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4
마음으로 사는 갠지스 사람들
Baranasi, India, 변종모
그 꽃은 어디서 온 것이냐 물었다. 그녀는 말없이 웃는다. 그 꽃은 어디에서 살 수가 있냐고 다시 물었다. 꽃물든 손끝으로 가리키는 곳은 혼잡한 골목의 끝. 저 골목 끝에 꽃이 있냐고 묻자, "저 골목의 끝, 야채 시장 뒤편에 아주 큰 꽃시장이 있어요." 하며 수줍은 봄꽃처럼 또 웃었다.
이렇게 수많은 꽃들이 어디서 자꾸만 나오는지 궁금해 물어본 것이 이유가 되어, 나는 꽃시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검고 칙칙한 골목에 앉아 잠시만 기다려도 꽃의 행렬을 쉽게 발견할 수가 있었지만, 나는 꽃의 출처를 따라 새로운 여행을 한다. 사람을 따라서 꽃이 가는 곳은 작은 사원이기도 하고 집안의 재단이기도 할 것이며 대부분은 갠지스 강가로 갈 것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외에도 꽃은 얼마든지 발견된다. 현관문 앞에도, 곱게 땋은 머리에도, 자동차 위에도 꽃은 어디에서나 흔하게 피어났다. 바라나시뿐 아니라 인도 어디에서든 그렇지만 흔하고 흔한 것이다. 꽃을 가까이에 두고 꽃과 함께 꽃처럼 사는 사람들. 그것은 결국 먹고사는 일보다 마음을 위로하며 사는 일이 먼저였기 때문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덕분에 어두운 골목을 따라가던 낯선 마음이 환해진다.
워낙 실타래 같이 얽혀있는 골목이라 그곳은 쉽게 나타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꽃시장으로 가는 것은 의외로 쉬웠다. 그녀가 가리키는 그곳으로 가는 동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꽃을 들고 있었다. 마치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이정표처럼 발견되는 꽃송이들. 복잡한 인파 속에서도 향기가 나던 곳. 바라나시의 시장 안쪽 깊숙한 곳에 그렇게 펼쳐져 있었다. 나는 왜 이곳을 이제야 발견하게 되었을까? 자주 바라나시를 들락거리는 동안에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억울했다. 늘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살았으며, 보이는 것만 믿으며 사는 동안 주변의 아름다운 것들을 나는 또 얼마나 많이 지나쳤을까?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꽃이었고, 꽃이 사람들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계절에 피어나는 온갖 꽃들이 만발한 시장엔 많은 사람들의 풍경 자체가 어느 아름다운 들판처럼 경이롭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이 아닌 신에게 바칠 꽃을 만나고 있었다. 나 아닌 다른 대상을 위해 아름다운 것을 준비하는 마음, 그 마음 하나로 이미 그들은 꽃이라 여겨졌다. 신과 꽃을 주고받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삶. 결국 베푸는 것이 자신을 위한 길이라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 그곳에 서고 보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왜 그들이 처음 보는 나에게도 그리 환하게 웃는지, 왜 그들은 말없이도 향기로운지, 왜 그리 다정한지. 때로는 거칠고 험한 마음이 되었다가도 이내 아무렇지 않게 순해지는지를. 팍팍하고 지친 삶 속에서도 놓지 않는 꽃 한 송이. 그들의 얼굴에 그려진 선한 인상이 얼핏 꽃을 닮았다. 그 마음이 꽃이다. 깊은 골목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의 꽃과 같은 사람들. 나도 잠시 그들 곁에서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꽃 한 송이를 샀다.
"이 꽃을 갠지스 강가에 띄우세요! 그리고 당신의 소원을 빌어요! 그러면 언젠가는 소원이 이루어지게 될 겁니다." 붉은 꽃을 팔던 검은 얼굴의 사내가 하얗게 웃으며 내게 꽃을 안겼다. 이른 새벽, 동이 트기 전부터 뜨겁게 강으로 침몰하는 시간까지. 아니, 별들이 꽃잎처럼 수면 위로 떠오르는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강가로 몰려들었다. 나도 그들처럼 꽃을 들고 강으로 왔다. 대부분의 인도 사람들이 죽기 전까지 꼭 한 번은 이 강가에 닿고 싶어 하거나 죽어서라도 이곳에 뿌려지길 원하는 이유로, 매일매일 갠지스는 수많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 마음들 하나하나가 강물보다 깊고, 그 정성이 강물보다 길게 흐른다.
이른 새벽의 싱그러운 꽃향기처럼 물안개가 번졌다. 강물에 발을 담근 사람들은 마음속에 깊은 물길을 내듯 침묵으로 기도를 하고, 한 움큼의 강물을 이마에 적시며 맑은 정신으로 꽃을 떠나보낸다. 마치 자신의 어느 한 부분을 잘라내듯 꽃을 떠나보낸다. 붉은 꽃잎이 강물 위로 흔들린다. 주인을 떠난 꽃은 제 몸이 스스로 가벼워 험난한 물길 위에도 가라앉지 않고 흐른다. 바람이 밀고 물결이 옮겨주는 곳으로 그렇게 시간과 동행한다. 순하고 부드럽게 그리고 유연하게 흔들리며 자신에게 맡겨진 마음이 가라앉지 않게, 마침내 그곳에 닿을 것이다. 가볍게 살다가 가벼운 채로 사라져 간 것들을 나는 아름다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꽃은 한 번도 누군가에게 무거운 짐이었던 적이 없다. 작은 씨앗으로 침묵하다 어느 날 가벼운 몸으로 태어나 한동안 흔들리고 부대끼며 스스로 아름답고 숭고하게 살기를 자처했다. 그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많은 것을 선사했을 것이다. 꽃은 씨앗을 남기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향기를 남긴다. 그들은 그런 꽃을 신에게 바치고 자신의 남은 삶을 위해 또는 가족과 그 이상의 많은 것의 안녕을 바란다. 그들도 꽃처럼 살다가 꽃과 같이 남길 것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지는 어느 날, 여기 이 강가에서 꽃잎처럼 떠나길 바랄 것이다. 꽃은 사람과 신을 이어주는 아름다운 마음의 표상. 잠시 내 마음을 꽃과 바꾸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다면 그들의 신도 그것을 허락하리라.
꽃과 같은 그대들의 곁에서 나도 기도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단 한 번이라도 꽃이 되어 본 적이 있었던가! 욕망 가득한 나의 삶인데 그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만약 그렇다면 나도 꽃이 되어 잠시 그들처럼 소박하고 아름답게 살다가, 어느 생에 다시 또 꽃으로 피어나길 기도한다. 고단하고 지친 삶에도 가슴 속 꽃 한 송이를 품고 살아가는 그대들의 뒷모습에 나는 얼마나 큰 용기를 얻었는지. 그대들의 가슴 속에 핀 한 송이의 꽃을 본 후, 그것이 내게 얼마나 큰 아름다운 위로였는지. 그대는 자꾸만 아름다운 향기를 피우면서도 내게 아무것도 준 적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이미 그것에 취해 많은 것을 받았으므로. 감사의 마음으로 나도 나 아닌 당신들을 위해 오래오래 기도하겠노라고 강물에 꽃을 띄운다.
나도 잠시 그렇게 강가에 서서 누군가의 꽃이 되고 싶었다.
글 | 변종모
사진 | 변종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