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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명 Apr 12. 2017

서사 예술로서의 영상

영상의 요소들 1 

백남준이 브라운관을 TV로부터 분리해 내고 하나의 선으로 보이는 주사선을 화면에 띄운 후에 그 앞에 부처의 조각상을 두었을 때, 관람객들은 미디어에 관해 독특한 심성을 떠올렸을 것이다. 60년대 이후, 텔레비전의 영상은 미국의 모든 가정에 침투하였고 일상과 문화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던 차였다. 백남준은 미디어가 연출하는 영상, 일종의 환영에 관하여 가차 없는 해체와 재구성을 시도했다. 영상은 텔레비전으로 송출되기 시작한 이후 모든 가정 모든 공간의 중심에 자리 잡은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 즉 영상을 제외하고 그 맥락의 해석 없이 우리는 어떠한 진리도 지니기 힘들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문화 정치의 중심부로 영상이 서서히 자리 잡아가던 시기 백남준은 다소 과격하게 또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 영상이 지닌 개별적인 부품들을 짐짓 제의적인 태도로 재탄생시키면서 담담하게 우리의 일상의 기제로부터 분리해 내곤 했다.


백남준 Buddha Duchamp Beuys 1989


20세기 초, 영화가 처음 탄생했을 때 러시아 영화감독 지가 베르토프 Dziga Vertov는 영화가 시각예술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하고 흥분에 들뜬 어조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나는 하나의 눈이다. 하나의 기계적인 눈. 나, 기계는 단지 내가 볼 수 있는 방식으로만 세계를 너에게 보여 준다. 나는 앞으로 인간의 부동성으로부터 벗어날 것이다. 나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나는 대상에 가까이 다가가기도 멀어지기도 한다. 나는 추락하고 상승하는 육체와 함께 추락하거나 상승한다. 이것이 나, 기계다. 공간과 시간의 한계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대로 우주의 어떠한 점과도 연결될 수 있다. 나는 당신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를 설명한다. (1923) 


지가 베르토프는 스스로를 카메라의 눈으로 여기며 기계적인 눈이라는 뜻의 '키노 아이' 로 칭한다.  이때로 부터 리얼리즘적인 영화 미학이 탄생한다.


지가 베르토프의 이러한 선언은 카메라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하는 들뜬 발견이 잘 나타나 있다. 움직이는 영상이 보여주는 시각 경험은 원근법이 도달하지 못한 '신의 관점'으로 우리가 세계를 기계적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는 강한 열망이 담기게 되었던 것이다. 움직이는 영상이 나타난 이후 더 이상 하나의 장소에서 오직 하나의 시점에 머무르는 시각 경험이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베르토프는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달려 나가서 인상적인 순간순간들을 다양한 방식과 앵글로 촬영하고 편집하여 자신이 본 상황을 관객들이 보다 역동적으로 창의적인 시점으로 경험하기를 원했다. 베르토프의 낙관적인 예술적 선언이든 백남준의 주관적인 재해석이든지 간에 영상은 단지 사실의 재현이 아니라, 시점이나 다양한 경험적 요소들의 재구성이라는 변주 안에서 연출된다.

 

영상이란 기계적으로 창조되었거나 재생산되어 기록된 움직임이 있는 모든 운동-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영상의 요소는 기술적 발달, 이야기 구성의 관습적 전개(내러티브)와 함께 다양하게 구성되어 왔다.  단지 기계적으로 재생되는 움직이는 활동사진, 영화, 티브이로 한정적으로 사용되던 영상의 영역이 최근에 이르러 정지된 이미지를 포함하는 뉴미디어, 모바일, 인터액티브와 설치의 영역으로 그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이것은 다변화된 재생-유포 매체의 다변화의 영향이라고도 볼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재생산 재배포의 시각예술 환경에서 영상이 (관습적 의미를 지니는 회화나 이미지의 권위를 재고하게 하였고) 보다 독점적인 문화적 권위까지 지니게 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영상을 보는 시청자들은 그것이 단지 하나의 문자적 메시지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영상은 단지 내재적인 요소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영상은 의사소통이 가능한 교환적 의미 코드, 사회적 경험의 일부가 된다. 우리는 이것을 이른바 '영상언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문법으로 이루어지는 재현 방식, 코드나 스타일, 은유적인 암시들, 정보전달과 표현이 사회문화적 소통의 망 안에서 반응적으로 교환되는 것이다. 영상의 시각 경험 안에서 사회와 우리의 시선이 통합됨으로써, 우리는 곧 가시적 세계의 일부가 된다. 영상은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전적으로든, 혹은 그 질적인 의미로든 간에) 가장 강력한 '미디어'이다. 단지 영상신호의 기계적 전달만이 아닌 영상언어의 문화 사회적인 장을 형성하게 된다. 이것을 마샬 맥루한은 유명한 '미디어가 메시지이다'라는 한 문장으로 함축한다. 


영상언어의 몇 가지 요소들을 분리해서 살펴보고 이것의 기제들을 분석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고 나서 우리는 영상의 소비자가 아닌 재생산의 주체로서의 관점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내러티브                 

                                                            

초기의 영화는 단순한 한 가지 장면들을 촬영하여 관객들에게 상영하는 것이었다. 기차가 오는 장면을 큰 스크린으로 상영하는 동안 관객들이 이를 보고 혼비백산하여 장소를 빠져나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영화는 많은 미술적 실험을 바탕으로 해서 영상의 독특한 양식을 갖추고자 하였다. 그렇지만 영화는 연극, 문학의 영향을 토대로 하여 서사 예술의 기본 틀을 차용하기도 한다. 다양한 사건들이 시간 속에 걸쳐 일어나는 일련의 이야기들 구성하는 방식들, 즉 영상의 구성적인 기초를 내러티브라고 할 수 있다. 내러티브는 영화의 흐름을 이끄는 일차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특히 시간을 토대로 움직이는 이미지가 연속적인 흐름을 갖는 영상에는 관객들의 집중과 몰입을 가져오는 주요한 미적 기술적 요소가 된다. 


영상에서의 내러티브는 단지 사건의 개요나 연결뿐만 아니라 시각 경험도 아울러 활용된다는 측면에서 실제로 다양한 시각, 음성적 경험의 총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영상은 흥미롭게도 단 두 개의 연결된 이미지(컷) 만으로도 의미 있는 이야기를 부여할 수도 있다. 이것은 영상이 시각 이미지의 연결을 통해 의미가 파생되는 시각적 소통적 매체라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인물의 대사, 사건, 시간적 흐름이 하나의 결말로 향해 나아가는 단선적 스토리가 구성적 고조 안에서 긴장감 있게 전개된다. 내러티브는 영상에서 일종의 해석학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어떠한 사건이 재구성되는 방식을 따라가며 어떠한 관점으로 해석될 수 있는 가를 탐색하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사건의 흐름은 시간적인 지향성을 지니고 앞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전개에는 객관적 시간이 존재할 수도 있고 주관적인 시간이 존재할 수도 있다. 시간을 주관적으로 느낀다는 것은 우리가 일상에서도 경험하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컷 편집, 긴장을 통해서 일반적으로 영상에서 관객들을 심리적으로 시간에 '주관적인 경험'을 연출한다.  내러티브는 영상 기술적 구성을 통해서 행위나 사건의 이면을 시각적으로 조직화하고 경험에 의미 있는 해석을 부여하는 창조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플롯과 인과성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펄프픽션>에서는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선보이고 있다. 각기 다른 세편의 개별적인 스토리가 존재하면서 각각의 사건이 나름의 전개 결말을 지니고 있지만 이 세편의 단편들은 서로 관련을 맺거나 영향을 미치며 어긋나게 교차되고 있다. 이 영화는 기존의 서사적인 인과성을 파기한 색다른 경향으로 평가되고 있다. 내러티브는 이야기의 표면적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플롯이나 인과성이 짜임새 있게 전개되면서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효과적으로 전개시킬 수 있다. 우리가 짜임새라고 하는 것은 이야기 구성이나 개연성 있는 사건들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상호 간 연결되느냐를 이야기한다. 인과성은 주요한 심리적인 호소의 기제로 전통적 형식의 장르에서 활용되어 왔다.     



다큐멘터리와 스포츠 중계에서도 이러한 스토리적인 구성은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프리미어리그에서 과감한 클로즈업 샷, 초당 프레임 1/125 촬영에 의한 슬로비디오는 사실적 묘사 속에서도 극적인 순간을 연출한다. 상황에서 개연성 있는 인물의 집중이나 리액션 샷에는 이 사건을 주목할 만한 해프닝과 관련된 인물을 더욱 부각하며 시청자들에게 또 다른 에피소드를 연상하게 한다. 영상에서는 움직임이 동반되는 연출로 인해서 완전한 객관적 시간이나 사건의 연출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특히 전통적으로 장르적인 서사구조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에드거 알란 포 (Edgar Allan Poe)와 같이 심리 소설류의 영미문학의 전통이 강했던 미국의 풍토와 영화산업의 대중화는 심리적 반응을 유도하는 플롯을 토대로 발달해 왔다. 특히 히치코크는 점진적으로 심리적 고조를 강화시켜나가는 테크닉으로 영상을 구조화하고 양식화하여 현대적인 영화의 서사의 장르적인 틀을 완성시켰다. 반면에 표현주의나 리얼리즘 계열의 유럽의 영화들은 열린 형태의 서사, 즉 단선적 인과관계를 기초로 하는 이야기 전개보다는 관객들의 개입을 적극으로 유도하는 방식의 이야기 방식을 선호하였다. 영상 연출의 지향점이 다른 몇몇 작품들은 시퀀스에서의 사건 사이 인과성이 느슨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을 개연성의 결핍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모티브


마틴 스콜세이지 (Martin Scorsese) 감독의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서 로버트 드 니로는 뉴욕의 택시 운전사 트레비스로 등장한다. 그는 택시 운전사로 늘 바깥 풍경을 창을 통해 바라본다. 그는 늘 불만에 찬 논평을 보내지만 대부분 차 안에서 바깥세상을 바라볼 뿐이다. 백미러로 홀깃 쳐다보는 그의 행동은 비사교적인 그의 행동 패턴을 잘 나타낸다. 로버트 드 니로는 집에서 조차 늘 거울로 자신을 비추며 오로지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한다. 거울과 창은 이 영화의 주요한 시각적 모티브이다. 관객들은 이러한 실마리를 통해서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효과적인 연속성을 느끼면서도 주제를 좀 더 다각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게 된다. 거울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무한히 확장해 가지만 왜곡된 방식으로 설정해 가는 주인공의 강박적인 심상을 관객들은 효과적으로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예술적 표현으로 영상을 이야기할 때 모티브는 생각보다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모티브는 영상의 궁극적인 주제를 하나의 시각적 형태로 연관하여 수렴할 수 있는 조형적인 상징을 말한다. 모티브는 오브제(사물), 대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지만 인물, 풍경, 색감, 사운드가 될 수도 있다. 장르적인 내러티브가 뚜렷한 극영화에서 다소 모티브는 두드러지지 않을 수 있다. 영화 스타워즈에서는 사운드가 강한 모티브로 작동한다. 영화 음악가 존 윌리암스 (John Williams)의 행진곡 풍의 스타워즈의 테마는 미국식 도전정신과 진취적인 모험의 분위기를 잘 전달한다. 이 영화음악은 영화의 분위기를 전달하기도 하지만 60년대 미국 영화의 부흥기 클래식 영화의 과장된 오케스트라가 사용된 시기의 향수도 떠올려 주고 있다. 



빅토르 에리세 (Victor Erice)의 시적인 단편영화 <생명줄>에서 내란 직전의 스페인 시골 풍경을 묘사하면서 동그란 원형의 사물을 지속적으로 클로즈 업 한다. 전원의 목가적인 소리와 시계 소리들은 차분하게 들리면서 이 동그란 소품들은 시계를 암시하며 묘한 긴장감을 가중시키는 장치가 된다. 감독들은 이러한 조형적 모티브를 사용하여 관객들에게 창의적인 상징을 통하여 주제를 좀 더 미학적으로 그럴듯한 암시와 함께 전달하게 된다. 반복적 모티브는 영상의 다양한 요소들과 함께 단편적일 수 있는 단일화된 사건들을 훨씬 연속적으로 만들어 준다. 동시에 모티브는 영상이 좀 더 시적인 차원으로 표한할 수 있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많은 영상 제작가나 감독들이 인상적인 시각적 모티브를 활용한다는 사실을 살피며 영상을 보는 것은 확실히 영상의 또 다른 차원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영상의 내러티브는 서사 예술로서 시간 예술로서 영화의 일차적인 주요한 전달의 방식이다. 이것을 단지 이야기의 전달이라는 표면적인 과정에서 역할을 한다고 볼 수만은 없다. 영상의 전개과정은 말하자면 작가, 영상적 환영 (텍스트), 관객들이 공동의 반응을 통해 사회화된 양식 속에서 융합하여 일어나는 모든 소통의 과정을 이야기한다. 의사소통(커뮤니케이션)의 차원에서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보편적인 대중 미학의 요소를 동시에 획득하는 영상이 20세기 후반에 들어 더 의미 있는 스토리텔링 매체로 발전한 것에 우리는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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