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 개념으로서 영상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사실 하나가 있다. 사건이 발생해서 있던 그대로 우리가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를 ‘이야기’로 만들어 내었기 때문에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재구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과 내가 관념적으로 재구성한 '인식'을 제대로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본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식이라는 전제적 과정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망막으로 투영된 그림이 우리에게 완전한 의미로 지각된다는 것은, 구체적 형상을 뇌의 문화-경험적 의미의 그물망을 통해 유기적인 그림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구성’이라는 인간의 오래된 지각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떠한 사건에 관해서 단일하고 간결한 이야기로 의식하기가 어렵다. (뇌가 정보처리의 다양한 과정을 의미 있는 취사선택의 필터링을 통해 간결하고 필요한 의미로 처리하는 과정은 또 하나의 분야를 필요로 한다.)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고양이를 비추는 그림과 무언가를 바라보는 남자의 얼굴이 연속적으로 등장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양이를 쫓아가던 남자의 안타까운 상황을 묘사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것이 이야기를 만드는 대부분 관객들의 자연스러운 심리적 기제이다. 많은 연구자들은, 형상을 기억하는 뇌의 신경학적 반응과 이미지에 의미를 불어넣고자 하는 지향성의 기제(방향성)가 동시에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에디슨의 영화사에 소속된 감독이었던 에드윈 포터 Ediwin S. Poter 는 <미국인 소방수의 일생>(1903)라는 초기 영화에서 전혀 다른 장소와 시간에 촬영된 장면을 교차 편집하여 극적인 긴장감을 주는 영화를 만들었다. 포터는 다른 시간과 심지어 다른 의도로 촬영된 이미지의 연속적 연결을 제시하면 시간과 연속된 사건의 흐름이 관객의 생각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상은 간단한 편집 과정을 통해 이루 말할 수 없는 긴 시간을 단 몇 초 만에도 제시할 수도 있고 공간의 제약 없이 움직임을 연동시킬 수 있다. 초기 영상에서 이러한 문법을 적용한 것은 놀라운 인간의 심리적 지각 원리를 파악하고 나서였다.
사실상 20세기 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시각 이미지의 원본을 복제하고 혼합적으로 뒤섞어 색다른 의미나 감정을 발생시키며 유통되고 해석되었다. 산업화 시기의 기술과 조밀한 지역 간 연결이 비연속적인 이미지나 데이터, 순간성, 도약성들의 성격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유포와 해석의 방식들은 (또 다른 맥락에서 - 정치와 일상의 미시적 맥락, 현실과 극사실적 도상 Hyper-realism, 전혀 총체적이지 않은 역사의 시공간적 재현 등) 이미지 정보가 재창조되는 간단하지 않은 양상의 시각예술로 진화해 왔다. 현대의 예술 전반에 나타나는 이러한 경향은 기술 발달과 산업화, 또한 변증적 유물론에 영향을 받은 미학과 이념을 배경으로 하여 모든 문화 저변에 확산된 현상이었다. 이 부분에 관해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라는 비평에서 꼼꼼하게 잘 짚고 있다. 환경과 정치의 요소에서 또한 인간의 심리적 지각의 요소에서도 영상의 기술적 재현과정은 확실히 요소들의 섬세한 분리와 재구성이라는 미학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피카소의 입체파 회화, 라우센버그의 컴바인 페인팅, 팅겔리의 키네틱 아트 등에서 나타나는 파격은, 결국 다양한 문화 저변에서 차용한 이미지나 기법의 혼합이 우리에게 색다른 감흥의 현대적 충격으로 다가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것을 넓은 의미로서 몽타주라는 용어를 20세기 예술미학의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개념으로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영화적으로 엄밀하게 몽타주는 영상의 씬을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 붙여 새로운 공간과 상황을 발생시키는 영상 구성의 미적인 법칙을 말하는 것으로 제한해서 사용한다.
영화 <칼리토의 길 carlito's way>(1993)에서 나오는 이 에스컬레이터 추격신은 현대적이고 세련된 영상의 처리가 돋보인다. 브라이언 드 팔머 감독은 종종 히치코크의 정형화된 공간의 시점 묘사를 문법적인 교본을 삼으면서도 한 씬(scene)을 단지 한 컷(cut)으로 표현하는 기술적인 처리방식을 종종 선호했다. 스테디 캠 한 대로 표현되는 이 감각적인 씬은 뉴욕의 센트럴 역에서의 긴장감을 정말로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단 몇 컷으로 복잡하지 않게 처리된 이러한 씬은 포터로부터 시작된 몽타주라는 긴 영상문법의 진화가 할리우드 영화에 녹아 현대적으로 구현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객관적으로 주인공을 비추는 것 같지만, 카메라는 컷의 분리 없이 (일반적인 헐리우드 영화 관습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긴 2분20초이다.) 공간을 함께 이동하기에 주인공의 시점으로 사건을 함께 체험하는 듯한 긴장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한 컷으로 묘사되는 이 시점 이동을 우리는 거의 사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이 장면은 섬세하게 계획되어 배치된 일종의 가상적인 극사실의 무대이다. (결코 사실적 공간은 이렇지 않을 것이다!)
영화에서 씬의 전개는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하나의 영화적 경험으로 인지 되지만, 이러한 씬이 탄생하기까지 영상의 문법은 꽤 오랫동안 혁신적 발명가들에 의해 태동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피스D.W.Griffith는 <국가의 탄생 Birthof Nation>(1915)에서 본격적으로 다양한 장면과 앵글을 통해 최초의 극적인 서사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서사의 플롯에서만 작동하는 이야기의 전달 방식을 그리피스는 최초로 의미 있는 영화적 기법을 사용하여 제작하였다. 클로즈업, 시점 샷, 크레인 샷, 페이드 인과 페이드 아웃, 롱숏과 미디엄숏등 고유한 영상적 기법을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방식의 구조로 확장시킨 것이다. 단선적인 이야기라는 서사적인 구성안에서 다양한 사이즈와 성질을 지닌 샷들을 이어 붙임으로써 구성적으로 영상을 새로운 차원의 심리적 경험이 가능한 무한한 확장의 성질을 지닌 개방적 시각 형식으로 발전시켰다는 데에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리피스는 이질적인 요소와 성격들의 영상 이미지의 종합을 통해 서사적으로는 내적인 일관성이 있는 이야기를 구성해 내는 미적 방법으로 영화를 확장시켰다. 영상이 단지 서사의 전달뿐만 아니라 미적 상징이나 심리적 경험으로서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던 것이다. 영상 이미지란 하나의 독립된 개별적인 의미가 아니라, 전후의 맥락에서 이전과 이후의 전개에서의 위치에서만 의미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현대 미학의 근본적인 태동과 그 뿌리를 함께 한다.
기술과 오락, 대중문화로 영상을 소비하는 우리에게 영상 문법의 초기 발견은 색다르고 흥미 있는 어쩌면 약간의 심오함마저 던져준다. 20세기 초기의 다양한 예술들과 마찬가지로, 갈등 요소, 창조적 파괴, 단순성과 복잡성의 대위법적인 긴장, 요소들의 행간에서 관객들이 이야기에 개입함으로써 예술의 의미가 발생한다는 출발은 예술과 영상이 하나의 미학으로서 함께 발생했다는 점을 보여주고도 남음이 있다. 결국 우리는 '재구성'이라는 의미 발생의 기본 원리로부터 다시 출발한다. 들뢰즈가 말하듯이 우리 내면의 영화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