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RAVEL VOL. 24
타스쿠르간 | 중국 | 이경택
나의 신장 위구르 마지막 기억은 중국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해발 3,100m의 도시 타스쿠르간에서의 일이다. 파키스탄과 마주한 국경은 삼엄하고 군인들의 절대적인 통제 속에서 움직이는 곳으로, 중국을 여행하며 한동안 잊고 있었던 공산주의 국가를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파키스탄으로 향하는 국경을 통과하기 위해 출국 심사를 받고 대기하는 동안엔 화장실도 군인들과 동행해야 했으며, 친절한 안내 같은 건 전혀 없었고 심지어 서있는 자세마저 지적당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어린 병사들은 시골에서 온 청년들이 대부분이라, 뭐라도 해야 국경지대 군인으로서 위엄이 섰을 것이다. 이제 열 여덟쯤 되었을까. 검게 그을린 피부에 외지인의 등장만으로 잔뜩 긴장한 채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하긴 대부분 파키스탄인과 한족 매매상들만 다니는 카스 지구 국경지대에 낯선 한국인이 어슬렁거리니 그럴만도 하다. 아마 복장만 봐도 한눈에 적어도 중국인은 아님을 알았을 것이다.
국경 버스가 언제 올 지 소년병사는 알아도 말할 수 없었다. 말이 통하지 않고 간단한 영어나 손가락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여유가 없어 눈만 흘깃거릴 뿐이었다. 이윽고 건넨 나의 몇 마디에 소년 병사는 잠시 일관된 무표정을 거두며 발그레 "한궈(韓國人?)"라고 묻는다. 그러나 친근하게 말을 이어가다가도 미소가 마주치자 어색한지 이내 등을 돌려 버린다.
그의 얼굴을 넘어서 고원을 둘러싼 히말라야 끝자락의 바람이 돌과 모래로 가득한 대지를 스쳐간다. 저 멀리 해발 7,546m 무스타 거봉과 그 주변 산세가 시야 가득 한번에 펼쳐지는 황량한 대지.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파미르 고원의 한가운데 서있는 기분은 황금의 달나라에 도착한 느낌이었다. 만고의 세월을 넘어 뻗어 나가는 모래와 바위산은 '척박한 아름다움'이라는, 지금껏 내가 알지 못했던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누군가는 숲이 우거진 풍경보다 황량한 대지에서 더 많은 풍요를 느끼게 된다. 일 년 전 방문했던 곳이지만,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으로 가지 못한 것이 내내 후회되어 다시 한번 오른 여정길이었다.
신장 위구르 지방을 처음 방문했을 때, 그 이질적인 느낌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중국에 온 것인지, 아니면 그 너머 다른 세계에 온 것인지 착각할 정도. 흥미롭게도 이곳의 사람들은 중앙아시아의 사람들과 훨씬 닮아 있었는데, 다시 말해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의 한족 이미지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중국의 한족 이주 정책이 아니었다면 중화민국이라는 정체성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반대로 말하면 한족의 이주 때문에, 본래의 모습이 많이 흐려진 건 사실인 듯 했다.
이주정책은 성공적으로 보였다. 이곳 자치구의 도시는 이제 한족들의 상점으로 채워지고 시민의 절반이상이 한족으로 이루어져있다. 이따금 외신으로 이곳의 독립을 위한 위구르족의 테러 소식을 접할 수 있는데, 독립의 열망은 그저 작은 메아리로 끝나지 않을까 여러 만감이 교차한다.
난 신장위구르의 대자연의 매력에 빠져서 한동안 중국만 찾았는데 그 중에 파미르고원을 가로지르는 카라코람 하이웨이(KKH)의 로드트립은 전 세계 어디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아름답고 특별한 여행이다. 신장위구르의 남서쪽 카스지구부터 타스쿠르간을 지나 쿤자랍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 훈자까지 이르는 대여정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길 중 하나라 확신한다.
이 길 위엔 수많은 소수민족과 다른 종교종파들이 모여 터전을 이어나간다. 공산당 아래 숨죽이며 뿌리를 이어나가는 위구르족은 무슬림으로 존재를 지켜나간다. 키르키스족, 타키지족, 몽고족 등은 그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뿌리가 옆나라에서 이어진 민족들이었다. 장엄한 강와 천산이 국경보다 더 위대했을 무렵 몇 날 몇 일을 두고 산을 넘고 대지를 건너 그렇게 삶을 주고 받으며 여기저기 퍼져 살았던 민족. 특히, 타스쿠르간 시골에서는 여전히 목축업으로 살아가는 유목민을 볼 수 있는데, 그 모습이 세월이 무색할 정도였다.
타스쿠르간 주변 마을은 마을 손님과 아낙들의 발길로 분주했다. 통역과 안내를 맡은 누네마티가 한 마을에 들어가더니 헐레벌떡 다시 나오면서 내게 어서 오라 손짓한다. 타지크족의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작은 축제를 맞은 타지크족 마을의 분위기가 흥에 겹다. 나를 한족으로 착각해 잠시 냉기가 흐르던 동네 사람들은 내가 한국인임을 알리자 이내 먼 친척이라도 만난 듯 집안으로 안내했다. 흥겨운 축제 속에 깔끔하게 전통복장으로 차려 입은 타지크족의 춤사위와 광야에서 펼쳐지는 전통의 마상 경기는 이 순간을 이번 여정 최고의 경험으로 만들어 주었다.
나는 신장위구르의 경이로운 풍경과 그 척박한 환경 속에 만난 사람들의 사진을 다시 꺼내 볼 때마다 소년 병사를 생각한다. 아름답고 이색적인 풍경 속에 나를 친절하게 반겨주던 마을의 소수민족과 철저한 통제력을 과시하던 군인들, 그리고 그 소년병사의 수줍은 미소 사이를 하염없이 오간다. 짧은 문장으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함과 아련함, 그리움이 공존했다.
카스지구 국경마을과 소년 병사. 신장 위구르의 사연과 황량하고 눈부신 변방의 고원이 모두 그의 눈동자에 담겨 있었다.
글│이경택
사진│이경택
여행의 영감을 위한 책 AR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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