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RAVEL VOL.22
도쿄│안수향
여름에 일본, 그것도 도쿄를 방문한다는 건 어쩌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메가시티는 내 두 다리에겐 과분하게 크고, 하늘은 줄다리기 하는 장마전선 때문에 오락가락하기 일쑤다. 조금만 걸어도 힘이 빠지는 습하고 더운 날씨는 또 어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시렁거리며 손가락에 꼽아본 단점들을 감안하더라도 도쿄로 향하는 내 마음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여름이면 더 선명해지고 아름다운 색채를 띠는 도쿄의 밤 때문이다. 비가 내려야 더 진해지는 도시의 저녁 풍경이라던가, 새벽 시장 상인들의 활기찬 모습, 내리는 비를 핑계로 마시는 한 잔 술에 떠들썩한 퇴근 무렵의 술집, 아, 그리고 한여름 밤을 수놓는 반딧불이들까지! 나는 도저히 이들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 작정하고 도쿄의 밤을 좇아보기로 했다.
어릴 적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며 불쑥 찾아가곤 했던 산소에는 종종 반딧불이가 날아다녔다. 시간이 지나며 아버지가 굳이 여름 저녁에 할아버지 산소를 찾는 일은 줄었고, 나는 명절이 아니고서야 아버지와 함께 시골을 찾을 일 없는 보통의 어른이 되었다. 그런데 최근, 지인이 반딧불이를 어딘가에서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오랜만에 할아버지의 산소를 떠올렸다.
약 1년 가까이를 기다려 찾아갔다. 사전에 양해를 구한 덕에 마을 이장님, 그리고 동네 분들과 함께 숲 안쪽까지 동행하게 되었는데, 막상 깊은 곳에 이르자 어르신들은 실컷 있다 오라며 걸어온 길로 다시 돌아가 버렸다. 멍하니 어둠 속에 놓여졌다. 좀 전까지 아무렇지 않던 숲이 불현듯 검고 두려워질 무렵, 저 멀리서 반딧불이 한 마리가 마치 마중 나오듯 유유히 다가온다. 고운 초록빛과 스스럼 없는 움직임으로 한 마리, 두 마리 모이더니 어느새 작은 빛들로 온통 밤을 뒤덮는다. 숲도 숨죽여 한참을 지켜보던 그 아름다운 춤을, 한동안 머릿속에서 지울 길이 없었다.
그 후 어디선가, 여름이 오면 일본 전역에 반딧불이 축제(호타루마쯔리/ほたる祭り)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는 언젠가 여름에 일본을 여행한다면 꼭 반디를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반딧불이축제가 가장 많이 열리는 6월에 도쿄에 오게 되었으니, 가장 먼저 가야 할 곳은 이미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숙소에 짐을 풀자 마자 다녀온 곳은 도쿄도 훗사시(福生市) 내에 있는 작은 공원이었다. 반딧불이공원(호타루공원/ホタル公園)이라는 이름을 대놓고 쓰고 있을 만큼 실제로 매 여름을 수놓는 반딧불로 유명한 곳이다. 내가 머물고 있는 료고쿠(両国)에서 우시하마(牛浜) 역까지 JR선을 세 번 갈아타는 동안 대략 1시간 30분이 걸렸고, 전철에서 내린 뒤에는 어두컴컴하고 조용한 동네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그러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자그마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어 분명 공원을 가는 것이라 짐작했는데 예상이 맞았다.
공원은 생각보다 작고 조용했다. 산책로를 따라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그 주위로는 큰 나무와 꽃과 풀이 무성했다. 어둡기만 한 공원에 눈이 익숙해질 때쯤 반딧불이 여러 마리가 물소리를 따라 날갯짓을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축제가 끝난 직후라 그런지 혹은 요 사이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개체수가 많지는 않았다. 대략 나를 포함해 공원에 있는 사람들만큼이었을까. 이곳에 있는 반디는 애반딧불이의 일종인 '겐지보타루(源氏蛍)'라는 녀석들인데 꽁무니에서 나오는 빛이 깜박거리기는 하나 비교적 느릿하게 껐다 켜진다. 그래서 사진으로 담으면 긴 궤적이 남는다. 보는 내내 반딧불이들은 마치 내가 바라보고 있는 풍경 위로 느긋하게 붓질을 하듯 선을 그려나간다. 기대보다 많지는 않았지만, 정말이지 크고 무심한 도시 한 켠에서 이 작은 여름의 화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건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공원은 태어나 반딧불을 처음 보는 아이들의 소원으로 가득했다. 자그마한 두 손을 모아 반딧불에게 그리고 여름에게 전하는 예쁜 바람들을 위해, 그 어리고 작은 목소리를 위해 어른들은 기꺼이 소리를 줄여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꼭 이루어질 거라 격려하고 믿어준다. 당연한 것이 당연스레 흘러가던 조용하고 훌륭한 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공원 한 켠에서 가족들과 함께 유년의 여름 밤을 반딧불에 관한 색으로 채우고 추억하게 되는 일은 얼마나 아름답고 건강한 것일까. 도쿄, 여름, 그 평범한 동네, 공원 한 켠, 그리고 반딧불. 아이들의 얼굴에서, 또 이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얼굴에서 나는 어쩌면 그들의 가장 보통의 여름이자 가장 아름다운 여름 풍경을 마주한다.
아마도 도쿄의 아침을 제일 먼저 밝히는 곳이 아닐까. 츠키지시장(築地市場)은 세계 최대 규모의 수산시장으로 도쿄만과 스미다 강이 만나는 도쿄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 16세기 일본 에도 시대의 수산시장인 우오가시(魚河岸)에서 기원하여 1923년 중앙도매시장법에 의해 중앙도매시장 형태로 정비된 후 오늘에 이른다. 하루 2,000톤 이상, 대략 28억 엔 규모의 해산물이 오고 가는 어시장은 어디에서도 만나볼 수 없으니 꼭 한 번 방문해 볼 가치가 있다. 2020년에 열리는 도쿄 올림픽으로 인해 도시 정비계획에 따라 2016년 말에 시장이 토요스 지역으로 완전히 이전될 예정이었으나, 일단 무기한 연기되면서 이곳을 찾고자 하는 여행자들에게는 희소식이 되었다.
시장은 크게 장외시장과 장내시장으로 크게 구분된다. 장외시장에는 대부분의 소매상과 식당들이 위치해 있고, 장내시장에서는 도매거래가 이루어지는데 바로 이곳에서 그 유명한 참치경매가 매일 새벽에 열린다. 최근 몇 년간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이 참치경매 현장이 인기를 끌면서 오히려 위생 관련 문제가 발생하고 상인들의 상업활동에 방해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었다. 때문에 한동안은 입장이 허용되지 않다가 하루 방문객 수를 선착순 120명으로 한정하고 안내인의 관리하에 시간과 장소를 제한하여 방문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를 마련했다.
공식적으로는 새벽 5시부터 선착순으로 접수를 하여 참치경매에 참관이 가능하다고 하나 내가 새벽 2시 반에 도착했을 때 대략 80명 이상이 대기를 하고 있었다. 결국 1부 경매는 못보게 되었고 2부 경매에 입장이 가능한 파란색 조끼를 입고 바닥에 앉아 기다릴 수 있었다. 거금을 들여 우버택시까지 타고 빨리 왔다고 나름 안도하고 있었는데 저 여행자들은 어쩜 저리 부지런한지 모르겠다. 가장 앞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언제 도착했느냐 물었더니 밤 12시라고 해서 두 손을 드는 시늉을 했더니 쑥스러운 미소를 보인다. 그래도 120명 안에 들어서 다행이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경매는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방문객들도 딱 60명으로 나뉘어서 1부 경매와 2부 경매를 보게 된다. 새벽 5시 50분이 되자 안내인의 인솔을 따라 경매장으로 가는데 이곳까지 가는 일도 보통이 아니다. 대규모의 해산물들이 바삐 오가는 만큼 차량이 많이 지나다니기 때문에 한시도 긴장을 늦추면 안되니 말이다. 게다가 그들에게는 이것이 쇼가 아니고 생업이니 만큼 방문객들은 최대한 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경매현장은 사뭇 진지하다. 심지어 늘어서 있는 참치들 마저 경건하고 진지하게 여겨진다. 조금 전 안내인인 코세 상에게 이들의 가격이 어느 정도 인지 들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경매에서 거래되는 참치의 가격은 적게는 몇 천 만원에서 많게는 수 억 원에 이르는데, 올해 1월 1일에는 212kg짜리 아오모리산 참다랑어가 1999년 이후 두 번째로 높은 가격인 7,420만엔에 낙찰되었다고 한다.
경매자들은 본경매가 시작되기 전 번호가 매겨진 참치들의 상태나 품질을 파악하기 위해 갈고리 같은 도구로 잘려진 참치의 꼬리 단면을 긁어서 나온 살을 만져보기도 하고 손전등으로 빛을 비추어 자세히 살펴보기도 한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어떤 참치를 얼마에 사야겠다는 대략의 계획을 정한 뒤 본 경매에 임하게 된다. 경매 진행자가 단상에 올라가면서 경매가 시작 되는데, 구매하고자 마음먹은 참치의 순서가 되면 경매 참가자들은 약속된 수화로 가격을 제시하고, 경매 진행자가 최고 가격을 제시한 업체의 이름과 가격을 크게 부르면서 최종적으로 판매가 되었음을 알린다. 참치 한 마리 한 마리가 팔려나가는 진귀한 경관을 보면서 경매를 참관하는 사람들 모두의 표정도 점점 흥미로움으로 채워졌다.
경매가 종료되자 안내인은 서둘러 참관인들을 출구로 데려갔다. 한시가 바쁜 운반차들과 탑차들, 상인들을 다시 지나고 출구를 나섰다. 오랜 기다림으로 조금은 지치기까지 했던 한밤을 지나 휙 가버린 20여 분의 숨막히는 시간이 끝나자 이 모든 게 마치 꿈처럼 여겨졌다. 다른 세상을 허겁지겁 헤쳐 숨 가쁘게 걸어 나온 듯 아직 내 심장은 두근거리만 하는데 빌딩숲 사이 길과 이를 걷는 사람들은 평안해 보이기만 했다. 조심스레 뒤돌아보고서야 알 것 같았다. 도쿄의 조금 늦은 밤과 조금 이른 아침 그 사이, 서로 다른 삶과 서로 다른 생존과 서로 다른 도시가 놓여 있음을.
여행의 마지막 날에는 딱히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다만 늦잠을 실컷 자거나 숙소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낯짝 두껍게 동네 주민 행세를 하거나, 혹은 마음에 드는 카페에서 글을 쓰고 바깥 풍경을 보곤 한다. 꼭 특별한 일이 일어나길 바라지 않는 사람처럼 굴면서. 여행자라는 신분에 꽤 뻔뻔하고 괘씸하게 여겨질지도 모르겠지만, 내일 곧 닿을 사소하지만 소중한 내 일상이 그렇지 않은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여행의 마지막 날에 내게 기쁘고 놀라운 일이 생겨버린다면 상당히 곤란하다.
사람 많기로 유명한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라고 불리는 X자 모양의 횡단보도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카페 2층 창가에 앉아서 여행의 마지막 밤을 맞이한다는 건 스스로도 꽤나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여행의 마지막에 대한 아쉬움이 덜한 것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그런 마음이 들기도 전에 교차로를 지나다니는 엄청난 군중에 조금은 심장이 쿵쿵거렸지만.
시원한 커피음료를 쭉 들이키며 교차로를 바라보았다.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점등될 때마다 엄청난 인파들이 거리를 오고 갔다. 그리고 밤이 가까울수록 도시의 빛은 느슨해지고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궤적을 그리듯 서로와 풍경을 스치고 나아간다. 때로는 아쉽고 긴 하루의 여운을 남기면서. 그 마음들이 도시 곳곳에 흩어져 남는 걸까, 이윽고 자동차나 건물 계단, 네온사인, 전차나 가로등 같은 것들도 잔상을 남기며 도시의 저녁을 걷기 시작한다.
나는 문득 이번 여행의 궤적은 어땠었는가를 생각했다. JL512편에서 내려 도쿄에 첫 발을 내딛던 순간의 설렘부터 한적한 마을에서 만난 반딧불이가 잔잔히 그려나간 한여름 밤의 선율, 동네 어디쯤에서 미소로 남은 사람들의 얼굴, 자주 가게 된 카페 점원들의 군더더기 없고 날렵한 움직임과 그것을 닮은 커피향기, 울컥하기까지 했던 도쿄타워와의 만남, 츠키지 시장상인들의 바쁜 발걸음들으로 가득 찬 도쿄의 새벽,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 밤 마주한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여운까지. 이번 여행에선 도쿄의 진한 밤들을 참 실컷 좇았구나, 생각한다.
다 마신 커피잔을 내려놓고 내려와 교차로 앞에 섰다. 여전히 사람들은 바삐 흩어지고 그 중 내게 오는 이는 하나도 없을 텐데 무언가 기다리는 사람처럼 나는 밤을 두리번거린다. 잔잔히 떼어보는 발걸음이 아쉽다. 특별할 것 없길 바랐던 하루가 바람대로 되어 다행한 하루였을까, 아니면 외면한 것들이 아쉬운 하루였을까. 상관없다. 나는 아쉬워 뒤돌아보기를 조금은 참을 줄 아는 여행자가 되었고, 내 마지막 여행의 궤적은 지금 시부야 교차로에 머물러 있다.
글│안수향
사진│안수향
여행의 영감을 위한 책 AR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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