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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노 Art Nomad Nov 19. 2024

#02 「아메리칸 뷰티」②

순종하라

* 너무 길어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 회차 분할합니다. 앞으로는 미리 글자수와 가독성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하고 업로드하겠습니다. 3화로 분할할 예정입니다. 일부 문장부호와 단어도 손 보았습니다. 이미 읽으신 분들께 양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선정영화 : 「아메리칸 뷰티」(1999)

― 장르 : 드라마, 블랙 코미디

― 선택한 등장인물 : 바바라 피츠 / 성공한 미국 중산층 가족을 이웃으로 둔 가정주부.

― 초고 완성 시기 : 20240714


* 이 작품은 영화 「아메리칸 뷰티」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 하나를 주인공으로 삼아 재구성된 소설로, 영화를 못 보신 분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거나 재미가 반감될 수 있습니다. 


영화를 감상하실 예정인 분들은 아래의 링크에서 '보러 가기'란을 참고해 주세요.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sm=tab_etc&mra=bkEw&pkid=68&os=1764662&qvt=0&query=%EC%95%84%EB%A9%94%EB%A6%AC%EC%B9%B8%20%EB%B7%B0%ED%8B%B0



바지를 끌어올리며 도망치는 소년을 보며 내가 무얼 본 건지 이 순간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헤매고 있는 사이, 남편의 주먹이 날아왔다. 그는 내가 그 어디에도 나갈 수 없도록 무자비하게 때리다 말고 목 놓아 울었다. 울면서 미안하다고 빌었다. 그러고는 흥분의 열기가 식지 않은 그것을 내 안에 넣고 사정없이 쏟아 내었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우리는 이사했다. 호모포비아인 아버지에게서 멀어지기 위해서.      


새집에서 나는 아이를 낳았다. 아들이었다.      


남편은 참전 재해보상금이 나오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럭저럭 살 수 있었다. 단지 내가 몇몇 그의 괴벽을 눈감고 넘어가는 한 말이다.     


아들을 낳은 후 남편은 극도로 불안해했다. 그는 차고에서 운동하다 말고 서럽게 울었다. 그러다 며칠 후엔 잔뜩 가슴을 부풀리고 새로 사들인 총에 대해 끊임없이 설명했다.      


나는 두려웠다. 그 총들의 총구를 내게 들이댈지 아니면 남편 자신에게 들이댈지 가늠할 수 없었다. 나는 그와 같은 침대에서 자다 말고 작은 뒤척임에도 흠칫 놀라 깼다. 그럴 때면 다시 잠들지 못해 그냥 방을 나왔다. 아이가 잠든 방이나 식탁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 후로도 우리는 자주 이사해야 했다.      


아들의 학교 폭력 문제로, 대마초 문제로 옮겨 다닌다는 핑계를 대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가 다른 남자와의 관계를 가까운 누군가에게 들켰다는 걸. 나는 이 추측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저 그의 눈을 바라볼 뿐이었다. 남편은 눈을 피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그리고 그럴 때면 서재 장식장으로 가 총만 하염없이 닦았다.     


나는 말 수가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모든 게 희미해져 버렸다.      


아들 리키는 열여섯에 베지테리언 선언을 했다. 어제까지는 기억했는데 오늘 아침에는 잊었다. 잘 익은 베이컨을 건네려다 리키가 ‘전 그거 안 먹잖아요.’할 때 서야 기억이 났다. 나는 요즘 옛 생각에 빠지는 거 같다는 느낌이 자주 들고, 고개를 들어보면 하루가 다 가 있을 때가 많다. 좋은 추억이었는지 나쁜 기억이었는지는 모른다. 그저 어느 순간에 머물렀다가 다른 순간으로 넘어간다. 그 순간 속에 나는 없다. 나는 그저 타인의 얼굴과 옷차림, 말속에서 그때쯤 내가 몇 살이었는지 상기하곤 한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다.      


하루가 다 가도록 매 순간, 나는 없다.      


최근에 가장 즐거웠던 날이 언제였더라. 아 맞다. 건넛집에 사는 게이 커플이 꽃바구니를 들고 온 날이었던 거 같다. 그 둘이 파트너라며 자신들을 소개했을 때 도대체 무슨 파트너냐며 묻던 남편의 가식이 배가 아프도록 웃겼다. 하지만 나는 소리 내어 웃지 않았다.      


오늘 저녁, 나는 예의 그 긴장된 분위기를 감지했다. 그 분위기는 벌써 스무 해쯤 전, 내가 차고에서 그에게 얻어맞았을 때의 그날과 같았다. 아들은 호출을 받고 옆집 여자친구에게 가봐야 한다고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왜 남편이 날카로운 눈을 하고 아들 방 쪽으로 가는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나는 참다못해 다급하게 외쳤다.      


「리키만은, 리키만은 건드리지 않기로 했잖아, 무슨 일이 있어도!」 

「조용히 해! 리키가 그 호모 새끼와 놀아나고 있다고!」 

「뭐? 리키는 제인을 좋아하고 있어! 엊그제 제인이 우리 집에 놀러 오기도 했다고! 왜 언제나 당신 입장에서만 생각해? 이 집에 당신만 사는 거 아니잖아!」

「정신이나 똑바로 차려. 아들이 호모 새끼가 되도록 알지도 못했으면서!」

「부끄러운 줄 알아! 자기 자신을 혐오하다 못해 그 화살을 남들에게 돌리면 속이 시원해?」

      

남편은 그날, 그 밤처럼 내게 달려들었다.      


「입 닥쳐!」      


나는 또 그날, 그 밤처럼 무자비하게 맞았다. 


“Likewise, ye wives, be in subjection to your own husbands; that, if any obey not the word, they also may without the word be won by the conversation of the wives;” (1st Peter 3: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베드로전서 3:1)  

    

피떡이 되어 널브러진 주제에, 왜 갑자기 이 구절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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