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제대로 나온 신작)」③

감정을 다루는 조각가가 되어 주세요.

by 아노 Art Nomad

― 선정영화 :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제대로 나온 신작)」(2017)

― 장르 : 코미디, 드라마

― 선택한 등장인물 : 일라이자 마이어로위츠 / 조각가 해롤드 마이어로위츠의 손녀이자, 막 이혼한 백수 아빠 대니 마이어로위츠의 딸. 할아버지인 해롤드 마이어로위츠가 조소과 교수로 재직했던 바드 예술 대학에 영화과로 입학했다.

― 초고 완성 시기 : 20241130


* 이 작품은 영화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제대로 나온 신작)」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 하나를 주인공으로 삼아 재구성된 소설로, 영화를 못 보신 분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거나 재미가 반감될 수 있습니다.


영화를 감상하실 예정인 분들은 아래의 링크에서 '보러 가기'란을 참고해 주세요.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sm=tab_etc&mra=bkEw&pkid=68&os=5690241&qvt=0&query=%EB%8D%94%20%EB%A7%88%EC%9D%B4%EC%96%B4%EB%A1%9C%EC%9C%84%EC%B8%A0%20%EC%8A%A4%ED%86%A0%EB%A6%AC%EC%8A%A4



고백을 하자면, 어떤 날은요 제가 바드 예술 대학에서 제일 잘난 게 아닌가 싶은 때가 있어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낸 건지 미쳤다 싶다니까요? 아직 1학년인데 이 정도로 잘한다면 학교를 더 다닐 필요가 없는 거 아닌가 싶고요. 학교에 이상한 애들이 많거든요. 꼰대들 영화나 보면서 자기가 얼마나 아는 게 많은지 과시하는 애들을 보면 재수 없기도 하고, 유치하고 메시지도 없는 영화를 만들어 놓고 세상이 자기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욕하는 애들 보면 우스워요. 바드 대학이 낳은 위대한 예술가, 할아버지도 그러셨겠죠?


하지만 어떤 날은 너무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촬영할 때는 카메라 각도를 재고, 다 벗고 카메라를 똑바로 보며 연기하고, 컷 사인을 날리며 여기저기 뛰어다녀도 아무렇지 않았거든요.


분명 확신이 있었어요. 편집 때까지도 저는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확신이 있었어요.


그런데 다 만들어 놓고 모니터 하다 보면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어요. 화면 속에 저와 눈을 마주치질 못하겠어요. 「Piginaman(자보지맨)」 링크를 가족들한테 보내려고 클릭한 바로 직후에도 후회했어요. 내가 제대로 만든 게 맞는지 의심스럽더라고요.


그럴 때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잖아요.


봉준호 감독님? 물론 훌륭한 사람이죠. 그런 사람이 제 작품을 진지하게 봤다는 것만으로 흥분될 만큼.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우리 가족이 제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였어요.


할아버지는 제가 뭔 말하는 건지 알죠?


솔직히 진 고모, 우리 아빠, 매튜 삼촌 모두 할아버지의 오랜 팬들이잖아요. 그런데 할아버지는 늘 할아버지가 주인공이어야 직성에 풀리시는 거 같아요. 그런 인생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고모나 아빠, 삼촌에게도 인생이 있다는 걸 너무 간과하셨어요. 날 때부터 가장 가까운 사람, 즉 부모님한테 무시당하거나 과잉보호받은 아이는 성장해서도 감정적 균형을 잃는다고 해요. 세상의 모든 기준을 부모님의 만족도를 채울 수 있냐 없냐에 맞추기 때문이죠.


오, 할아버지. 전 웬만하면 할아버지를 닮은 좋은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하지만 지금처럼 계속 고집불통에 우리 아빠에게 상처만 준다면 어쩌면 전 할아버지와는 철저하게 다른 예술가를 꿈꾸게 될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할아버지가 아빠에게 준 상처가 화근이 되어 아빠가 삼촌과 싸우고, 제게 알 수 없는 이유로 화를 내거든요.

전 말이죠, 이기심은 상처를 낳고 그 상처는 대물림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상처를 물려받고 싶지 않으니 할아버지가 계속 그렇게 타인의 말에 귀 기울지 않으실 거라면 이제 다시 뵙지 않으려고요.


할아버지는 지금이라도 자식들의 상처에 귀 기울이셔야만 해요. 그래야 잃어버린 작품의 생명력을 다시 찾으실 수 있어요.


엘제이 할아버지의 곰을 늘 우스워하셨죠? 하지만 그 곰 청동부조야말로 약세장에서 주식을 산 매수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거잖아요. 언제가 황소의 뿔로 주식을 들어 올릴 날을 기대하는 곰들의 서글픔 말이에요. 그런 작품을 만든 엘제이 할아버지를 두고 운빨이네, 여론과의 타협이네 뭐네 비꼬는 거 너무 치사하셨어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작품 중 전 「매튜」가 가장 마음에 들어요. 비록 그 조각을 함께 만든 우리 아빠의 이름은 매튜가 아니라 대니지만. 왠지 아들과 함께 공놀이를 해주지 못할 만큼 한가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미안함을 담은 작품 같거든요. 그 갉아 먹힌 공이 기둥 한가운데에 박혀 있는 모양이 말이에요. 그런 뜻으로 만든 게 아니었다 해도 사과하지는 않을 게요, 할아버지. 어차피 해석은 관객의 몫이니까요.


아참, 로빈과 함께 휘트니 미술관에서 할아버지의 작품을 찾아냈어요.


제가 뉴욕에 돌아가면 함께 휘트니 미술관에 가요, 할아버지.


존경과 사랑을 담아, 칸에서.


일라이자 마이어로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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