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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 n Money in New York Feb 14. 2024

[100 챌린지] 단지의 독서노트_64

브랜딩

브랜드로부터 배웁니다

일에 대한 관점도, 삶을 위한 태도도

저자 김도영

출판 위즈덤하우스

발행 2023.01.26.

    01 그 자체로 충분히 훌륭하다는 것 - 네스프레소 Nespresso

    02 맥락 위에 존재한다는 것 - 발뮤다 BALMUDA

    03 자기 언어를 가진다는 것 - 애플 APPLE

    04 이야기를 가꾼다는 것 - 테드 TED

    05 아이덴티티를 숙성한다는 것 - 뵈브 클리코 Veuve Clicquot

    06 시퀀스를 만든다는 것 - 안테룸 호텔 교토 Hotel Anteroom Kyoto

    07 생각을 렌더링 한다는 것 - 픽사 Pixar

    08 아이콘이 된다는 것 - 컨버스 CONVERSE

    09 형태가 본질을 완성한다는 것 - 뱅 앤 올룹슨 BANG & OLUFSEN

    10 기대를 설계한다는 것 - 조던 JORDAN

더 놀라운 건 따로 있습니다. 바로 발뮤다의 제품 기획 방식이죠. 테라오 겐은 시장 조사를 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한 인물입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스스로 갖고 싶은 물건을 집요하게 상상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게 그의 신념이거든요. 물론 이런 발언을 테라오 겐만 한 것은 아닙니다. 과거 스티브 잡스도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른다”라고 했고 헨리 포드 역시 “대중에게 물어봤다면 자동차가 아닌 더 빠른 마차를 만들어달라고 했을 것”이라고 했으니까요. 혁신이란 더 나음이 아닌 완전한 새로움이라는 걸 일깨워주는 중요한 대목이죠.

하지만 조금 이상한 게 있습니다. 자동차 공정의 혁신을 이룩한 포드나 아이폰을 내놓은 애플과는 다르게 발뮤다는 늘 이미 존재하는 산업 속에서 자신들의 제품을 만들거든요. 아니 정확히는 모두가 흥미를 잃어가는 분야만 골라 파고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 정도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생활가전 시장은 이미 극포화 상태를 맞이한 지 20년이 훌쩍 넘는 산업군이니까 말이죠. 이런 치열하다 못해 피가 튀는 경쟁 구도 속에서 시장 조사도 하지 않고 고객의 소리도 듣지 않은 채 제품을 만든다는 건 무모해도 한참 무모해 보이는 결정일 수밖에 없는데도 발뮤다의 제품들은 늘 팬들로부터 열광적인 찬사를 받습니다.

더 신기한 건 발뮤다 마니아나 예찬론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 호감을 갖고 들여다보게 만드는 그 특유의 끌어당김을 가진 브랜드라는 사실이죠. 많은 사람이 긍정의 안테나를 켜둘 수 있도록 하는 셈입니다.

대체 발뮤다는 어떻게 이런 이율배반적인 상황에서 반전을 일으킬 수 있는 걸까요? 저는 그 이유가 ‘맥락’을 이해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발뮤다는 디자인, 기능, 경험 등 제품이 줄 수 있는 모든 측면에서 이 맥락을 참 잘 파악하고 있는 브랜드거든요. 하나의 멋진 조각품 같은 외형을 지니고 있지만 모든 공간 안에 완벽히 녹아드는 디자인을 선보이고, 무작정 경쟁자보다 더 뛰어난 기술을 가지려 하기보다는 본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느낌을 구현하는 용도로써 기능을 설계하기 때문입니다. 저 머나먼 우주에 새로운 점 하나를 찍는 식의 발명 대신 늘 존재해 왔던 우리 생활 속에서 자신들의 의미를 증명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러니 테라오 겐은 고객 조사나 시장 조사는 하지 않을지 몰라도 시대의 맥락에 대한 조사만큼은 누구보다 철저하게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볼륨 조절 버튼처럼 생긴 타이머를 작동시키면 째깍째깍 하는 아날로그 사운드가 이어지고 빵이 완성되면 가볍고 상쾌한 종소리가 울리는데요. 실제로 제품 기획을 맡은 발뮤다의 와다 사토시 Wada Satoshi는 이 사운드를 설계할 때 ‘피아트 친퀘첸토’ 자동차의 방향 지시등 소리를 오마주 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빵이 구워지기를 기다리는 그 시간까지 디자인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네요.

언젠가 책에서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고방식을 구분하는 가장 큰 기준이 ‘관계성’이라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거든요. 서양 사람들이 ‘나’라는 존재 자체에 몰두해 세상을 바라보는 반면 동양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라는 관계 속에서 세상을 이해하려 했다고 하더라고요. 나쁘게 말하면 지나치게 주의를 의식하고 눈치 보는 경향이 있는 것이지만, 좋은 점에 주목해서 보면 이 땅 위에 그 무엇도 홀로 존재하는 건 없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은 결과이기도 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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