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프레임의 태동과 전개
본다는 인간의 가장 일차적인 행위는 인간의 탄생, 혹은 생명의 탄생만큼 길고 오래된 것이다. 하나의 이미지를 본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는 그것을 단지 단편적인 정보로 이해하지 않는다. 그것에는 우리가 지닌 언어, 관습, 훈련된 인식을 종합적으로 활용하여 일종의 의미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 담겨 있다. 대상은 단지 대상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시각적으로 나눌만한 의미 작용과 환경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가공된 장면을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멈추어진 하나의 장면은 실제적인 일상의 삶의 경험 안에서만 다루어지지 않는다. 사진, 영상, 시각예술이라는 다양한 정보의 체계 안에서 비로소 우리에게 의미로 다가온다. 하나의 장면이 갖는 독특한 관습과 의미의 파생은 근대에서 기계적 발전 또는 회화에서 확립되어온 그러한 시각 언어의 '한 장면'으로서 멈추고 우리에게 제시되고 소화되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영상의 개념 탄생은 생각보다 꽤 오래되었다. 루이 자끄 망데 다게르 Louis Jacques Mande Daguerre가 개발한 최초의 사진기 다게레오타입이 발명되었을 때 조차도 거의 반나절에 걸쳐 촬영된 하나의 인물사진들은 오랜 시간 동안 기록된 일종의 영상적인 기록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확실히 이 시기 카메라들은 오랜 노출 시간으로 인해 (8시간에서 30분까지 노출시간이 줄어들긴 했지만) 확실히 셀프 카메라를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기에 적합한 방식은 아니었다. 감광판에 오랜 시간 동안 빛에 노출시켜 상을 얻었던 이 그림들은 놀라운 묘사가 담긴 정물을 그려냈다. 1839년 다게레오는 은이 도금된 동판에 영구적인 상을 기록하는 발전된 방식의 이미지 캡처를 만들고 이것에 다게레오타입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한다. 이러한 초기 카메라의 출현은 초상사진의 유행을 몰고 왔지만, 사실상 근대적 관점의 장면과 '움직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훨씬 이전부터 카메라 옵스큐라는 회화작가들의 보조적인 역할을 해 왔다. 암실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거꾸로 맺힌 상을 밑그림으로 토대로 스케치를 해 왔던 것이다. 서구의 회화작가들은 소실점이 있는 현실적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왔는데 이것이 말하자면 사실을 그대로 옮기는 영상을 만들어 내는 개념적 밑바탕이 되어왔다고도 할 수 있다. 인본주의적인 사조의 밑바탕에는 순전한 인간의 시점으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옮겨야 한다는 이른바 ‘사실주의’에 대한 탐구가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것이다. 인간의 상에 맺힌 구도를 근거로 세상을 개관적으로 분리하고 이해와 통제의 표상으로서, 회화는 원근법이라는 주체적인 방식의 시점 아래에서 적합한 권위를 지니게 된다. 이러한 관심과 탐구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장면을 포착하는 기술 발달로 인해 의미 있는 도약을 맞이하게 된다.
카메라 이외에도 당시에 독특한 인상을 선사했던 이미지 중의 하나는 아마 호쿠사이의 ‘파도’와도 같은 일본에서 건너온 목판화이다. 일본의 통속적인 목판화인 우키요에라고 하는 그림들은 프랑스로 건너와 당시 회화 작가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이 일본화들은 서구식 구도가 다소 섞인 일본식 단순 화법을 구사하고 있어 회화작가들은 ‘장면’에 대한 새로운 감각에 호기심을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우키요에는 일본 만화의 초기 면모를 보이기도 하는데, 애니메이션이나 현실적 풍경을 동작을 멈춘 듯한 사실적 장면으로 그려내는 일본인들의 관습이 담겨 있기도 하다. 인상파 화가들은 소실점에 의한 객체적인 대상이 아니라 현실이 그대로 멎어 우리에게 지각되는 순간적 인식이 담긴 장면으로서의 그림을 전개하는 계기를 삼게 된다.
카메라는 시간을 얼어붙게 만들고 따라서 실재성이 지각의 기술로 발전하여 확장되는 것을 촉발했다. 인상주의 작가들은 순간이 담긴 장면이라는 개념을 사진이나 우키요에 등 다양한 문화적 방식으로 터득하고 그것을 구체적인 지각 기술의 회화적 방식으로 카메라와 보조를 맞추고자 했던 것이다. 인상주의의 개척자인 마네의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회화작가들은 더 이상 원근법에 충실한 시점을 따르지 않고 빛과 주관적 시점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화면을 다소 평평하게 구성하고 있다. 미세한 묘사에서 뒤질 수밖에 없는 당시의 그림들은 회화가 지닌 작가의 주관적 시점을 오히려 부각하여 회화의 평면적 조건을 더욱 명시적으로 확립한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최초의 전시회가 초기의 사진 스튜디오에서 열렸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마네의 그림은 그 당시 원근법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평평하게 인쇄된 그림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현대적으로는 훨씬 생동감 있고 사실적인 구성과 시점을 제대로 포착하고 있다.
쇠라는 단지 색의 기본 요소들 뿐만 아니라 빛의 요소들까지 감안하여 픽셀과 같은 역할을 하는 점묘 화법을 개발했다. 초기 인상파 그림들의 즉각적인 빛의 포착을 위해 희생해야 했던 세부묘사를 쇠라는 좀 더 체계적인 방식으로 보완했다. 픽셀과 비슷한 개념의 개별적인 단위의 색점들을 분리 화법으로 찍어서 형태를 손상하지 않으면서도 빛을 통한 색의 배합이 자연스럽게 관객들에게 인식되도록 했다. 이것은 사물에 빛이 반사되에 망막에 맺히는 방식을 그림에 담기 위해 애쓴 것이다. 이는 과학적인 빛의 요소인 RGB를 토대로 하는 모니터의 구성 원리와도 비슷한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상파 작가들이 사진의 구체적인 사실성과는 또 다른 장면의 시각적인 확장을 추구하기 위한 근대적인 지향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인상적이다 -라고 하는 표현은 사실 그 당시 굉장히 체계적인 지각 원리를 탐구했었던 인상주의 화가들에게는 걸맞지 않은 표현이라는 해야 할 것이다.
최초의 움직이는 연속장면은 머이브리지의 실험적인 특수촬영에 의해 시각적으로 구현된다. 에드워드 머이브리지 Eadweard Muybridge는 달리는 말이 앞으로 달려 나갈 때 12대의 카메라로 동작마다 촬영하여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1879년) 이전 회화에서 보이곤 했던 말이 달릴 때의 동작이 아니라 모두가 깜짝 놀라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머이브리지의 사진들이 슬라이드 환등기로 연속적으로 상영되자 비로소 사람들은 회화적 관습이 카메라 기술이 묘사하는 물리적인 현실감을 능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는다. 이러한 연속 동작을 담은 머이브리지의 사진은 최초의 무빙 이미지의 개념적 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영상 이미지의 출현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고자 했던 당시 수많은 회화 작가들에게도 또 다른 방식의 현실 묘사에 관해 도전적인 각성을 주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머이브릿지는 에티엔 쥘 마레 Etienne Jules Marey와 의 협력 작업을 통해 곧 동물 관찰을 위해 연속적 움직임을 동시적으로 한 화면 안에 잡아내는 것을 성공한다.
이러한 연속동작 이미지에 민감하게 반응을 보인 작가 중의 한 명은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이다. 그는 계단을 내려오는 자신의 연속동작 사진을 찍고는 이를 회화로 작업한다. 그는‘계단을 내려오는 나부’(1929)라는 우아한 제목을 붙인 작품에서 형태를 알 수 없는 연속 동작을 하는 조금은 기괴한 인체를 선보였다. 이 그림은 다중 시점의 운동 이미지를 하나의 프레임에 표현함으로써 동적 운동이 시간을 두고 앞으로 나아가는 효과를 한 프레임으로 표현하였던 것이다. 인간의 육체를 뒤섞은 듯한 이러한 묘사들은 기계적인 성격을 띠는 오브제로 인체를 묘사하는 그 시기 작가들의 주요한 관심사가 반영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마도 20세기 초반 기계적 특성과 유기체가 결합되는 형태는 전쟁이나 발전에서 오는 시대적인 소외나 불안을 담은 자연스러운 표현들 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그림에서 보이는 시점은 미래주의와 입체파 회화에 영향을 주고 현대미술의 근간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현대미술의 복잡해 보이기만 하는 양상에는 칭찬을 해야 할지 불만을 토로해야 할지는 솔직히 결정이 어려운 부분이다.)
안타깝지만 격정적인 한 장면을 예로 들어 보자. 보도사진은 그 자체로 가장 객관적인 관찰이나 찰나의 포착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 안에도 사진과 회화, 예술적 관습이 포함된다. 정지되고 멎어있는 이 사진 속에는 앞으로 시간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하나의 운동 이미지 - 즉 마르셀 뒤샹이 일찍이 포착했던 육체가 시간 속에 존재하게 되는 어쩌면 거룩한 운동의 에너지가 숨겨져 있다. 사람들의 연속적으로 에너지를 쏟아붓는 동작들은 수평, 수직으로 뻗은 건물들의 차갑고 냉랭한 선들과 미묘한 긴장 속에서 대조되고 있다. 하나의 장면은 그 자체로 멈춘 하나의 상징적 제시가 되어서 우리에게 언어보다 감각적이고도 무의식적이지만 더욱 강렬한 의미부여의 역할을 이행한다.
카메라의 발견은 현실의 연속적인 특성을 포착하여 원근법적 시점 안에서 진리적 특성을 드러내는 회화의 경향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짧은 순간적 사실, 즉 장면 frame이라는 개념을 현대인들은 인식하기 시작하였고 이것은 1/24초의 짧은 순간 안에 '기록될 수 있는 현실'이었다. 주체와 대상의 엄중한 분리보다는 도처에 존재하게 되는 시점과 빛의 다양한 분해와 반사는 우리에게 세계를 보다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열망을 주게 되었던 것이다. 카메라와 이것이 포착하는 이미지에 반응해 왔던 회화는 어쩌면 시간성을 나름의 방식으로 포착하고자 하는 실험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조지 이스트만의 감광롤에 이미지가 포착되는 진정한 의미의 사진기의 발명 (1888) 훨씬 이전에, 사실상 무빙 이미지를 담기 위한 영상이라는 개념은 충분히 무르익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