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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 n Money in New York Jan 24. 2024

[100 챌린지] 단지의 리딩노트_32

난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이 좋더라

히트의 탄생

대한민국 브랜드 100년 분투기

저자 유승재

출판 위즈덤하우스

발행 2021.09.30.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화장품 브랜드로 박가분을 다뤘지만, 우리나라 근대 화장품 브랜드의 역사는 ‘태평양’의 역사다. 태평양은 ‘아모레, 마몽드, 라네즈, 헤라, 아이오페, 설화수’ 등 수많은 메가 히트 브랜드를 내며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글로벌 뷰티 기업으로 성장한 ‘아모레퍼시픽’의 옛 이름이다.

브랜드로서 ‘아모레’는 1964년에 태어났지만, 모 회사인 태평양은 약 20년 전인 1945년 9월에 시작했다. 하지만 기업사 관점에서 실제 모체는 1932년에 세워진 ‘창성상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박가분이 한창 인기를 얻고 있던 1930년대, 태평양 창업주 서성환 회장의 모친인 윤독정은 개성에서 동백기름을 제조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원시적 형태의 가내수공업 수준이었지만 차츰 인기를 얻으며 미안수(스킨로션), 크림(크림), 가루분(백분) 등으로 품목을 늘려가며 이내 직접 판매상점을 차리고 ‘창성상점’이라 이름을 붙였다. 상점이라 했지만 제품 생산자 명칭으로도 창성을 사용했다. 보통학교 졸업 후 어머니의 사업을 돕던 서성환은 해방과 함께 사업을 물려받아 ‘태평양화학공업사’를 창립하며 본격 근대 기업의 길을 걷게 되었다.

태평양의 1호 브랜드는 1948년 출시한 ‘멜로디’였다. 그 당시 포마드·크림·로션 등을 생산했는데 그중에 크림이 가장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제대로 사업이 자리를 잡기도 전에 한국전쟁이 시작되었고, 오히려 전쟁을 피해 내려간 부산에서 오늘날 태평양의 초석을 만든 히트 브랜드, ‘ABC포마드’를 만든다. 당시 시대적 흐름을 잘 읽어내 성공한 경우였다. 해방과 함께 일제강점기에 강요받던 군인 스타일의 빡빡머리가 가고 머리를 기를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그리고 양복이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머리를 가다듬어야 할 일도 늘어났다. 이후 젊은 남성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머리에 멋을 내기 시작하면서 1930년대 이후로 자취를 감췄던 포마드 시장이 되살아난 것이다.

ABC포마드는 바셀린이 아닌 식물성 원료인 파자마유를 사용해 기존 포마드를 사용할 때의 단점인 빳빳한 머릿결이나 번들거림을 줄이고 수입산 향료를 사용해 불쾌한 향을 줄이는 등 품질 면에서도 다른 제품보다 앞섰기에 큰 인기를 누렸다. 현재 아모레퍼시픽 사사社史에는 “부산에서 열차로 보낸 제품이 서울역 집하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도매상들에 의해 그 자리에서 모두 인수돼 따로 물류창고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포마드에 이어 크림까지 잇달아 성공하면서 부산 피난 기간이 태평양에게는 큰 사업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ABC포마드 등 당시 헤어 제품들: 바셀린이 아닌 식물성 원료인 파자마유를 사용해 빳빳한 머릿결과 번들거림을 줄이고 수입산 향료를 더해 좋은 품질로 인기를 누렸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전쟁이 끝난 후 서울로 올라온 태평양은 전 직원이 30명 정도인 상황에서도 연구소를 설립하고 신제품 연구와 품질개선에 공을 들인다. 1959년에는 프랑스 ‘코티’와 제휴를 맺고 ‘코티분백분’을 출시했다. 1960년대를 살았던 우리 할머니 세대에게는 코티가 곧 분이나 파우더를 지칭할 정도로 국내 화장품 시장을 평정했는데, 그 덕에 하도 모조품이 많아 누가 진짜 상품을 쓰는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아모레아줌마’로 일궈낸 성공시대

1960년대는 오늘날 태평양의 이름이 된 ‘아모레’가 탄생한 시기다. 아모레 출시는 우리나라 화장품 산업을 대표하는 브랜드의 출발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태평양을 오늘날 화장품 제국으로 만든 새로운 유통구조를 구축했다는 측면에서도 의의가 크다. 제조사-도매상-소매상-소비자로 이어지는 기본적 상품판매 흐름은 어쩔 수 없이 도매상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태평양은 아모레 이전에 1962년 ‘오스카’라는 브랜드를 내면서 지정판매점 제도를 실시한 바 있다.

소매점과 직접 거래함으로써 유통단계를 줄이고 모조품을 방지할 수 있는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계를 드러낸다. 지정판매점이 태평양의 화장품만 취급하는 전문점이라면 좋겠으나 원래의 본업이 따로 있는 가게들이었기에 화장품에 대한 지식이나 고객서비스에 한계가 있었을 뿐 아니라 화장품 판매가 뒷전으로 밀리게 마련이었다. 독자적으로 구축한 유통방식이었지만 개선이 필요했다.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당시 막 시작되던 방문판매였다. 새로운 유통경로에 힘을 싣기 위해 방문판매를 위한 신제품을 기획했고, 아모레가 이 제품 라인의 브랜드로 낙점되었다. 말하자면 아모레는 새로운 유통환경에 맞춘 신무기였던 셈이다. 아모레는 1964년 9월에 상표등록을 마치고 새로운 유통정책과 함께 바로 출시되었다.

태평양을 대표하게 된 방문판매 방식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었다. 화장품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춘 판매원은 고객을 직접 만나 상품정보나 화장법, 유행하는 트렌드 등을 전달하며 소비자들과 친밀감을 쌓았고 상품판매는 물론 각종 애프터서비스와 불만사항접수 등 고객소통 창구 역할까지 도맡았다. 소비자 역시 집에서 편하게 상품을 구매하는 장점 외에도 외상거래도 가능했을 뿐 아니라, 단골 관계를 맺게 되면서 가짜 상품이나 바가지 등 심리적 위협에서 벗어나 안심하고 상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 게다가 1960년대 아직 경제활동 참여 기회가 제한적이었던 여성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크게 확대하는 사회ㆍ경제적 영향까지 미치게 되었다.

‘아모레아줌마’라고도 불리던 방문판매원은 1980년대 후반 전문점 시대가 열리기까지 태평양이 국내 화장품 업계를 선두에서 이끌 수 있도록 만든 대표상품이 되었다. 방판 브랜드 아모레는 점진적으로 태평양을 대표하는 하우스 브랜드로 성장하면서 그 하위에 다양한 브랜드를 거느리게 된다. 조금 의외지만, 태평양과 아모레의 성장에는 《향장》이라는 미용정보 매거진의 도움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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