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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명 May 03. 2017

60년대가 그린 부산과 사람

박춘재 작가의 그림

돌아가신 박춘재 화가의 전시도록을 보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였었다. 우연히 들렀던 부산의 용두산 공원에 위치한 시립미술관 용두산 전시관에서 화가의 유고전을 진행하셨던 기획자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였다. 순간적으로 왠지 나는 이 도록을 꼭 갖고 싶었다. 잠시 빌리는 형식을 취했지만 이 도록은 내 것이 되었다. 책을 가져가서 가지고 오지 않는 사람들에게 저주를 퍼붓는 나였지만, 가끔 살아가면서 입장을 바꾸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시각적인 경험을 너무나 많이 과도하게 넘치도록 하고 있는 요즘 세대들에게 정말 '그림이란 무엇인가?'를 물어보는 것만큼 허무한 일도 없을 것 같다. 파이프는 파이프 이듯, 그림은 그림이다. 우리는 프레임 안과 밖을 굳이 구분해야 하는 교육을 받고 자랐는데 사실상 프레임 밖의 무엇이든지 그림이 되고 그림 안에는 어떤 풍경과 환경에 대한 함축적인 인상들이 담겨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림은 건물과 도로, 혹은 사람들의 일상의 연장으로 벽에 걸리고 관찰되거나 장식된다. 





우리의 풍경 속 작은 풍경으로 그림은 언제나 작은 사물로 남겨지고 그것은 다시금 도시나 건물의 일부가 된다. 그래서 그림은 우리 시대가 바라보는 거대한 인상의 조각들로 남는다. 과도하게 뇌의 지각에 커다란 파격을 남기는 이미지의 자극 속에서 부산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박춘재 작가의 수채화는 그려진 그림 바깥의 도시 풍경을 상상하게 하는 독특한 매력으로 나를 붙들었다. 마치 그 자체가 풍경의 일부이듯. 





60년대 부산의 사람과 풍경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고교얄개'나 '진짜 진짜 좋아해'라는 60년대 청춘물에서 보이는 학교와 사람들의 낡은 필름의 컷까지 오버랩되지만, 그림은 차분하고 매혹적으로 우리의 시선을 이끌어 간다. 오히려 그림은 흥분된 미디어의 정치뉴스 투의 어조를 가라앉히고 우리를 잔잔하게 만들며 나를 응시하고 있는 것 같다. 화풍이나 추상적으로 변해 가는 형태의 전개에 굳이 관심을 많이 기울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박춘재 작가의 그 시절 담담하게 그림으로 옮겨 놓았던 사람과 풍경은 어느 한 시간. 지방의 어는 한 공간에 존재했던 아름다운 시선으로 남겨졌다. 작가는 어린 시절 밀양에서 자라고 부산에서 미술교사와 신문사에 재직하며 그림을 그렸다고 도록에 기록되어 있다. 당시 짬짬이 그림을 그려내었던 어느 부산 작가의 매력적인 색채감은 내가 고루한 것으로 치부했던 원로 작가들에 대한 편견을 말끔히 없애 주었다. 오히려 요즘의 감각적인 차용. 도시의 외관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난 현대미술의 의미 과잉으로부터 나의 시각적인 자존감을 훨씬 인간적으로 보호해 주는 것 같다. (이러한 부산의 작가들을 발굴해서 전시하고 기록을 남겼던 학예 연구원장이셨던 강선학 선생의 노고는 지금 생각해도 값어치가 있었던 것 같다.) 





비록 훈계조의 의미심장함이 없다 하더라도, 때때로 우리는 그림을 통해 프레임 바깥을 상상하거나 어떤 시간들을 그리워하거나 그려진 모델이나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기울일 권리가 있다. 60년대 부산에도 그러한 관심들이 존재했었고 순수하게 그림을 통해 관찰되어졌으며 그러기에 사람들이 그 공간을 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먼길을 돌아 지금이야 말로 우리는 우리의 주변을 둘러볼만한 힘을 (혹은 시선을) 지니게 되었다. 관찰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물리학적 명제가 있듯. 그림은 그림이고, 바라보기에 존재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에필로그  



이 전시를 보고난 후 10년이 지났을까? 운이 좋게도 나는 똑같은 미술관 공간에서 큐레이터의 덕택으로 이동근작가와 함께 부산의 공간에 관한 미디어 전시를 하게 되었다. 그때 전시한 <골목들>이라는 작업들의 주제는 먼저 부산의 일상을 그려 내었던 선배 화가들이 천착한 일상 공간에 관한 존경, 혹은 그것의 계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것을 고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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