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그때 그 사람들」②

불쌍해서 어째.

by 아노 Art Nomad

― 선정영화 : 「그때 그 사람들」(2005)

― 장르 : 미스터리, 블랙 코미디, 범죄, 드라마, 피카레스크

― 선택한 등장인물 : 철없는 엄마 / 대통령이 자기 딸을 총애한다고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주 과장에게 어필하려다가 고문실에서 고초를 당하고 쫓겨난다.

― 초고 완성 시기 : 20240731


* 이 작품은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 하나를 주인공으로 삼아 재구성된 소설로, 영화를 못 보신 분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거나 재미가 반감될 수 있습니다.


영화를 감상하실 예정인 분들은 아래의 링크에서 '보러 가기'란을 참고해 주세요.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sm=tab_etc&mra=bkEw&pkid=68&os=1777691&qvt=0&query=%EA%B7%B8%EB%95%8C%20%EA%B7%B8%20%EC%82%AC%EB%9E%8C%EB%93%A4



편 여사는 편 여사를 두고 마치 없는 사람인 거처럼 취급하는 걸 참지 못하는 성미를 지녔다.


「쟤는… 시집가라는 데 뭔 뚱딴지같은 소릴 하는 거니, 쟤가?」


편 여사는 연주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고 내게 물었다.

이럴 때 나를 중간에 두고 말을 주고받는 거, 지친다.


「놔두세요, 좀. 아직 생각이 없다는 데 왜 그래요, 엄마.」

「너도 참, 엄마가 되가지고는. 서른도 넘어서 시집갈 생각도 안 하고 혼자 사는 딸년이 불쌍하지도 않니, 넌?」

「할머니. 전 불쌍하지 않고요. 결혼하라 말아라 이전에 결혼하고 싶은지를 먼저 물으셨어야죠.」

「어머 별소릴 다 듣겠네. 결혼을 안 하고 싶은 여자가 어디 있어. 남편 모시고 사는 낙이 여자의 행복인데.」

「그래서 그렇게 할아버지랑…」


연주는 얼굴이 붉어지며 편 여사에게 되받아치려고 했다. 편 여사를 보며 저렇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기세등등하게 대드는 건, 정말이지 나를 닮지 않았다.


「연주야, 그만 가. 약속 있다며.」


나는 내 전 생애에 걸쳐 이 무의미한 말싸움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알았어요, 갈게요.」


나는 하마터면 나와 엄마만 남겨두고 떠나지 말라고 할 뻔했다. 평생을 눈치 보고 살아왔기에 딸애만큼은 눈치 보지 않고 자라줬으면 했다. 하지만 이럴 때면 모질게 뒤돌아 나가는 연주가 참 야속하다.


「저거 참 누굴 닮아 저러는지. 야물지 못한 김 서방은 아닌 거 같고. 아무리 봐도 각하를 닮았단 말이지.」

「엄마!」

「아이고, 깜짝이야. 왜에―? 여기 우리밖에 없잖아. 듣는 귀도 없는데 뭘 그리 꼴값을 떨어, 내가 없는 말한 것도 아니고.」


이래서 나는 그날을 한순간도 잊지 못했다.


1979년 10월 26일 낮.


엄마와 나는 중앙정보부 비서실 의전과장 주 씨와 마주 보고 있었다.


「곱다. 곱다 이러시면서. 한없이 온몸을 쓰다듬고 계시더래요. 근데 쟤가 눈을 뜨고 배시시 웃으니까 그제야 멋쩍은 듯 옷을 주섬주섬 챙기시는데, 아니 지가 그냥 자빠져 있을 수 있겠어요? 어르신 옷 먼저 입으시라고 저는 벗은 채로 수발을 들었대요. 벗은 채로. 그러다가 결국 어르신이 쟤를 한 번 다시 품어주시고…」


그때 내 나이 스물둘이었다.


「그 어른 참, 대단하세요. 그 연세에. 그리곤 쟤를 꼭 품으신 채로 그러셨대요. 꼭 다시 놀러 오라고. 꼭 다시 보자고.」


주 과장이 날렵한 선글라스 밑으로 나를 한번 힐끗 보던 그 시선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내 잠자리에 대해서 말하는 엄마 앞에서 나는 그저 수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주 과장은 그런 나를 보고 버러지 씹듯 껌을 씹었다.


「밑에 분들 힘든 거 알아요. 아는데 어쩌겠어요? 그분 심중을 헤아려 드려야지. 그분이 원하시는 거, 그분을 행복하게 해 드리는 거.」


엄마는 각하를 행복하게 해 드리는 게 바로 나를 바치는 거라고 하고 있었다. 채홍사 주 과장에게.


「우리 애 이렇게 따돌리는 거 큰 실수하시는 거예요.」


엄마는 날 위해 나서는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거 같았다.


우리는 고문실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엄마는 이렇게 외쳤다.


「무식해 가지고는… 당신이 사랑을 알아?」


물고문과 구타가 자행되는 그 인권유린의 현장에서 엄마는 사랑을 외쳤다.


그날 밤, 각하는 중앙정보부장의 권총을 맞고 죽었다.


다음 날, 라디오 뉴스로 서거 소식을 전해 들은 엄마는 한 시간쯤 울었다.


「그 어르신, 불쌍해서 어쩌니. 불쌍해서 어째.」


가슴을 치며 울던 엄마는 전화 다이얼을 돌렸다.


「응. 또또 엄마? 그 왜 있지, 일전에 우리 애 중매 서준다던 거. 그거 아직 해줄 수 있지? 그래, 그 은행 다닌다는 사람. 그래, 이번 주 일요일. 알았어. 그 사람 말고도 사진 좀 가지고 와봐, 몇 장. 사주도 좀 들고 오고. 그래, 그래, 알았어. 예쁘게 하고 나가야지, 그럼.」


엄마는 사근사근하게 말하다 말고 갑자기 눈을 부릅떴다.


「이 여편네가! 어르신 얘기는 꺼내지 마, 누구 혼삿길 막을라고, 그냥!」


엄마에게 주 과장을 소개한 게 바로 또또 아줌마였다. 엄마는 그런 사람에게 내 중매를 맡겼다.


「어디 가서 입도 뻥끗하지 마, 어디든 좋은 데 혼사만 잘 치르면 한몫 떼어 줄 테니까.」


엄마는 내 젖가슴이 부풀어 오른다는 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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