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RAVEL Vol.19
케이채
사람에 이끌려 여행을 합니다. 세상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 속의 풍광들이 저를 이끌지만 저를 가장 설레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사람입니다. 유명한 관광지보다 사람들의 꾸밈없는 표정을 만날 수 있는 장소야말로 거리 사진가인 저에게는 더 매력적이며 또 갈구할 수 밖에 없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런 장소는 세계 어디를 가도 있습니다. 또 하나 분명한 게 있습니다. 당신이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분명 시장이 있을 거라는 점이죠. 문화도, 언어도, 발전의 속도도 전혀 다른 나라들 모두가 시장을 통해 물건을 사고 팔고 또 삶을 영위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이보다 더 가까울 수 없을 만큼 다가서고 부딪치며 어우러지는 공간. 시장에서 저는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미얀마 북동쪽에는 거대한 호수가 있습니다. 인레 호수라고 불리는 이 곳에는 독특한 방식으로 낚시를 하는 낚시꾼들이 있고, 호수 주변에는 다양한 소수민족이 살고 있어 관광객이 끊이질 않는 장소죠. 그런데 호수의 크기가 워낙 크고 소수민족들은 대부분 호수 쪽이 아닌 산 깊숙이 살고 있다 보니 짧은 시간에 그들과의 만남을 가진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실망할 것은 없습니다. 인레 호수에는 매일 같이 장이 열리기 때문이죠. 이 마켓을 통해 다양한 현지 사람들의 모습을 한 곳에서 만나볼 수 있답니다. 그런데 유의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매일 시장이 서는 장소가 다르다는 사실!
일명 '파이브데이 마켓', 그러니까 5일장이라고 불리는 마켓은 다섯 곳의 장터에서 순서대로 번갈아 가며 열리는데요, 그날 어느 장소에서 장이 서는지 명확한 시스템이나 스케줄은 전혀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인레 호수의 사람들은 모두가 알고 있지요. 내일 마켓이 어디에서 열리는지를 말이죠. 그러니 현지인들에게 물어보고 이른 아침 길다란 나무 보트에 몸을 싣고 길을 떠납시다. 아무리 멀어도 대부분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장터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게 누구라도. 어떤 삶, 어떤 여행을 겪어왔더라도, 당신은 평화롭게만 보였던 거대한 호수의 적막과 달리 수많은 소수민족이 얽히고 설켜 만들어 내고 있는 소리와 움직임에 압도될 것입니다. 각 장터마다 장소의 매력이 있고 해당 장터에만 나오는 소수민족들이 있기에. 가능하다면 다양한 장터들을 모두 둘러보는 것이 좋습니다. 다른 건 안하고 장터들만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만큼 인레 호수의 5일장은 흥미진진하거든요.
이른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한다는 단점은 있지만, 너무 배가 고프다면 유명한 이 지역의 국수를 먹으면서 현지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도 좋을 겁니다. 당신이 사고 싶은 물건을 찾기는 아마 어려울지 모릅니다. 대부분 현지인들끼리 생필품을 팔고 또 교환하는 장소니까요. 하지만 그게 또 시장의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구경만 해도 배가 부른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게 해주니까요!
현대적이고 발전된 대도시라고 해서 시장의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첨단 도시에도 그곳만의 전통과 매력을 지닌 시장들은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웃 나라 일본의 수도, 도쿄를 예로 들어 볼 수가 있겠네요. 도쿄 또한 많은 유명한 시장을 가지고 있지만, 아마 가장 유명하고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장소는 역시 츠키지 수산 시장이 아닐까 합니다. 이 장소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매년 이곳에서 열리는 대형 참치 경매 소식은 해외 토픽 등으로 한번쯤 본 적이 있을 거에요.
이곳에서의 참치 해체와 판매는 오래된 전통이지만, 너무나 유명해지고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이제는 매일 입장 순서를 정하고 입장 인원을 제한해야 할 만큼 유명한 이벤트가 되어 버렸죠. 저는 몇 번을 이 참치 해체 장면을 보려 했지만 번번히 실패했습니다.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새로운 장소로 이전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 유서 깊은 장소가 문을 닫기 전에 한번 들려야겠다고 찾아갔던 2년전 가을. 이른 새벽의 참치 해체를 보기 위해 새벽 4시에 도착했건만! 입장을 위해 따로 줄을 서는 장소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해체 현장으로 바로 찾아갔다가 시간을 낭비하고 입장 순위에도 들지 못해버렸다니까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츠키지 시장의 매력은 참치뿐만은 아니기에 바로 집으로 향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아침 해가 서서히 밝아올수록 활기를 띄기 시작하는 츠키지 수산 시장의 모습은 포기해야 했던 이른 아침의 잠을 보상해주고도 남음이 있었으니까요. 생선 냄새가 진동을 하고 바닥은 축축하지만 그게 또 수산시장만의 매력이잖아요?
사람들은 땀을 흘리며 생선을 나르고, 자르고 해체하고 또 판매를 합니다. 파는 사람, 사는 사람 모두가 즐거운 이른 아침 수산 시장의 풍경. 그것은 도쿄의 거대한 빌딩들만 바라보고 있으면 잘 느낄 수 없는 사람 사는 재미입니다. 도쿄의 숨겨진 인간미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곳으로 츠키지가 이동하더라도 이런 따스한 풍경 또한 함께 옮겨지기를 기원해봅니다.
글│케이채
사진│케이채
여행의 영감을 위한 책 AR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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