다고 했다. 그해 슈퍼볼 게임 시청률은 무려 44.2 퍼센트였다. 이듬해 닉슨이 워터게이트로 사임했을 때 아버지는 빌어먹을 민주당의 음모라며 울분을 터트렸다.      


남편은 그런 아버지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교회에서 만났다. 그는 불안한 시선으로 나를 힐끗거렸고 그 시선을 먼저 알아챈 건 어머니였다. 그때 내 나이는 스물둘이었다.      


그때까지도 내게 말을 걸어오는 남자들을 껄떡대는 사탄의 자식들쯤으로 여기던 아버지는 그를 신이 나를 위해 준비해 준 최고의 남자쯤으로 여겼다. 아버지는 그가 네이비씰이며 베트남전에 참전한 애국자라며, 요새 것들은 빌어먹을 반전 시위나 한다며, 사탄의 자식들이 사방에 넘쳐나는 가운데 주님이 맺어준 남자가 내 딸과 결혼한다며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다. 심지어는 리차드 닉슨을 닮아서 훤칠하다고 실실거렸으나 굳이 따지자면 둘 다 앵글로색슨의 피가 흐른다는 것 정도만 닮았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돈을 꾸러 갔다가 자랑만 늘어놓는 통에 한 푼도 얻어오지 못했다. 다들 꾸어간 거나 갚으라며 문도 열어주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잘난 사위에게 꿀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게 청혼해 온 그 남자는 아버지가 생각하는 것만큼 잘난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그 사실을 결혼하고 네 해가 지나서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차기 대통령이라도 될 거라 기대했던 내 남편은 해군이지만 해군 특수부대 소속은 아니었다. 그는 보급팀으로 참전하였고, 후방에 있었으나 게릴라전에선 보급라인이 노출되어 총을 맞았다. 곧 본국으로 호송되었고 그 길로 퇴역했다.    


그도 처음에는 그가 뭐라도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더 많은 지원서를 내고 더 많은 면접을 봤으며 더 많은 전우회를 쫓아다녔다. 한 군데서도 최종 연락이 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베이비시터 겸 하우스키퍼로 일을 나갔다. 그런 일은 깜둥이나 하는 일이라며 거품을 물 아버지가 떠올라, 동네에서 두 시간 떨어진 곳에서 일을 구했다.      


집주인은 돈을 후하게 주었다. 그녀는 같은 백인이라 안심이 된다며 생긋생긋 웃었다. 하지만 같은 화장실은 못 쓰게 했다. 웬만하면 뒤뜰에 있는 화장실을 쓰라고 완곡하게 하기에, 급해서 집 안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그때껏 들어보지 못한 수많은 욕을 들었다. 요지는 이랬다. 한 번만 더 집 안에 있는 화장실을 썼다가는 다시는 집 안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겠다. 나는 점점 말수가 줄어갔다.      


내 유일한 대화상대는 옹알이하는 그 집 아가였다. 아가가 처음 내게 엄마라고 했을 때, 나는 조금 울컥했다. 남편과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아이가 생기려면 꼭 해야 할 그 일을 우리는 하지 않았다. 남편과 결혼한 지 네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볼 빨간 아가의 그 ‘엄마’라는 말이 퇴근하는 길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던 날 밤, 나는 차고에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야 말았다. 한 남자가 상기되어 있었고, 내 남편은 흥분하고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입만 벌리고 구경하는 수밖에. 그는 절정에 이르기 직전이 되어서야 나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헐레벌떡 바지를 챙겨 입고 도망가는 그는 우리 아버지 집에서 주말마다 잔디 깎는 소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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