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했던 어느 날
* 백과사전을 읽고 거기서 인상 깊었던 글을 쓰는 이 프로젝트는 24년 10월 4일에 시작했습니다.
앞서 올린 #07까지의 에피소드는 10월 4~ 12일 사이에 쓰여졌는데 12일에 갑자기 현타가 왔네요.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걸까 싶어서.
이 기록까지 여기 올리는 것이 맞을까 싶지만, 그냥 올려볼게요. ㅎㅎ 혹시 저와 같이 지금 풀리지 않는 일을 앞두고 어디까지 타협하고 어디까지는 고수해야 하는지 고민하시는 분들 있으시다면 공감과 위로를 얻어가실 수 있을까 해서요.
* 여러 매거진을 올리다보니 중복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매일 5P를 읽고 그중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을 정리해 두자는 처음의 패기가 조금 흐릿해졌다.
지난 닷새 동안 컴퓨터를 거의 켜지 않았다. 잔혹했던 9월 말의 여파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 꿋꿋하게 넘어가려던 게 화근이었던 거 같다.
준비하던 웹소설 웹툰화 작품이 3차 탈고 끝에 결국 편집부의 호감을 사지 못해 다른 팀으로 넘어갔고, 검토를 부탁받은 웹소설 웹툰화 작품은 내가 해낼 자신이 없어 정중하게 거절했다. 장편화 지원이 혜택이라던 당선된 단편 소설은 해당 공모전을 주최한 플랫폼이 사라질 예정이라 통고받으며 장기 연재가 불투명해졌다. 연재 중인 웹툰은 긴 설득에도 불구하고 3회차를 더 줄여서 연재 종료하라는 확정적 권고를 받았다. 이 모든 게 9월의 마지막 주에 일어난 일이다.
반은 필력이 부족한 나의 탓이고 반은 내가 어쩔 수 없는 일들이었으나 명랑한 척한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나 보다. 상처가 나지 않은 게 아니라 내가 보지 않으려 했던 것뿐이니까.
다른 일로 눈을 돌렸다.
글을 못 써도 나는 배가 고팠다. 앞으로 글을 더 못 쓰게 되면 더 많이 고플까 봐 겁도 났다. 단순히 열량을 채우지 못해서가 아니라, 채워지지 않은 인정 욕구를 때문에 허기가 졌다. 인정 욕구를 대신 해줄 맛있는 음식, 가물어질 겨울을 버텨줄 대용량의 식량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것저것 과실류와 설탕, 꿀을 섞어 청을 만들고, 간장을 베이스로 한 여러 장(醬)과 조림류 음식을 구비해 두었다.
고개를 들면 어느새 밤이었다. 사실 나는 낮밤을 가리지 않고 글을 써 왔기 때문에 그때부터라도 쓰고자 했다면 늦은 밤이어도 아무 상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 며칠 책상이 너무 생경했다. 밤을 지새며 쓰던 날들은 남의 얘기 같았다.
애정하는 일로 밥벌이하는 것은 이만큼 무섭다. 기대가 높은 만큼 그에 대한 상처도 엔간하지 않다.
살아가는 일은 불완전성의 연속이다.
그 불완전성이 주는 불안이 싫어서 명확한 백과사전이 끌렸다. 그런데 이마저도 며칠 건너 뛰다보니 스스로 정한 약속을 미뤘다는 부채감이 몰려왔다.
아주 오래전, 학생 때부터 이어져 온 고질병이다.
목표를 높게 잡고서 스스로 정한 목표에 발목 잡히는 짓 말이다.
그때와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목표를 확정할 때까지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 정도. 목표를 뒤엎고 ‘역시 나는 모질이’라 자학하는 게 조금 줄었다는 것 정도일까.
물론, 머리로는 깨달았지만 여전히 ‘내가 의지박약은 아닌가, 나는 나에게 목표를 지키지 않을 여지와 그래도 괜찮다는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닌가.’ 하고 자책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괜찮아, 괜찮아’하며 목표를 조금씩 수정하며 다시 시도할 때에도 이 자책하는 마음이 거슬려 진도가 더디다.
그렇다. 나는 CPU가 꺼지지 않는 타입이다.
작품에 대한 발상이 끊임없이 이어질 때는 머릿속의 정보와 상상이 담긴 창이 다다다다 열리는 게 그리도 신나고 즐거울 수가 없다.
다만 이번처럼 다다다다 열린 창이 모두 에러 창일 때가 문제다. 이때 뭐라도 글쓰기 외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마치 동물원에 갇힌 동물처럼 제자리를 뱅뱅 돌게 된다. 컴퓨터를 껐다가 켰다가, 껐다가 켰다가. 유튜브를 틀었다가 오디오북을 틀었다가, 다시 유튜브에서 오디오북으로. 설거지를 한 번에 다 하지 못 해서 하다 말고 주저앉아 버리고, 자려고 누웠다가도 답답해서 베란다에 가서 앉아 있기도 한다.
셋이나 되는 반려 가족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가 나를 어쩌지 못해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꼴을 눈으로 좇았다.
전업 작가가 되기 전에는 전업 작가만 되면 시간에 자유로울 거 같더니, 프리랜서라는 게 오히려 일하는 체계가 깨졌을 때 오는 불안감이 정말 크더라.
브리태니커를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일은 누가 시키지 않은 일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서 더 즐겁고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며칠 지나자, 머릿속 에러 창이 다다다다 다시 열렸다.
경고!
백과사전 읽는다고 계약이 성사되지 않습니다.
경고!
그렇게 잘난 척하기 때문에 조회수가 오르지 않는 것입니다!
경고!
상업 작가로 살아남고 싶으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연구하세요, 헛짓거리하지 마시고!
하하하하.
우스운 얘기지만 나는 내가 불편하다, 자주. 뭘 하는 데 있어서 ‘이게 맞나?’ 하는 내면의 물음이 끊이지 않아서.
그런 에러 창들이 멈추는 유일한 때가 바로 요리할 때이다. 청소할 때도 운동을 할 때도 사념과 절망이 멈추지 않는데 신기하게 요리할 때는 사념이 없어진다. 특히 안 해본 요리를 하면 그렇게 신이 난다. 망쳐도 좋고 안 망치면 더 좋고. 부담이 없다. 그렇게 며칠 보내면 또 다시 글이 쓰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패기 넘치는 애니메이션 주인공처럼 각성하고 키보드 앞에 앉아 있고 뭐 그런 건 또 아니다.
오늘 이 글도 문서창을 열어 한 문단 쓰고 눈을 힐깃, 제대로 쓰고 있는 게 맞나 감시하고 또 한 줄 쓰고 팔짱 낀 채 의자에 기대어 게츰스레한 눈으로 혹평하며 쓰고 있다.
그런데도 점차 키보드를 치는 손에 속도가 붙자 또 배시시 웃고 있다.
쓰는 게 좋다.
알게 되는 건 더 좋다.
알게 된 걸 새롭게 쓰게 되면 그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맞다.
나는 처음부터 이 재미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글을 썼다. 그런데 그 ‘알아가는 것’과 ‘새롭게 쓰는 것’이 유지되지 못하면 나는 글을 쓰지 못한다. 어쩌면 내게 왔던 기회들은 내 글이 점차 죽어가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도망갔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프리랜서이고, 나는 자유다.
이 사실을 잊지 않도록 종종 직접 뱉어봐야겠다.
언제고 작품을 쓸 기회가 오면 또다시 그에 매진할 테지만, 오늘 내가 읽고 싶은 건 백과사전이고 내가 하고 싶은 건 알게 된 걸 서로 연결하는 것이다. 이 호기심이 언젠가 내 이야기의 토대가 될 거라 믿으면서.
사람 일은 정말 모를 일이다.
이후 11월, 반려식구의 병치레 뒷바라지를 하느라 한달이 날아가고 12월 계엄령 사태에 정신없이 며칠이 흘러가고 있다.
통장은 찢어졌고, 정신도 산산조각인데 글은 오히려 더 잘 써진다. 반려식구도 잘 살려냈고 자학도 잦아들었다.
군사권을 동원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사람도 자기가 잘못한 줄 모르는데 내가 백과사전 좀 읽은 게 뭐 그리 대단한 잘못인가. 나는 왜 그걸 부끄럽다 생각했을까.
자유롭게 의사표현할 수 있다는 게 이렇게 소중하고 귀하다는 걸, 절대 뺏길 수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되었다.
잊지 않도록 오늘도 뱉어 본다.
나는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