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와 화가

술과 함께한 화가들

by Art n Money in New York

요즘 젊은이들은 집에서 혼술을 즐긴다. 부어라 마셔라 직장 상사나 선배의 눈치를 보며 원샷을 때리는 장면은 드라마에서나 재현될 뿐이다. 대신 집이 크던 작던간에 홈바를 멋지게 꾸며놓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면서 고급 와인이나 위스키를 즐긴다고 한다. 한국의 프리미엄 소수나 전통주를 일부러 찾기도 하고 지역의 독특한 맥주를 찾아 컬렉팅 하기도 한다고 한다. 덕분에 동네 편의점에서는 와인과 더불어 위스키가 효자 상품으로 떠올랐다.


화가의 작품 속에는 술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인상파 화가들의 홈 그라운드였던 몽마르트르에는 가난한 화가와 글 작가들이 모여 밤새 술을 마시고 토론을 벌이곤 했는데 그때 그들이 자주 마셨던 술이 ‘압생트’라는 술이다. ‘압생트’는 쑥과 살구 씨 등으로 만든 독특한 맛과 향을 지닌 술이다. 초록빛깔을 띄며 알코올 도수가 45도에서 85도에 이르는 아주 독한 술이기도 하고 많이 마시면 환각증세까지 일으키기도 하는 어쩌면 위험한 술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난했던 예술가와 노동자들에게 하루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이 압생트가 그 무엇보다도 절실했을 것이다. 반고흐의 그림이 유난히 초록빛릉 띄는 이유가 바로 이 압생트 때문이다.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유일하게 돈 걱정이 없었던 툴루즈 로트렉 또한 물랑루주의 무희들을 바라보며 압생트를 마셨는데 반 고흐와 친해져 그를 금전적으로 도와주기도 하였다. 그는 고급 위스키도 즐겨 마시곤 했는데 집안은 부유했지만 난쟁이로 태어나 편견과 불편함 속에서 살았던 그에게 술은 큰 위로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너무 취했던 탓에 알코올 중독으로 치료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툴루즈 로트렉

화가의 대명사 파블로 피카소 또한 초록마녀 압생트와 아주 친했다. 무명시절 청년 피카소도 외롭고 추웠다. 그의 젊은 시절 작품들은 유난히 청색을 띄어 청색시대라고 부르는데 이 원인이 압생트를 많이 마셨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다. 이렇게 그 시절 파리의 뒷골목은 가난했지만 낭만적이었고 모두 취해있었지만 예술로 가득했다. 이런 그들에게 한잔의 위로가 되었던 독한 압생트는 아직도 그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고 있다.

에드가 드가

위스키의 증류기술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십자군 전쟁 때 아라비아 인을 통해 유럽으로 넘어왔다고 알려져 있다. 와인과 마찬가지로 술은 성직자들에 의해서만 제조되었지만 헨리 8세의 이혼문제로 교회가 폐쇄되자 뿔뿔이 흩어진 위스키 기술가들이 민가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8세기에 들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합병되면서 몰트세가 붙기 시작하였다. 몰트는 위스키 제조의 핵심 원료인데 이에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하니 증류 업자들은 산속에 들어가 밀주를 하기 시작했다. 19세기 이후 새로운 조세법이 통과되면서 위스키는 다시 양지로 나올 수 있었는데 음지에 있었던 시간 동안에 자연거조나 보관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연구하다 보니 피트라는 재료와 쉐리 오크통 등을 사용하여 위스키 특유의 호박빛과 향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한편 합정에는 ‘서양 미술사’라는 카페가 있었다.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이곳에는 서점처럼 미술에 관한 많은 책들을 접할 수가 있었다고 하는데 커피나 술을 마시며 책을 보거나 음악을 즐기는 예술가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커피를 팔아 합정의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 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몽마르트르의 예술가처럼 낭만을 즐길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내 취향에 맞게 만든 홈 바에서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며 혼자 위스키 온더 락을 들이키는 것일까?


Dan 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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