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RAVEL VOL.32
사진가와 길 위의 예술가
유럽 | 박상준
한동안 '예술가의 삶'이란 걸 동경했다. '동경했다'는 건 그만큼 나와 거리가 멀었다는 의미다. 카메라를 만지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주변 사람들은 나를 예술가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정작 나 스스로는 예술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고 믿었음에도. 이전 직장에서 애니어그램이라는 적성검사를 했다. 9가지 유형의 결과 중엔 예술가형이 있었다. 내 검사결과에서 예술가형은 최저수치를 기록했다. 동료들은 의아해했지만, 나는 오히려 쉽사리 수긍했다.
삼십 대가 되어서야 처음 만난 유럽은 새로운 풍경으로 가득했다. 미술관, 박물관을 찾아 다니지 않아도, 거리를 메운 건축물과 곳곳에서 열리는 거리공연에서 '예술'이 도시를 채우고 있다고 느꼈다. 사실 나는 정작 동경해온 '예술가의 삶'에 대해 구체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지 못했다. 그렇기에 처음 만난 유럽의 풍경 속에서, 내가 그것들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기 시작했다.
여행이 주는 설렘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롭게 반짝거리는 어떤 순간을 만날 때 찾아오곤 한다. 여행 중 거리에서 만나는 공연은 그 순간 중 하나다. 광장을 메운 돌 하나하나엔 수많은 자국이 남아있고, 그 자국엔 광장을 채워 온 수백 수천 번의 공연이 담겨있는 듯 했다. 설렘을 품은 여행자가 되어 마주한 오늘의 공연이 남길 또 하나의 자국을 상상했다.
설렘으로 가득한 이런 순간도 여행이 길어질수록 익숙해져 갔다. 그 때쯤 사람들이 모인 떠들썩한 광장을 피해 인적이 드문 건물 구석으로, 좁은 골목 사잇길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런 외진 곳에서도 거리의 예술가를 만날 수 있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공연을 즐기는 사람은 어쩌다 한 두 명.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공연을 이어가는 모습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느꼈다. 화려하게 빛나던 광장 중앙의 예술가들과는 달리, 이들은 이들이 자리 잡은 곳에 하나의 기둥처럼, 하나의 가로등처럼 풍경의 일부로 녹아 들고 있었다. 나는 그 풍경에 오래 머물고 싶었다. 그리고 그 풍경의 일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 시선과 걸음이 바뀌면서, 예전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거리의 예술가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무너진 담을 다시 쌓던 벽돌공, 벗겨진 건물 벽을 칠하던 도장공, 말라버린 가지를 솎아내던 정원관리사. 미술관에 전시될 화려한 그림을 그리거나, 그 그림이 담길 웅장한 건물을 디자인하는 것과는 다른 작업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그림을 그리기 위한 종이와 물감을 만드는 사람들, 그 건물의 돌 하나하나를 올리는 사람들에 의해 내가 만난 유럽의 풍경들이 완성되고 있다는 걸 마음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이 만들어 온 풍경들을 거니는 순간에 나는 가만히 행복했다.
프랑스-이탈리아 자동차 여행을 시작하면서 다양한 도시들을 만났다. 각 도시의 축제를 만날 수 있길 기대했지만, 우리 일정과는 번번이 어긋나 아쉬웠다. 두 국가에서의 자동차 여행을 마무리할 무렵이 되어서야 프랑스 안시(Anccey)에서 축제를 만났다. 매일 저녁 실험적인 음악과 퍼포먼스가 결합된 공연들이 도시를 채웠다. 시청 앞 광장엔 DJing 무대가 자리 잡았고, 시청 외벽에는 화려한 VJing 영상이 상영되었다. 낮 시간까지 차가 오가던 광장 주변 도로는 나들이 나온 가족들과 축제를 찾은 여행자들로 메워졌다. 오래된 시청 건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DJing 공연과 그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의 풍경은 당혹스럽고, 동시에 매혹적이었다.
시청 앞 광장을 벗어나 어느 거리에 들어서자, 흥미로운 음악이 들려왔다. 따라가보니 커다란 아날로그 기계장치에 가까운 악기가 독특한 소리의 조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연주보다는 '조작'에 가까운 행위를 하던 예술가의 모습에서 제페토 할아버지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 소리는 어느 장치에서 만들어지는지, 저 소리는 또 어느 장치가 내뱉는지 살피다 보면 시간이 금세 흘렀다. 다른 공연들을 찾아 골목을 누비다 집으로 향하던 길, 다시 그 장소를 지나쳤다. 공연이 끝나고 모여있던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간 자리. 조용히 악기를 정리하던 예술가의 뒷모습에서는 그의 음악이 들려오는 듯했다. 공연이 끝나고도 음악이 흘러나오듯, 여행 중 느낀 감정과 감동이 일상에도 이어지기를 소망했다.
대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전원을 여행하면서도 길 위의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차를 달리다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면 멈춰서 사진을 찍곤 했다. 그곳엔 풍경을 그림으로 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듯했지만, 각각의 캔버스 안에는 저마다의 풍경이 피어나고 있었다.
프랑스 남부의 항구도시 '라 시오타'를 여행하던 때였다. 마을 영화관 간판에는 뤼미에르 형제의 초상이 그려져 있었다. 이곳이 최초의 영화로 알려진 '시오타 역에 도착하는 기차'의 그 시오타라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마을을 둘러보고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근처 언덕에 올랐다. 언덕 위에는 소박한 교회가 자리 잡고 있었다. 교회 앞마당에는 할머니 한 분과 손자로 여겨지는 꼬마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색만큼 하얀 옷에, 하얀 헤드폰을 쓰고 있는 할머니의 '힙'한 패션보다 더 시선을 사로잡은 건, 바다를 바라보던 그녀의 눈빛이었다. 호기심과 설렘으로 반짝거리는 어린아이의 눈빛을 갖고 있었다.
여행자인 우리에겐 새롭고 낯선 이 풍경을 할머니는 매일같이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색연필 몇 자루를 들고 바다를 담아내는 할머니의 모습에선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건 아마도 그녀 손에 들려있었던 고작 색연필 몇 자루의 힘 때문이었을까. 이 풍경을 사랑해 그림으로 담기 시작했는지, 아니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이 풍경을 더 사랑하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녀는 이 풍경을 매순간 새롭게 만나고 있었다. 여행을 통해 낯선 풍경에 설레던 우리의 시간, 그림을 통해 일상의 풍경을 새롭게 만나는 할머니의 시간이 시오타의 언덕 위에서 포개졌다. 언덕을 떠나는 길, 오늘 이 만남을 신께 감사드린다는 말을 건네는 할머니에게서, 일상의 작은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가는 삶의 태도를 배운다.
내가 동경해 온 '예술가의 삶'이 무엇이었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다만, 이제 살아가고 싶은 어떤 '예술가의 삶'은 그릴 수 있다. 거리의 음악가보다 더 그 음악을 즐기던 런던 포토밸로 마켓의 아이처럼 내가 느끼는 걸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기를 바란다. 해 질 녘 아코디언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아를의 주민들처럼 주변 친구들과 아름다운 순간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호기심과 설렘을 간직했던 시오타 언덕의 할머니처럼, 일상의 순간들을 여행하며 마주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글│박상준
사진│박상준
여행의 영감을 위한 책 ARTRAVEL
www.artravel.co.kr