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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명 Mar 21. 2017

시선과 그림, 마주하는 풍경

김민정의 도시 풍경들 

늘상 마주하는 사물이 던지는 질문들에 관해 한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질문이라는 단어가 주는 약간 엄숙한 분위기를 피해서) 그렇다면 우리의 내적인 반응에 관해 한번 떠올려 보자. 대도시에 사는 우리의 의식에 떠돌아다니는 제 각각의 사물들은 그리 미적으로나 혹은 음악적으로 나의 뇌리에 남아, 그럴듯한 수사인 ‘역사나 공동체의 어떠한 시간과 삶의 흔적’을 떠올려 주는 대상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 자체로서 하나의 생명체이기도 할 도시의 연결망 속에서 불쑥불쑥 맥락 없이 고개를 들이미는 무계획적인 변방 도시의 건축물과 풍경은 아마 더욱 그럴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건축물과 풍경들은 응시라는 대화 속에 남겨지고 우리에게 깊숙이 각인되어 있다. 어쩌면 의미 없는 사물들이지만 내게 그 물건들은 내가 바라보는 동안 인식의 흐름 속에 남겨져 지속적인 ‘상실의 흔적’으로 변해 간다. 



김민정 작가의 풍경들은 마치 조그만 방 속, 전세를 얻은 작업실이나 혹은 아파트의 창문 너머로 아득하게 보이는 풍경에 가깝다. 그러니까 그것은 공간을 헤집고 그 표면들과 경계들을 추적하고 드러내거나 지난한 질감들을 과감 없이 덧칠해 내거나 하는 격정적인 풍경은 아니다. 지극히 정적이면서 내면의 방에서 창 너머로 비치는 관조적인 몽상들을 키워내는, 익숙한 듯하면서도 도무지 잡히지 않는 풍경들인 것이다. 그래서 김민정의 회화에서 보이는 건축물과 도시의 색감과 공간들은 하나의 창(window)을 전제로 하는 또 하나의 예술품처럼 느껴진다. 이것이 사물들, 혹은 도시 사이를 부유하며 그 대상과 풍경들이 던지는 질문에 답하는 김민정 만의 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시선 속에 층층이 쌓아가는 건물과 작은 집들은 이 회화가 지니는 독특한 방식의 (현대화된 도시 속 바로 그 시선의 주체가 스스로의 관점에서 채색하게 되는 상실과 흔적 같은) 시점을 떠올려 주는 것 같다. 아름답지만 왠지 지나치게 차분한 슬픔 같은 것 말이다. 



하나씩 캔버스에 옮겨지는 건물과 재개발되고 있는 풍경들은, 적어도 작가의 시선 안에서 상상 속의 유토피아적인 안심의 거처로 변하고 있다. 전시장 안에 하나씩 걸려있는 개별적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조금씩 유사하거나 변주되면서 제 각각의 공간 안에 놓인 우리의 심리적 도시와 거처를 나타내며 개발된 도시developing city의 현대화된 낭만과 염려 안에 함께 잡아둔다. 그 자체로 현대미술의 오브제와 같은 거대한 유토피아적인 숭배의 풍경과 프레임으로 변모해 버린 우리의 도시들 말이다.




무의미할 정도로 꼼꼼하게 공사 중인 건물의 외형을 약간은 집착적으로 묘사해 내는 최근의 소재는 의미의 부재를 선명하게 드러나게 한다. (사실적이고 평평한 그의 화풍이 더 그런 면을 부각시킨다. 초현실주의자들의 비어있는 의미를 보여준 그림처럼) 그렇지만 그의 회화에는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들이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렌즈를 전재로 하고 있다. 사물과 반응하는 시선의 감각적인 주체로서 사물의 숭배적 세례를 바라보아야 하는 조건적인 전제가 나름 투명하고 온당하게 전해져 온다. 



우리에겐 이제 이미지, 건축물, 풍경, 사물, 예술품이 각각 동일한 조건에서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는 방식은 전적으로 우리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때로는 무절제한 욕망의 부산물인 풍경과 소비품들 사이에서 애써 관조적인 시선으로 나름의 미적 회복을 꿈꾸어 볼 수도 있다. 김민정은 사물이 우리에게 남긴 것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포착하고 그곳에 작가만의 시각적인 소망을 담는다. 그것은 도시의 풍경들이 뜨거운 열정처럼 불숙 솟아올라 우리에게 격정적인 욕망을 선 보이고 있지만, 언제든 덧없는 환영처럼 소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절제된 소망이다. 




그것이 상실이라는 또 다른 방식의 아름다움의 잔상으로서 다소는 관조적으로 보일지라도 충분히 우리의 미시적 삶의 렌즈와 닿아 있기에, 또 다른 삶의 주관적 시선과 미적 기쁨을 맛볼 수 있다는 꿈을 꾸게 만든다. 사물은 단지 바라보기에 따라 움직임이 달라지는 상상 이상의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지난한 공사 중인 건물의 외양과 풍경을 절제된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는 이 풍경들은 결국 삶의 극복이, 미적 상상력과 더불어 사람의 시선 그 자체를 전제로 한다는 존재론적인 울림으로 우리를 이끌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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