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t n Money in New York Jan 21. 2024

[100 챌린지] 단지의 독서노트_27

칼라

과학드림의 이상하게 빠져드는 과학책

읽다 보면 저절로 똑똑해지는 과학 이야기

저자 김정훈(과학드림)

출판 더퀘스트

발행 2022.05.20.

문어의 피부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표면에 ‘크로마토포어Chromatophore’라는 3가지 색소 주머니가 각각 분포한다. 검은색, 빨간색, 노란색 염료로 찬 풍선 같은 이 색소 주머니는 근육으로 둘러싸여 있다. 문어는 필요한 색을 표현할 때 해당 염료가 든 색소 주머니를 늘린다. 마치 염료가 들어찬 풍선을 부풀리면 염료의 색이 드러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문어는 이 색소 주머니들을 늘렸다 줄였다 하며 줄무늬나 반점 같은 패턴을 만들어 색깔을 바꾼다.

그리고 검은색, 빨간색, 노란색 이외의 색을 만들 때는 크로마토포어 밑에 분포한 홍색소포를 이용한다. 이곳에 분포한 ‘리플렉틴Reflectin’이란 단백질이 특정 파장의 빛을 산란하는 방식으로 파란색이나 초록색 같은 금속성 구조색(수컷 공작새나 나비 날개에서 보이는 것처럼 물리적 구조가 빛에 영향을 미쳐 만들어지는 색)을 띨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피부 가장 안쪽에 분포한 ‘르코포어스Leucophores’라는 세포층에서는 대부분의 빛을 반사해 흰색도 만들 수 있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피부를 둘러싼 돌기들은 시시각각 울룩불룩하게 변하면서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질감을 표현할 수 있다.

이렇듯 문어의 변화무쌍함은 앞서 얘기한 4가지 세포와 조직의 절묘한 조화에서 비롯된다. 그 변화무쌍함이 어느 정도냐 하면 미국 해양과학자 로저 핸런Roger Hanlon은 문어가 1시간 동안 무려 177번이나 색을 바꿀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런 변장술 덕분에 이들은 껍데기라는 보호 장비 없이 지구 바다 전역에 분포하는 성공적인 연체동물로 자리매김했다.

돌기 : 시시각각 울룩불룩하게 변하면서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질감 표현

크로마토포어 : 검은색, 빨간색, 노란색의 염료로 찬 색소 주머니

홍색소포 : 리플렉틴이란 단백질이 있어 특정 파장의 빛을 산란

르코포어스 : 대부분의 빛을 반사시켜 흰색을 만드는 세포 조직

 문어는 다리에 뇌가 있다?!

그런데 과학자들에게 한 가지 고민거리가 있었다. 문어는 색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색맹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떻게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이와 거의 똑같은 색으로 몸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꽤 최근인 2015년에야 찾았다. 매사추세츠주립대의 동물행동학자 데스몬드 라미레즈Desmond Ramirez 박사는 문어는 눈뿐 아니라 피부로도 세상을 감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캘리포니아 두점박이문어의 피부 조직만 떼어다가 실험했는데, 빛의 밝기에 따라 문어의 피부 색소 주머니의 크기가 변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데 성공했다. 라미레즈 박사는 문어가 뇌나 중추신경계를 거치지 않고 피부에 있는 광수용체만으로 빠르게 색(빛)을 감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문어의 피부에서 눈의 망막세포에서 발견되는 ‘옵신’과 ‘로돕신’이란 단백질을 발견했다. 이 역시 문어가 피부로 세상을 감지한다는 증거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피부로 빛과 색을 감지한다니, 정말 기묘해도 이렇게 기묘한 동물이 없다.

이후 문어의 신경계에 대한 연구가 급물살을 타면서 학계에서는 놀라운 연구 결과들이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먼저 문어의 몸에는 5억 개의 뉴런이 있는데, 이는 같은 연체동물인 달팽이보다 무려 2만 5,000배 많은 수치다. 고양이보다 2배 많고, 개와는 비슷하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놀라운 건 문어의 5억 개 뉴런 중 약 3분 1만이 뇌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나머지 뉴런의 대부분은 8개의 다리에 분포해 있다.

워싱턴대의 행동신경학 연구자 도미니크 시비틸리Dominic Sivitilli는 2019년에 열린 〈우주생물학 콘퍼런스AbSciCon 2019〉에서 문어가 음식을 찾을 때 뇌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개의 발이 독립적으로 상황을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뇌가 작아도 다른 동물에 비해 뛰어난 인지 능력과 학습 능력을 지닐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만약 지적 외계 생명체가 있다면 인간이 아닌 문어처럼 색다른 방식의 인지 체계를 갖추고 있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같은 맥락으로 호주 퀸즐랜드대의 청 웬성Wen-Sung Chung 박사는 문어 같은 두족류에서 지능의 ‘수렴진화’를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쥐와 새가 계통은 다르지만 서로 독립적으로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를 진화시킨 것(수렴진화)처럼 척추동물과 무척추동물 역시 계통은 다르지만 한쪽에서는 인간이란 종이 지능을 갖고, 다른 한쪽에서는 문어(두족류 포함)란 녀석이 지능을 갖는 수렴진화가 일어났다는 주장이다. 실제 문어의 지능은 무척추동물 중 가히 독보적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문어가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1963년 보라문어의 빨판에서 고깔해파리의 촉수가 발견됐다. 이를 근거로 보라문어가 고깔해파리의 촉수를 훔쳐 공격이나 방어용 도구로 사용한다는 논문이 발표된 바 있다. 최근에는 코코넛문어가 도구를 사용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들은 코코넛 껍데기를 들고 다니다가 마땅한 피난처가 없을 때 코코넛 껍데기에 들어가 숨는다. 코코넛이 없을 때는 버려진 플라스틱을 이용하기도 한다.

코코넛문어는 위장용으로 사용할 코코넛 껍데기를 들고 다닌다.

해양동물학자 줄리안 핀Julian K. Finn 박사는 문어의 도구 사용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대비나 예측이 수반된 지능적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또 문어가 병뚜껑을 여는 행동을 관찰했다는 연구도 자주 나온다. 실제 2018년 《네이처》에는 인간의 고도화된 뇌가 사회적 협동이 아니라 먹이를 찾고 가공하고, 천적을 피하려는 아주 기본적인 생존 활동에서 진화했다는 ‘생태적 지능 가설’에 대한 논문이 게재되기도 했다. 흥미로운 건 문어가 조직이나 사회를 이루지 않는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지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이게 왜 흥미로울까? 그동안 지능의 기원을 논할 때 사회적 지능 가설이 큰 축을 이뤘기 때문이다. 이 가설은 인간이나 침팬지처럼 일정 수준 이상의 지능을 갖춘 동물에게 적용된다. 예를 들어 과거 인류의 조상은 무리를 이뤄 서로 협력하기 시작하면서 복잡한 사고를 하게 됐고, 이를 발판으로 더 크고 정교한 뇌를 가졌다는 주장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100 챌린지] 단지의 독서노트_2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