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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명 Nov 30. 2017

에이젠스타인과 몽타주

 편집과 영상 스토리텔링의 발명  

재즈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 Herbie Hancock 의 뮤직비디오 Rockit(1985)이 MTV 채널로 처음 방영되었을 때 많은 비평가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선 한 가지는 뮤직비디오라는 형식에 담긴 그 내용 없는 가벼움(?)이었을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기존의 진지한 예술적 성취에 (예컨대 뒤샹, 달리의 오브제 미술) 담긴 인상적인 이미지를 차용하여 다루는 놀라운 솜씨였을 것이다. 이 영상에는 마르셀 뒤샹, 살바도르 달리의 오브제 미술을 본뜬 소품들이 등장하는 한 가정집을 배경으로 당시 미국을 휩쓸던 새로운 리듬에 맞춰 유쾌하게 춤추는 마네킹들이 등장한다. 




당시 비평가들에게 MTV의 몽타주는 모더니즘 미술을 조롱하는 것이기도 했고, 진지한 전위적인 개념을 기반으로 하는 엘리트문화의 저변에 대중 영상이 주변부에만 머물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는 진지한 고민을 하게끔 했다. (실지로 현대미술에 매튜 바니, 로리 앤더슨, 백남준 등의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비트는 탈신화적인 분위기의 영상미술이 곧이어 등장했다.) 변증법적인 토대를 지닌 몽타주라는 영상문법이 더 이상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문화의 선언으로 느끼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1920년 초기의 영상문법은 모더니즘의 문화적 배경 (사진, 회화, 시각예술의 심화된 구성 요소들의 문법 연구)으로 특히 러시아에서 진지하게 실험되고 응용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연구는 이후 영상문법이라는 패턴이 자리 잡는 훌륭한 자양분이 되었다. 러시아의 영화학과 교수이자 감독이었던 레프 쿨레쇼프 (LevKuleshov)의 연구는 특히 의미심장하다.  쿨레쇼프 이후 러시아에서는 연속 이미지의 심리적 반응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이루어졌다.

 

 

쿨레쇼프가 남자의 얼굴과 수프가 담긴 그릇을 병치시켜서 관객에게 보여주면 관객들은 남자의 얼굴에 배고픈 표정이 나타난다고 읽었다. 또 남자의 얼굴과 소녀의 얼굴을 보여주었을 때 관객은 기쁨의 표정을 읽어낸다. 마찬가지로 남자의 얼굴과 관을 병치시켜 보여주었을 때 관객들은 슬픔이라는 표정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이미지가 개별적으로 독립된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아닌, 전후의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관객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또한 영상에서 하나의  장면은 일종의 상징, 단어처럼 문법적인 전달의 한 요소가 될 수 있음을 말해 준다. 이미지가 연속적으로 전개될 때 - 문화나 관람객들의 관습적인 맥락 안에서 - 다양한 감정과 사건의 변주로 표현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20년 배우를 촬영하여 관객의 연속이미지 반응을 연구한 쿨레쇼프 효과 



원래 몽타주라는 것은 다양한 이질적인 요소를 한데 붙여서 새로운 형상을 창조해내는 미술 기법을 일컫는 것이기도 하다. 영상에서 몽타주라는 개념을 러시아 영화감독 세르게이 에이젠스타인은 이를 미학적으로 완성했다고 할 수 있다. 에이젠스타인은 볼셰비키 혁명 10주년 기념 영화인 <전함 포템킨>을 만들며 이러한 그의 영화미학을 의욕적으로 구현해 내었다. 그는 유물론적 변증법을 시각예술과 영화의 기본 구성 원리로 파악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이념적 영화미학의 기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말하자면 하나의 현실과 이에 충돌하는 저항적 요소를 병치하고, 새로운 극복이나 창조가 구현되는 형식 전개를 영상의 씬에서 (장면의 다양한 조형요소를 연결하여) 구체화하려고 했다.  

 


연극 연출, 무대조명과 배우들의 행위를 면밀히 관찰하여 관객들의 반응을 영상적으로 다시금 구조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는 그의 이념은 영화를 제작하며 대단히 정밀하게 체계적으로 구축되었다. (에이젼스타인의 청년시절 러시아의 연극극단의 무대 연출 경험이 이러한 영화적 반응을 설계하는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시각적 청각적인 모든 장면의 단위들이 닫힌 장면에서 이탈하여 강렬한 심리적 경험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 열린 구조를 그는 새로운 사상을 반영하는 전위적 실험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은 기본적 영상의 원리를 이데롤로기의 원리와 일치시켜 미적 도덕적 완성을 이루고자 한 야심 찬 시도가 아닐 수 없었다. 영화사에서 가장 유명하게 언급되는 오뎃사 계단 씬은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했다.  



오뎃사 계단씬은 하나 의사회적 이념의 장이다. 분노에 찬 민중은 계단을 올라 그들의 분노를 표현한다. 제국의 군대는 계단 위에서 아래로 향하며 이를 무자비하게 탄압한다. 오뎃사 계단에서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힘과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힘이 병치되면서 드라마틱하게 충돌하는 계급적인 상황을 묘사해 나간다. 영상에서 씬과 씬이 만나며 카메라는 광범위한 공간을 묘사하고 세부적인 클로즈 업과 표정들이 세심하게 묘사된다. 새로운 상황들, 공간들을 작은 조각난 장면을 나누어 편집하여 조형적이면서 건축적으로 완성해 나가는 방식을 에이젠스타인은 미적인 형식으로 완성시킨 것이다. 



 


영상의 가장 혁신적인 형식 미학이 마르크시즘의 변증법을 토대로 탄생했다는 사실을 대부분 잘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장면들의 다양한 충돌, 위치, 사람, 시선, 공간, 샷의 크기 등 형식적 시도가 없었다면, 아마 현재 우리가 보는 영화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A와 B의 컷은 새로운 C라는 의미와 사건을 발생시킨다. 이것이 몽타주 이론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아마도 이것은 사실을 인지하는 사람들의 시각적 인지의 방식들, 스토리텔링을 무의식적으로 부여하는 심리적 기제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영상의 전제 조건인 것이기도 하다. 


 



또 다른 시기 할리우드 영화인 영화 <언터쳐블 untourchable(1987)> 의 계단 신을 보자. 이 시퀀스 역시 전함 포템킨을 그대로 모방하여 화제가 되었다. 이 영화의 갱단과 경찰의 추격을 그린 내용과 또 다른 사회적 의미에서 형식적으로 잘 맞아떨어진다. 러시아 클래식 영화에 대한 하나의 오마주이면서, 또한 그 문법적 계승이기도 한 현대 할리우드 영화는 관습적인 문법 영화의 가장 큰 수혜자이다. 현대 영화에서의 <전함 포템킨> 같은 몽타주 이론의 기본 뼈대는 그대로 살아 남아 작동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시퀀시 이기도 하다. 


 

에이젼스타인은 영화적 몽타주 개념을 다양하고 체계적으로 정립했다. 연상적 몽타주, 비유적 몽타주, 사유적 몽타주, 리듬 몽타주, 장식적 몽타주와 동작 몽타주 등으로 다양하게 구조적으로 또는 대위법적으로 설계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시기 러시아에서 에이젼스타인이 정립했던 몽타주의 다양한 방식들은 때로는 성공적으로 때로는 다소 전위적으로 거칠게 표현되기도 했지만, 지금도 영화의 관습적 문법의 기초로 대부분 살아남아 작동하고 있다. 변증법적 유물론을 영상 예술의 기본 뼈대로 삼으려고 했던 에이젼스타인의 정교한 시도는 오히려 자본주의에서 꽃 피운 형식주의 영화 (히치 코크나 오슨 웰즈, 스티븐 스필버그 등) 표현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알프레드 히치콕 Alfred Hitchcock은 이러한 기본 몽타주의 뼈대위로 시점 샷과 심리학적 카메라 워킹으로 할리우드 영화의 편집체계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 나갔다. 




1.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의 습작 (프란시스 베이컨, 1954, 영국)



파괴적 창조라는 모더니즘 미학의 기본 미학 이념은, 이러한 이념적인 지향점에 의해 태동되었고 예술을 순진한 사상으로 보다 초월적인 것, 숭고한 것으로까지 확장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20세기 초기 예술가들의 원리에 대한 집요하고 끈질긴 탐구는 지금 생각해 보면 놀라울 정도의 에너지를 담고 발현한 것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추상회화, 몽타주 이론들, 구성주의, 표현주의와 기계 예술의 역동적 운동들은 그 시대가 이념적으로 진보할 것이라는 거대한 열망과 함께 영상이라는 가장 대중적이면서 혁신적인 매체에 가장 치열하게 담기게 되었다. (그림1. 벨라스케스의 교황 그림을 에이젠스타인의 영화 컷의 패러디로 변주한 프란시스 베이컨의 회화는 커다란 논쟁을 불러 일으킨다.) 



그림2,3 에서 처럼 전체주의의 탄압을 받던 끔직한 민중들의 상징적 이미지 컷은 1960년대 이후 할리우드에서 포스트모던한 이미지의 확대 재생산의 효과적인 클래식 형식의 원천으로 변모한다.



2. 전함 포템킨 (세르게이 에이젠스타인, 1925년, 러시아)


3. 영화 잃어버린 성궤의 추척자들 (스티븐 스필버그, 1981,미국) 



임마뉴엘 루베스키가 촬영을 맡았던 영화 <칠드런 오브 맨> 과 <그래비티>의 시작 부분은 컷 편집 없이 약 10여분이나 롱컷으로 공간과 상황을 묘사한다. 촬영기술과 그래픽 처리의 도움을 빌리긴 했지만, 관객들은 배우들의 시점에서 놀라운 경험을 함께 하게 된다. 확실히 컷 편집의 문법은 (광고와 뮤직비디오라는 스타일을 우선하는 패턴에서 보여지듯) 이전 만큼 절대적 중요도를 차지하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공간 안에서 배우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여 감정 이입을 해야하는 스토리텔링의 시점에서, 몽타주의 기초적인 설계는 아주 주요한 접근이 될 수 있다. 몽타주는 그러니까 소멸했다기 보다는 좀 더 효과적으로 진보해 가고 있는 것이다.         



에이젼스타인은 정작 러시아에서는 형식주의적인 미학 이념을 가진 것으로 비판받고 이후에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나눠 찍고 편집하여 스토리를 전개시키는 그의 끈질긴 탐구가 없었다면 모던한 의미의 영상문법, 영화라는 것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편집이라는 것이 (뮤직비디오에서 종종 보이는) 손쉬운 기교와 한물간 문법책의 1장에 소개되는 역사가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3D 애니메이션에서 조차 카메라의 움직임을 전제로 각 장면들이 유기적인 움직임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 관객들에게 편집의 조형감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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