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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명 Apr 14. 2017

앨범 <낯선 사람들>

잊혀진 명반 <낯선 사람들 > 1집 

생각해 보면 혁신이란 것이 참 쉽지 않은 것이다. 관념적으로 올바른 것을 이야기 하기는 쉬운 일일지 몰라도 실제로 우리가 지닌 진부함, 통념에 균열을 내고 그것을 실행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런 것들이 성공을 이룬다면 우리는 새로운 빛을 보게 된다. 우리에게도 많은 알지 못하는 사이 시도했던 혁신이라는 것들이 존재했었을 것이다. 미처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을 뿐. 



나는 처음 <낯선 사람들>이란 앨범을 접했을 때 깜짝 놀랐다. 유재하를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이랄까? 물론 이것은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또한 탁월한 기량에서도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보컬부터 편곡 녹음 연주까지 만만치 않은 완성도를 지니고 나타났기에 그랬다는 것이다. 낯선 사람들은 1993년도에 첫 앨범 <낯선 사람들>을 발표한 팝-재즈 보컬그룹이다. 고찬용을 리더로 차은주, 백명석, 신진, 허은영, 이소라 등 인천대 보컬동아리 멤버로 알려진 이들이 결성한 이 그룹은 상당한 수준의 보컬 하모니를 들려준다. 당시에 다른 가요와 비교했을 때 멜로디와 연주, 편곡의 전개는 꽤 탁월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음악적으로 꽤나 날리던 세션 뮤지션들과 편곡자들이 모두 이들의 앨범을 떠받치고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이 앨범은 재즈 보컬 사운드를 위주로 펼쳐지며 재즈적인 화성을 제대로 선보인다. 앨범 전체 고찬용의 작곡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왜, 늘> 같은 트랙에서 보여주는 비트는 상당한 펑크 소울의 향취까지 보여준다. 이 그룹에서 처음 데뷔했던 이소라의 보컬도 놀랍고, 사랑과 평화  리더였던 최이철의 기타톤도 상당히 맛깔스럽다. 첫곡 <낯선 사람들>부터 마지막 한곡까지 상당히 공을 들이고 정성스럽게 연주하고 만든 앨범임이 분명하다. 당시 감각이 출중했던 김현철(편곡/키보드), 김광민(피아노), 손진태(기타), 정원영(키보드)의 연주와 편곡들이 이들의 부드러운 듯한 보컬에 충분히 단단한 밑그림을 그려준다. <해의 고민>은 재즈 아카펠라 그룹으로서의 독특한 시도와 참신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2집에서 부터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본격적인 애시드재즈 acid Jazz 스타일을 선보이는데 다소 복잡한 맬로디와 당시 가요의 트렌디와는 전혀 딴판으로 보이던 감각에 의해 그다지 눈에 띄게 성공한 곡은 없었던 듯하다. 개인적으로 깊이 몰입감을 느낀 곡들도 없었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그 당시에 그런 스타일의 소울-훵크-가요가 조금씩 섞인 듯한 곡을 시도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집에서는 1집에서의 탄탄한 세면의 구성이 아니긴 했지만 거의 원 맨 밴드 수준의 고찬용의 편곡 솜씨는 역시 빛을 발하고 있다. 





당시 공연장에서의 반응도 가히 폭발적이었는데,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사운드와 재즈적인 하모니가 상당한 청량감과 색다름을 선사했던 것 같다. 다만 신기하게도 방송 출연이 드물었고 라디오에서도 적극적으로 선곡이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당시 가요의 흐름과는 완전 별개로 흐르던 이들의 사운드를 제대로 짚어 주었던 매체나 평론가들은 드물었다고 보인다. 포크나 록 마이너 음악의 의미부여에 비하면 조금 편향된 소개가 아쉽기는 하다. 



아마 여러분들은 나름의 음악 취향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취향에 충실하고 트렌디에도 발 빠른 전적으로 자발적인 개인의 선택이다. 요즘 음악시장에서 이들 음악을 거론한다는 것이 참 뜬금없이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거대한 음악산업이 존재하는 한국이 되었지만 음악의 기본적인 기량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요즘 연주자 중심의 (Snarky Puppy, Tower of Power와 같은) 밴드들이 꾸준히 다시금 등장하는 미국의 경우를 예를 들지 않아도 우리에게도 이러한 연주 보컬 멜로디의 기본기에 충실한 뮤지션을 한 번쯤 되짚어 보는 것이 어떨까? <낯선 사람들>이라는 앨범은 적어도 내게는 잊혀진 걸작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무방하다.  



비평가 테리 이글턴은 개인주의 시대 문화적 옷을 제때에 걸맞게 걸치는 것이 현대에 와서 종교적 제의를 대체하는 것이라고 한다. 취향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조금 더 색다른 음악을 찾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글쎄 큰 상관은 없다. 결코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와는 상관이 없을 테니까. 다만 우리 사회의 어떠한 지표로 당시의 거대한 통속적인 흐름과 별개로 나타났던 조그마한 혁신이라는 균열들을 한 번쯤 반추해 볼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념, 도덕, 경제라는 거대한 그림들을 펼치는 그 시기의 담론은 사실상 미적 혁신, 유우머, 창의적인 문화적 수사를 통해서 그 영혼이 완성된다. 우리 시대의 모든 지금의 부조화들은 이러한 영혼의 결핍에서 오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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