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태니커』"가구(家具)" (1998)
사진출처 : pixabay, "garten-gg"님의 "chair-484707_1280"
* 저는 브리태니커 사전을 읽으며 새로운 정보를 얻기도 했고 이미 제가 알고 있던 사실이나, 제가 본 콘텐츠, 제가 작품을 쓰려 조사했던 정보들과 연관 지어 생각하기도 했어요. 이하는 백과사전의 내용을 일부 인용하고 그에 대한 저의 경험이나 생각, 읽어봤거나 검색한 것 등을 정리한 것입니다. 부담 없이 읽으시면 좋겠네요.
* 혹시나 오류를 발견하셨다면 댓글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브리태니커』"가구(家具)" (1998)
가구(家具)
살림살이에 필요한 기구류의 총칭.
가구 항에서 가장 놀란 건 이집트의 가구였다.
나는 옛 회화나 조각을 보면, 의례 동굴에 새겨진 것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아마도 고대 평면 미술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아무래도 동굴 벽화라서 그런가 보다. 그래서 ‘투탕카멘과 그의 아내’ 부조도 역시 동굴 조각 중 하나인 줄 알았다. 그런데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1권 가구 항에 첨부된 사진을 보고 이게 의자 등받이게 새겨진 부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의자의 추정 제작 연도는 기원전 1330년. 목조 의자에 부조를 새기고, 도금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이 사진을 본 충격으로 이집트 가구에 대해 조금 더 검색해 나가자 아래와 같은 에세이가 나왔다.
[김신의 가구 이야기] ② 이집트 가구, 유럽 가구 문화의 기원
이 글에서 본 헤테페레스 여왕의 가구는 더 충격이었다. (저작권 문제로 본 글에 바로 첨부할 수 없어 유감이다.)
보스턴 미술관에 전시된 커튼 박스와 침대, 의자 일체는 이게 정말 기원전 2500여 년 물건이 맞을까 싶은 디자인이었다. 휴양지의 고급 리조트에서나 볼 수 있는 캐노피같이 생긴 커튼 박스는 침대와 의자가 모두 들어갈 만큼 크고 기둥에는 음각 장식이 되어 있었다. 침대는 사각의 틀에 가운데는 나무줄기로 엮여 있어 마치 침대틀에 삼베 해먹을 이어둔 것처럼 공기가 통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일명 낚시 의자라고 하는 접이식 의자, 요즘 전자상거래 플랫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3단 접이식 침대가 모두 기원전 1400년 경에서 1300년 경 사이에 이미 이집트에 있었다.
가구의 역사는 인류사의 출발과 궤를 같이 하며 생활환경 등 외적 조건에 따라 양식의 변화를 거듭하면서 발전하였다. 일반적으로 5,000년 전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며 오늘날 조립식 가구의 개념이 도입된 것을 제외하고는 가구의 기능적 조건과 특징은 고대와 현대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없다.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해왔다.
10년, 20년, 100년, 1000년 전 사람들도 이런 걸 해내는 데 난 뭐 하는 건가.
이런 사고관은 아인슈타인, 뉴턴, 아리스토텔레스, 모아이 석상, BTS, 봉준호, 김은희 등 대단한 사람들을 돌고 돌아 결국 초라한 나에게서 끝난다.
시대도, 분야도, 환경도, 재능도 모두 다른 영역에서조차 나는 비교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들에 대해 겨우 알려진 것, 피상적인 것 밖에 모르면서.
가구 항을 처음 읽었을 때,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중세 유럽으로 이어지는 당시 사람들의 미적 감각, 실용성에 대한 이해, 제작 기술 등에 감탄했다. 그런데 조금 지나니 각각 양식의 분별과 사상이 디자인에 미친 영향 등에 압도되어 우울해졌다. 이 이상 집중이 되지 않아 진도가 나아가질 않았다. 이 오랜 우울함의 정체는 바로 열등감이다.
나는 자주 정보와 나를 분리하지 못하고 나의 입장을 대입시킨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3천3백여 년 전 사람들도 자기 취향, 생각, 디자인을 반영한 가구에 둘러싸여 살았는데 지금 내 방은 어떠한가.
이런 생각은 마치 늪 같아서 빨리 빠져나오지 못하면 더 깊은 열등감으로 나를 끌고 들어갈 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된다.
잠시 숨을 고르자 올해 초 읽었던 장기하의 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그 시대에 이런 음악이 있었다니 대단하군요!” “와, 정말 시대를 앞서 나간 패션이에요!”
(중략) 나로서는 좀처럼 이해하기가 어려운 말들이다. 사람들은 왜 자신이 이전 시대의 사람들에 비해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왜 모두들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것이 나아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왜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걸까?
이전 시대 사람들에 비해 내가 모든 면에서 우월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감탄하거나 우울하거나.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반복하는 걸까.
그건 아마도 내가 시간을 수평으로 이해했기 때문이었나 보다. 이 가로선은 곧 서열을 의미한다.
시간이 왼쪽, 과거에서 오른쪽, 미래로 흐른다는 관념은 왼쪽, 과거는 더 열등하고 오른쪽, 미래는 더 우월하다는 인식을 만든다.
이 인식에 따르면 과거의 어느 대상보다 상대적으로 미래에 있는 나는 우월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해서 그렇게 감정이 널 뛰었나 보다. 내가 추구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내 환경과 노력은 무엇이었는지도 잊고 과거 어느 한순간의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질투하거나 혹은 동경하거나 그랬던 게 아닐까.
질투와 동경만으로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감정이 역동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활기를 더해주니까. 하지만 감정이 눈을 가려 다음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과부하가 걸리는 건 경계해야겠다.
잠시 옆길로 샜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의 구제를 받았으니 다시『브리태니커』의 "가구(家具)" 항으로 돌아와 보자.
이집트 이하의 가구 항에는 그리스 〉로마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 〉아르누보 양식 등으로 이어진다. 고등학생 때 세계사에서 한 번씩은 들어본 이름들인데 음악, 미술, 패션뿐 아니라 가구에도 미친 사조들인가 보다.
학창 시절엔 외우기에만도 바빴던 문화사조를 느긋이 보고, 읽어나가는 동안 단조로웠다가 화려했다가 다시 간결해졌다 호화스러웠다 하는 등의 흐름이 보였다. 주로 한 흐름이 극에 달하면 그와 정반대 사조가 등장했었던가 보다.
특히 캐비닛들이 놀라웠다. 내가 가진 브리태니커 사전, 가구 항에는 16세기 르네상스 양식, 17세기 바로크 풍, 20세기 아르누보 스타일 이렇게 세 개의 예시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첫 번째로 놀란 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캐비닛과 16~20세기 캐비닛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아는 철제 혹은 MDF 합판 캐비닛은 그저 탈의실, 사무실 등지에 있는 수납장 아닌가. 그런데 16~20세기 유럽의 캐비닛은 그야말로 작품이다.
두 번째로 놀란 것은 17세기 바로크 풍의 캐비닛 제작 기술과 우리나라 자개장 제작기술의 유사성이다.
저작권 문제로 백과사전의 사진을 스캔해 올릴 수 없어 검색해 봤더니 아래의 칼럼이 나왔다.
리바트, 인테리어_"바로크, 일그러진 진주의 가구"
https://www.hyundailivart.co.kr/community/export/B200052108
위 칼럼을 보고 왜 유럽인들이 우리나라 자개장을 보고 좋아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칼럼에 첫 번째에 나오는 캐비닛은 왠지 우리 할머니 보석함이라고 해도 믿을 것만 같다.
이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 캐비닛들은 기본적으로는 건축물을 모방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 사용된 피에트라 듀라 (pietra dura) 기법이 흥미롭다. 피에트라 듀라가 바로 상감기법인데 주로 광택이 나는 돌을 사용해 꽃, 나뭇잎, 새, 풍경 등의 모양을 만들었다. 전복, 조개껍질의 반짝이는 부분을 이용해 산수화를 표현한 자개장 상감과 결이 유사해서 정말 신기했다.
마지막으로 동양 가구 항에서는 중국 청나라 건륭제의 방 그림이 눈에 띄었다.
오른쪽 끝에 있는 원탁이 어쩐지 눈에 익었다. 옛날에 엄마가 큰맘 먹고 가구단지에서 바로크 양식이라며 샀던 원탁과 비슷한 것만 같았다. '바로크 가구 원탁'이라고 검색해 보니 우리 집에만 있었던 게 아니었는지 바로 나왔다.
... 어쩌면 다들 유럽 바로크 양식 앤틱 가구인 줄 알고 샀던 그 원탁은 사실 중국풍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