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 사운드의 미래? 혹은 과거
음악에서 융합이라는 것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대중문화에서 특히나 크로스오버의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보편적인 문화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당연히 재즈나 소울, 흑인음악에서는 사실상 처음부터 이러한 특성이 늘 있어왔고 음악적인 스타일 안에 많은 문화적 교차가 일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재즈나 흑인음악 자체가 독특한 문화적 인종적 교차에 의해서 잉태한 유동적이고 불특정적인 성격을 지니게 된 역사적 사실에 의해서도 원인이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브 맥퀸 감독의 '노예 12년'이라는 영화에는 이러한 흑인들의 속박적인 역사문화적 배경을 아주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관습에 의한 순응적 노예화라는 - 현대적인 정신의 속박을 다룬다는 점에서 또한 - 현재 진행형의 사건으로 우리 앞에 제시된다.
이러한 불확실성에 근거한 음악적 태도를 일종의 혁신적인 시대의 조류와 비슷한 경향으로 봐주는 것도 크게 무리는 없을 듯싶다. 요즈음에 들어 독창적인, 정말로 혁신적인 음악을 듣기에 상당히 힘든데, 그 와중에 발표된 Robert Glapser 의 음악은 정말로 대중음악의 참신성이 상당 부분까지 가능하겠다는 긍정적인 결과물을 보여 준다.
로버트 글래스퍼는 역시나 음악인이었던 부모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재즈와 블루스, 가스펠을 하는 부모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고, 뉴욕에서 뉴스쿨 재즈학교를 다니며 피아노 연주를 체계적으로 습득한다. 뉴욕에서 재즈 피아노를 연주하면서도 소울싱어인 Bilal과 협연하고 영향을 받아 흑인음악적인 소울과 힙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의 음악 언어 안에 흡수하게 된다. 데뷔 앨범 Mood를 발표하고 난 뒤 그는 곧바로 블루노트 Blue Note 에서 본격적인 앨범 Canavs(2004)를 발표하게 된다. 2006년도에는 in my element 를 발표하고 지금의 복합적이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음악적 시초를 보여준다.
그의 음악은 정통적인 피아노 연주를 유지하면서도 힙합 리듬, 소울 창법의 보컬, 전위적인 사운드의 다소 현대적인 색감의 전자적인 사운드를 가미하는데 이러한 독창적인 시도로서는 최근 재즈계에서 가히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이러한 크로스오버적인 시도에서는 재즈에 무게가 실리든, 힙합에 무게가 실리든 나름 하나의 방향으로 치우치게 되는데, 융합으로 보자면 로버트 클래스퍼의 음악에서는 힙합이나 현대적인 전위성이 완전히 녹아들어 그 자체로 완전한 음악처럼 들린다. 물론 허비 행콕, 브랜포드 마살리스의 프로젝트 등의 힙합적 재즈의 영향도 크다고 할 수 있겠지만 좀 더 새로운 세대이다 보니 할 수 있는 힙합적인 시도나 네오소울의 플로우와 랩과의 결합 등, 보다 시대에 걸맞는 트렌디를 즐기기에는 안성맞춤이다.
2012년의 앨범은 Robet Glasper Experiment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밴드의 형태로 발표한 앨범으로 Mos def. Bial, Ledisi, Erika Badu, Lalah Hathaway, Music soulchild 등 네오 소울계열의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아예 그냥 뉴-소울 음악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정통 재즈 레이블인 블루노트에서 발매된 뉴소울 앨범이니 아주 독특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반복적인 리듬이나 미니멀한 단순한 형태에서 다소 부담이 있는 뉴소울 음악에 비해 우아한 연주가 가미되어 있어 감상하고 듣기에는 오히려 더 즐겁고 풍요로운 면까지 있다.
2016년도에 발매된 artscience는 한결 서정적이면서 과거 팝재즈의 향취를 적극적으로 끌어오고 있다. 그런데도 어쿠스틱 연주를 통해 들려주는 전자적인 사운드는 어딘지 모르게 전위적이면서 진보적인 분위기를 전달한다. 샘플링과 전자음악의 음질, 힙합적 비트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도 재즈 특유의 연주자 중심의 드라마틱한 아날로그 연주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어쩌면 과거의 재해석이라는 미래적인 관점의 스타일이 이번 앨범애 서도 여지없이 간결하고 탁월한 기교와 함께 전개된다. 샘플링 음악 같지만 한 테이크로 연주되어 라이브로 녹음되는 밴드 음악의 테크닉은 상당히 놀라운 수준이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현대'에 대한 그 나름의 정의가 아닐까 싶다.
재즈를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조금은 어려울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괜히 라운지 음악을 들으며 바에서 와인을 들이키지 말고 이러한 독창적인 현대적인 재즈를 권하고 싶다. 흑인음악의 현재는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것, 음악의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 현대문화의 다양한 경향이 여전히 상호 교차하며 꼴라쥬 되어 대중들의 감성을 표현하며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이러한 진정으로 혁신적인 스타일에 녹아서 우리에게 생생하게 일깨워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