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과감한 이야기를 쓴 데에는…
마음에 드는 영화가 생기면 마음속에 담아 두었다가 언제쯤 보는 게 가장 타격이 적은 지 가늠해서 시간을 비워둔다. 영화를 보기 전에 검색으로 등장인물과 줄거리도 확인해 둔다. 불안 장애 이후에 생긴 버릇이다. 심리적으로 안전하다고 느껴야지 해당 콘텐츠를 더 잘 즐길 수 있다. 그만큼 영화 한 편을 보고 나면 감정적 여운이 오래 남아 고생하는 편이다.
「그때 그 사람들」은 「서울의 봄」을 보려고 본 영화다.
「서울의 봄」은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12.12 군사 반란이 일어나기까지의 시간을 다룬다. 그러다 보니 박정희 대통령 서거를 다룬 영화를 먼저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 사람들」 다음으로 「남산의 부장들」 도 보고 나서야 「서울의 봄」을 봤다.)
이 글 역시 글쓰기 모임 과제로 제출했었다. 한 참여자가 마치 ‘여성 삼대’ 같다고 했다. 염상섭 작가님의 『삼대』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맞는 말인데 한편으로는 좀 슬펐다.
지금까지 쓰인 한국의 연대기 기록물은 대체로 남성이 대와 대를 잇는 서술 방식을 택하여 온 것이 많다. 그렇다 보니 남성의 반대급부로서 ‘여성’이라는 단어를 붙여야지만 이 이야기가 와닿았을 것이다. 독자가 한 번에 이해하도록 설득시켰다는 건 뿌듯했지만 여전히 남녀를 구분 지어야지만 확 와닿다는 게 조금 씁쓸했다.
나는 좌빨도 우빨도 아니고, 색깔이 없다. 선거 때에는 집으로 배송 온 공보물의 공약을 꼼꼼하게 다 읽고 결정한다. 그래서 매 선거마다 빨주노초파남보 어떤 걸 고를지 나도 모른다.
젠더 이슈에 관해 관심이 많지만 부끄럽게도 페미니스트에 대한 책은 아직 한 권도 못 읽어봤다. 이 글을 읽고 페미니스트와 관련한 그 어떤 욕을 해도 어차피 못 알아듣는다.
어쩌면 하도 뭘 몰라서, 영화 속 등장인물 중 상상력을 가장 잘 자극하는 인물을 골라 이렇게 과감한 이야기를 썼는지도 모른다.
이런 과감한 이야기를 쓴 데에는 원작 임상수 감독님의 책임도 있다. 어쩜 첫 신(scene)부터 이렇게 골 때리는 장면을 넣으신 건지… 처음엔 무슨 상황인 건지 이해하지 못해서 몇 번이나 돌려봤다.
내가 쓴 이야기의 배경은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직전이다.
제18대 대선 즈음, 나는 친구와 여행을 갔다. 나는 그때 유력한 여성 후보가 있다는 데에 잔뜩 고무되어 있었다.
나는 밝게 살고 싶었으나 어릴 때부터 어두운 아이였다. 엄마는 삶이 힘겨울 때면 나를 붙잡고 넋두리했다. 나를 장녀로 낳아놓고 내 남동생이 태어날 때까지 당했던 온갖 수모에 대해서 내게 털어놓았다. 딸을 낳아서 시집살이했다는 말을 털어놓을 사람도 나밖에 없었던가 보다.
우리 할머니는 내가 열두 살 때 첫 생리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좋은 날은 다 갔다. 여자 인생은 무덤이다.’
내게 놓인 환경의 여파로, 나는 제18대 대선 당시 ‘대한민국에 최초로 여성 대통령이 나타난다면 세상이 어떻게 바뀔까?’ 하는 상상이 퍽 재미있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내 친구는 정색하며 말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안 돼.’
십여 년이 지나도록 그 친구의 말이 종종 떠오른다.
나는 그 제18대 대선 이후로 어떤 선거건 간에 공보물을 꼼꼼하게 보는 습관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