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더라.
아, 뭐지? 아는 얼굴이 아니네? 이런 취급받을 줄은 몰랐는데.
에이, 또 그렇게 서운한 표정을 하지 말고. 세상일이란 게 다 그렇잖아. 유명인 좋아하고. 그래서 나도 아는 얼굴이 올 줄 알았어.
그건 그렇고, 이거 지금 녹화되는 거야? 어디 봐야 해?
인상 쓰기는. 인간미가 좀 부족하시네. 내기는 좋아해? 싫어도 그냥 해. 내가 퀴즈 낼 테니까 맞추는 거야. 맞추면 내가 뭐든 대답한다, 진짜!
준비됐어?
자, 창밖을 봐봐.
저 창살 사이로 지금 가지가 살랑살랑 살짝 흔들리고 있지.
저 나무 이름이 뭐―게?
쯧. 그렇게 인상만 쓴다고 알아내겠어? 오감도 좀 쓰고, 머리도 좀 쓰고 해야지. 분석관님, 경찰대 출신 아닌가? 배운 분이, 참.
재미없다. 그냥 가르쳐 줄게. 저거 조팝나무야, 조팝나무. 눈을 감고 한 번 숨을 크게 들이쉬어 봐. 은은한데 뚜렷하게 나는 향이 있지? 잘 생각해 보면 추억 속에 분명 이 향이 들어 있을 거야. 어때?
여―엉 감이 안 잡힌다는 표정이시네. 저거, 학교 화단에 많이 심는 거야. 분석관님, 내 또래 같은데 우리 때 교정에는 무조건 저거였어.
난 어려서부터 식물이 참 좋았어. 우리 집이 연립이었는데 학교 가는 길엔 얕은 산이 하나 있었지.
못 맞췄으니까, 인터뷰는 없던 걸로 해.
….
아 씨… 옛날 생각하니까 별 기억이 다 떠오르네. 봉숭아는 알지? 그 왜 씨주머니 건들면 탕, 탕하고 터져서 씨 확 날아가고 그거.
하루는 학교 교정에 있는 봉숭아에서 씨를 챙겨 왔어. 페트병을 이렇게 반 잘라가지고, 밑에는 구멍 뽕뽕 뚫고. 거기다 봉숭아를 심었어, 나중에 엄마랑 손톱에 물들이려고.
근데, 우리 아버지라는 새끼가, 원래 술만 먹으면 개가 되거든. 개새끼도 그런 개새끼가 없어. 그날은 뭐가 마음에 안 들었냐면 달걀이 덜 익었대. 반숙으로 삶으라고 했는데 불을 너무 빨리 꺼서 노른자가 다 안 익은 거라. 흐른 거지. 그러니깐 갑자기 엄마 머리를 붙들고 패대기를 쳐, 막.
그때 나 초딩이었다? 무서웠어.
그래서 옷장 안에 숨었네? 진짜 오줌 지리겠더라고. 근데 아무리 버텨도 안 끝나. 패대기치는 소리에 집어던지는 소리. 엄마 진짜 죽겠더라. 바들바들 떨면서 문 사이로 빼꼼 내다봤어. 그러다 엄마랑 눈이 딱 마주친 거야.
엄마가‥ 눈이 씨발, 눈탱이 밤탱이 돼가지고 나한테 눈짓하는 거. 들어가 있으라고. 엄마가 손짓하니까 아빠 새끼가 눈치를 깐 거지. 날 딱 돌아봤어. 그때 진짜 지렸어. 오줌을 질질질. 그러니 어땠겠어. 노른자 덜 익었다고 마누라를 패는 새낀데. 봉숭아 화분을 집어서 홱 던지더라고.
여기 보이지? 볼따구에. 이게 그때 난 상처야. 페트병을 잘라 만든 화분이었잖아? 잘린 단면 거기가, 엄청 날카롭더라.
울지도 못했어. 숨은 어떻게 쉬었는지도 기억 안 나는걸, 뭐.
그날 밤, 도저히 잠이 안 왔어. 볼때기는 따끔따끔하고, 엄마가 처맞는 꼴이 계속 눈앞에 아른거렸지. 밖에선 고양이가 미친 듯이 울어대는 거. 공기를 찢는 소리가 지옥 끝에서부터 들려오는 거 같았어. 무서워서 이불을 덮어썼는데 이불도 뚫고 들어오더라, 그 소리가.
살금살금 밖으로 나가봤더니, 학교 가는 길 야산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대? 와. 진짜 귀신 나올 거 같았어. 그때부턴 뭐에 씌었는지 참, 어느새 손에 짱돌을 집은 거야. 솔직히, 동물들은 좀 시끄럽잖아. 난 확실히 식물 파거든. 조용하고, 가만히 있고. 그치만 그건 내가 좀 너무했어. 애기 고양이던데.
하지만 이건 정확하게 말할 수 있어.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